[분석과 진단] 뭇매 맞는 국민연금공단, 무엇이 문제?(하)

국민연금공단 경영진 현황(공단 홈페이지) 
국민연금공단 경영진 현황(공단 홈페이지)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대마초 흡입 등 마약사고 이후 공단 감사기능과 역할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막대한 공적기능 수행에 비해 감사기능이 너무 취약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공단 상임감사는 임원추천위원회 추천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 제청 후 대통령 임명으로 인사가 이뤄진다.

공단의 최고 수장인 이사장 바로 아래 직제에 놓인 상임감사는 전북지역 언론인 출신인 이춘구 씨가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3월 9일 임명돼 현재까지 보직을 수행하고 있다.

김성주 전 이사장 재임시절, 전북지역 출신들이 이사장과 상임감사 두 자리를 모두 역임함으로써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김 전 이사장은 지난 4ㆍ15 총선 출마를 위해 퇴임했지만 이 감사는 지금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감사기능,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그러나 감사실 업무 전반은 물론 재무회계, 기금운용내역 감사 총괄 등을 맡아 지휘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상임감사 업무 특성과 그의 이력(경력)은 적절성에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다소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 감사는 KBS 전주총국에서 기자로 시작해 모스크바 지국장, KBS 전주총국 보도국장 등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방송인으로 활동해왔다. 방송사 퇴직 후 그는 전북대에서 산학협렵단 중점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지만, 특별한 연구활동이나 성과 없이 떠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공단의 감사로 옮겨 재직하면서 벌어진 대형 마약사고라는 점에서 적임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않다. 자체 감사를 벌인 결과 직원 중 4명이나 마약을 투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지만, 이들을 직무에서 배제해 대기발령을 내고 지난 7월 14일 경찰에 고발장을 접수한 사건이 뒤 늦게 알려진 점, 이달 9일에서야 해임 조치했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 '신속하고 투명하지 못한 조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북일보는 22일 '국민연금공단 공직 기강 바로 세워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했다. 

사설은 "대마초를 흡입해온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발해놓고도 이런 사실을 국민에게 바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단순 마약 사건이 경찰 수사 착수 2개월 만에 드러난 배경도 미심쩍다. 경찰이 이들의 범행을 숨겨주려다 마지못해 공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이사장 공석 기간에 벌어진 사고인데다 특히 그 기간에 총선까지 치러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신임 이사장은 사과문에서 "국민들의 정서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일탈·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퇴출기준을 강화하고 일벌백계,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특히 관련 직원들에 대한 처벌내용이 확정되면 숨기지 않고 공개해 국민들의 감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앞서 지난 15일 국민연금공단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1일부터 11일까지 종로중구지사 등 8개 지사에 대한 감사에 ‘비대면 화상감사 기법을 도입했다'며 언론에 홍보하며 자랑했다.

이 감사는 "‘코로나19’확산 방지와 직원 보호를 위해 발 빠르게 비대면 감사기법을 전면 도입했다”며 “이번 감사활동에 대한 성과 분석 등을 통해 비대면 감사기법을 지속적으로 개선·발전시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IT 비대면 감사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미 내부에선 직원들이 대마초를 흡입하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새로운 감사기법 도입 후 불과 사흘 만에 이러한 사고가 외부에 알려졌다.

"75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기금 규모만큼이나 국민연금 소속원들의 기강 해이도 상상 이상으로 방만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사전 감사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는 따가운 지적도 함께 일고 있다.

중앙일보 2018년 9월 13일 인터넷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중앙일보 2018년 9월 13일 인터넷기사(홈페이지 갈무리)

'CIO 장기공석 조롱' 떠올리는 서울언론들

가뜩이나 총선에서 낙선한 인물이 이사장으로 임명된데 대해 일부 언론들은 좋지 않은 시각을 가져왔다. 전임 이사장과 함께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 후보로 나란히 출마한 인물이라는 점, 선거로 인해 장기간 공단 이사장의 공석이 이뤄졌다는 점 때문에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이번 마약사건을 계기로 지난 2018년 9월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조롱 섞인 기사들이 서울의 보수언론들에 의해 보도돼 눈살을 찌프리게 했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당시 서울언론들은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국민연금이 축사와 분뇨처리시설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며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을 인용해 크게 보도했었다.

WSJ는 2018년 9월 12일(현지시간) 1면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재정 업무:투자 책임자 수배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에서 세번째로 규모가 큰 연기금(국민연금)이 투자책임자를 찾는데 고전하고 있다"며 그 이유로 '지리적 문제'를 꼽았다.

기사는 리드에서 “국민연금이 5,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감독하는 투자책임자를 수배중”이라며 “시장보다 낮은 임금과 정치적 비판을 감수해야 하며 룸메이트와 기숙사를 함께 쓰는 건 덤이다. 돼지와 가축 분뇨 냄새에 대한 관용은 필수”라고 적어서 파문을 던졌다.

기사는 또 “국민연금 CIO는 매우 정치적이다. 많은 대형 공기업의 대주주로 기업 경영에 결정적 표를 행사하기도 한다”며 “벨기에 국내총생산(GDP)보다 큰 5650억 달러(634조여원) 이상의 자산을 감독하지만 급여는 민간 분야의 3분의 1”이라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2018년 9월 12일자 1면
월스트리트저널(WSJ) 2018년 9월 12일자 1면

WSJ는 “진짜 고약한 건 위치”라며 “국민연금은 서울에서 120마일 남쪽의 산과 논, 축사, 분뇨처리시설로 둘러싸인 혁신도시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이에 서울의 일부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WSJ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역에서 올해 155건 이상의 악취 관련 민원이 제기됐다며 돼지 삽화를 그려 넣고 아래에 ‘이웃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고 썼다”면서 “지방 이전으로 자금운용 직원의 4분의1 이상이 그만뒀고, CIO와 고위직 8명 중 3명 등 30개 자리가 공석이라고 보도했다”는 내용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과거엔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을 처음 찾았지만 국민연금 이전 후엔 시간적 제약 때문에 바로 일본으로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북혁신도시는 금융 허브가 아니다”는 투자회사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내용도 소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앙일보는 ‘"돼지분뇨 냄새 위치 탓"···WSJ, 국민연금CIO 장기공석 조롱’의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외국 언론에 조롱당한 벌판 속 국민연금’이란 사설에서 함께 조롱하며 비웃었다.

'정의롭고 원칙적인 인사, 운영ㆍ관리' 전제돼야

2018년 9월 15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 넘게 공석인 이유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 불리함 때문이라는 기사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다”며 다음과 같이 조롱했다. 

“신문은 세계 3위 규모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본부장은 '돼지 분뇨 냄새'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며 삽화까지 그려 넣었다. 국민연금공단이 있는 전주시 전북혁신도시에서 올 들어 155건의 악취 관련 민원이 신고됐다는 것이다.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이 외국 언론의 조롱거리가 됐다”

신문은 또 사설에서 “그런데도 민주당은 다른 금융 공기업의 지방 이전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금융에서 우수 인력이 이탈하고 국익에 해가 돼도 지역에서 표만 얻으면 그만인가”라며 공공기관이전 정책을 비틀었다.

그러자 그해 9월 17일 전북기자협회가 “전북을 폄훼하지 말라”는 이례적인 성명을 냈지만 보수언론들의 비판과 조롱은 계속 이이져 왔다. 

최근엔 “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뒤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부족 문제도 꾸준하게 제기된다”며 “작년 국민연금은 자산운용전문가 21명을 선발하려고 했지만 16명밖에 구하지 못했다. 퇴사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10명 남짓이던 퇴사자는 2017년 20명, 2018년 34명, 작년에는 20명으로 늘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 대형 마약사건이 터진 것이다. 비판과 조롱을 일삼아 왔던 언론들에겐 이보다 흥미롭고 특이한 먹잇감(의제)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직원들의 일탈과 위법 행위에 대한 일벌백계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의롭고 원칙적'인 인사와 운영ㆍ관리가 전제돼야 개선과 쇄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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