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살다 보면 아무 관계도 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대로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하게 꾸며진 일들이 결국은 들통이 나는 바람에 화를 자초하는 경우가 있다. 정 반대의 두 사례지만 결과는 거의 같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럴 때 흔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거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리 없다’는 말로 질책하거나 자책하곤 한다.

최근 전북지역의 공직사회에서 발생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이와 무관치 않아 새삼 옛 속담을 되새겨보게 한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전북교육청 소속 변호사와 위촉·고문 변호사들이 서거석 교육감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와 관련해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히고 나섰지만 사나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로 보여진다.

부메랑 된 전북교육청 변호사협의회 스승의 날 기자회견…왜?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전경(사진=전북교육청 제공)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전경(사진=전북교육청 제공)

전북교육청 변호사협의회는 이날 전북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일부 단체와 개인들이 전북교육청의 정책과 운영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고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무분별하게 제기하고 있다"며 "민사 및 형사상 법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할 예정"이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이들이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지목한 건 바로 ‘서거석 교육감의 장학사 승진 대가 금품 수수 의혹'과 최근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과학교육원 입찰 비리 의혹' 두 가지였다고 한다. 모두 경찰에 의해 입건됐거나 내부 의뢰로 사법당국의 수사가 진행 중인 중대한 사안들이다.

그런데 하필 스승의 날을 맞아 교육 현장이 교사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각종 설문조사와 불안한 학교 현장 사례들이 언론에 의해 조명되던 이날, 뜬금없이 교육감을 비호하며 마치 전위대처럼 자처하고 나선 모습이 볼썽사나워 보였다. 교권 침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교사들의 응답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는 교원단체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안전한 교육환경에서 학생을 가르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작금의 어두운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특히 전북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전북지역 초등학교 교원 침해 비율이 ‘전국 1위’라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다. 더욱이 전체 침해 사례 중 상당 부분은 보호자에 의한 것인 데다 ‘반복적·부당 간섭’ 유형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을 비롯해 교육 현장의 제반 법령 등 제·개정에 관한 사항, 계약서·소송서면 등 주요 서류 검토·작성 등에 관한 사항, 교직원들에 대한 법률 자문 등을 위해 전북교육청은 변호사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문·자문·상임 변호사 35명이 구성돼 있을 정도라고 하니 숫자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욱이 변호사협의회 유지와 운영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예산과 행정력이 수반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들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서 "전북교육청에 대한 무분별한 의혹 제기 및 허위사실 유포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하자 “교육감 전위부대”, “교권 챙기랬더니 교육감 방탄 역할”, “입틀막” 등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서거석 교육감의 개인 변호인단인지 의심"…"본연의 임무와 동떨어진 행위"

전주MBC 5월 15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전주MBC 5월 15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당장 전북교직원노동합 전북지부와 전국공무원노조 전북교육청지부 등 교원·노동단체들은 “교육청의 교권 등을 위해 자문과 고문 등의 역할을 하는 줄 알았던 변호사들이 직접 나서서 엄중한 법적 처벌 운운하며 협박하듯이 기자회견을 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며 “서거석 교육감의 개인 변호인단인지 의심스러을 정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북교육청 소속 변호사들은 교육감과 관련된 비리 의혹에 대해 '허위사실'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이 같은 행보는 수사와 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절차를 무시하고 오히려 도민의 비판과 문제 제기를 위축시키려는 '입막음 시도'로 비쳤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무엇보다 전북교육청 소속 변호사들이 마치 서거석 교육감의 개인 변호인단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수사 중인 사안을 두고 결과도 나오기 전에 '허위사실'로 단정하며 '엄중한 법적 처벌'을 운운한 기자회견은 협박성 발언에 가까우며 공공기관 내부 변호사 집단이 취할 수 있는 정상적인 행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곧바로 나온 이유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전북교육청 변호사협의회는 교원의 교육활동을 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교육청 소속 변호사들의 이러한 행위는 본연의 임무와 동떨어진 행위로 사회적 논란을 자초했다”고 일갈했다.

의혹이 있다면 그에 대한 진실은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것이 당연한 절차이며, 그것이야 말로 전북교육 구성원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는 지적이 나왔는가 하면, 전북교육청이 특정 개인의 기관이 아닌 공공기관이란 점에서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본 책무마저 저버리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비난이 쏟아졌다.

교육감, 오랜 재판 중 교육청 고문·자문 변호사 대거 위촉…

”이해충돌방지법 저촉 가능성” 우려

법원 입구 전경(자료사진)
법원 입구 전경(자료사진)

가뜩이나 서 교육감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의 TV토론회 등에서 "동료 교수를 폭행하지 않았다"고 발언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년 넘게 법정 다툼이 진행 중이다. 재판부가 불러들인 증인만 10여명에 이르고 1심 선고가 법정 기한(6개월)을 넘겼다. 여기에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한데 이어 상고심 선고 기일을 다시 연기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6·3·3 원칙'(1심 6개월·2심 3개월·3심 3개월 이내)을 지키지 않은 것은 제쳐두고라도 교육감 임기 내내 재판을 받을 셈이냐는 비난과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장학관 인사를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교육감이 경찰 수사를 받음으로써 재판과 수사 향배에 더욱 촉각을 세우게 하고 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스승의 날을 맞아 교육청 소속 변호인들이 교육감 방탄에 나서 겁박 또는 입틀막을 하려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걸로 봐선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전북 교육계 수장인 서거석 교육감이 법정 다툼을 위해 개인적으로 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해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속 중인 기관의 고문·자문 변호사 등을 잇따라 위촉할 때마다 자칫 이들에게 법률적 자문을 구할 시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와 국회의원 등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사적 이해관계와 충돌되지 않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2021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의 적용 대상은 국회의원, 공공기관 임원·정무직, 지방의회 의원 등 약 190만명에 이른다.

이에 대해 교육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도 ”교육감이 법정 다툼을 위해 개인적으로 변호인을 선임했다고 하지만 소속 중인 기관의 고문·자문·상임 변호사들을 35명이나 위촉해 운영함으로써 자칫 이들에게 법률적 자문을 구할 시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북과학교육원 입찰비리, 보이지 않는 권력 작동” 의혹 제기

더욱이 전북교육청은 수년간 청렴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왔다. 내부 감시 기능의 부재와 투명성 부족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런데 비판을 통제하고 여론을 억누르려는 모습은 오히려 전북교육청이 신뢰받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을 보여주는 단면이란 비판을 자초한 모양새여서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일부 교원단체의 지적처럼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리는 것은 사법당국의 몫이며 전북교육청의 역할은 오히려 투명한 절차를 보장하고 구성원과 도민에게 책임 있는 설명과 해명을 제공하는 것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설령 변호사협의회가 자발적으로 기자회견을 했다고 하더라도 교육 수요자들과 도민들 앞에서 겁박 또는 방탄용으로 비칠 수 있는 내용은 교육감이 사전에 제지했어야 마땅하다.

설상가상으로 한 언론사가 전북과학교육원의 41억 입찰비리 의혹을 단독 보도하고도 2시간여 만에 삭제한 일이 발생해 논란이 거세다. 이에 대해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통해 “멀쩡한 기사가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지역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언론사에 작동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발생했다”며 “전북교육청에서 집행하는 홍보비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뒤 “확인 결과 비정상적인 광고비 인상이 존재했다”고 밝혀 파장을 예고하기도 했다.

모든 공직자, 국민 앞에 성실히 설명할 의무와 책임 있어

서거석 전북교육감.(사진=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서거석 전북교육감(사진=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단순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이라고 치부하기엔 사안들이 복잡하고 중대하다. 까마귀가 배를 떨어뜨려 뱀을 죽이고, 그로 인해 뱀은 죽어서 멧돼지로, 까마귀는 꿩으로 환생했다는 옛 이야기는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개인의 행동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기에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는 것 아닌가? 

전북 교육의 명예는 비판을 억누르고 언론에 재갈을 물려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공직자는 국민 앞에 성실히 설명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전북교육청 변호사협의회는 이번 입장 발표가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채 정당하지 않은 권력 방어의 도구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따져보고 조금이라도 내부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강력히 쇄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감의 부적절한 의혹에 대해 감싸고 엄호하는 행위라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재판 중인 교육감 개인의 ‘방탄 전위부대’ 역할을 위한 공공기관의 변호사협의회 소릴 들을 바엔 차라리 해체하는 게 더 낫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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