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집중] 전북CBS 소민정 PD, 전북대 대학원 신방과 석사학위 논문 완성
“그동안 방송은 ‘서울이 아닌 지역’을 촌스럽고 낙후된 이미지로 재현해 왔다”
전북CBS 소민정 PD가 주경야독하여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발표한 논문이 주목을 끈다.
우선 학위논문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로컬크리에이터를 통해서 본 지역성의 변화-로컬 씬(Scene)과 유튜브가 지역방송에 주는 함의-’란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뉘앙스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소 PD는 지난해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연구기획안 피칭 세션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당시에도 ‘1인 미디어 시대, 지역성 개념의 재구성’을 주제로 유튜브와 로컬씬(local scene)이 지역방송에 남기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밝혔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지역방송 위기론이 더해지는 상황에서, 지역방송이 어떤 지역성을 구현하고 그 실재적 전략은 무엇인지, 외부 환경으로부터 그 답을 찾고자 했던 당시 연구는 이번 석사학위 논문과 연관성이 커 보인다.
소 PD는 방송사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지역성에 일차적 관심을 두고, 지역방송이 지역성을 추구하는 것은 현시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여러 선행 연구자들의 이론적 고찰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논문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유튜브에서 지역성은 어떻게 나타나며 지역방송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지역방송은 지역성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의 두 가지 연구문제를 설정한 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된 인터뷰이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심층 인터뷰를 통해 로컬 씬과 유튜브에서 나타난 지역성을 미시적으로 규명해 냈다.
소 PD는 이번 연구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이론가들의 연구를 보며 탄성을 질렀고, 이름으로만 접했던 학자들과 마주한 때는 연예인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며 “‘지방’에서 오는 좌절감보다 ‘지역’에서 오는 더 큰 가치를 일깨워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소 PD가 자신이 일하는 전문성과 학문의 이론을 접목시켜 석사학위의 금자탑을 완성하기 까지의 배경과 의미, 논문이 시사하는 점 등을 간추려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 주
‘로컬이 미래’, 하지만 한국 사회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살면서 가장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은 ‘로컬’에 대한 갑작스러운 ‘주목(注目)’이다.
어느 한 중년 연예인이 골목길을 누비는 TV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끄는가 하면, 인적이 드물었던 구도심 거리는 어느 새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있다.
한때 중소 서점이 대형 온라인 서점에 밀려 존폐 위기에 내몰린 시절이 있었는데도 지금은 그보다 더 작은 동네 서점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라는 생소한 단어 역시 그렇다. 로컬 씬(Scene)이라 불릴 정도로 덩어리가 된 문화를 이루는 이들은 로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적인 생태환경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로컬이 미래’라고까지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로 파괴된 인류의 삶을 회복시킬 만한 기회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하부구조를 들여다보면, ‘서울 이외 지역도 과연 해당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정치가 마스다 히로야의 주장처럼,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이외 지역’은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서울공화국’으로 등치되는 한국 사회에서 ‘지방’은 특수한 의미를 지닌 곳인 데다가 오랜 시간 등한시됐기 때문에 근래 들어 ‘로컬’로 불리는 것은 여간 낯설고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방송 만드는 생산자로서 주변부적 현상에 질투심 발동”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원조’ 로컬 미디어 격인 지역방송과 결부되기도 한다. 한 때 지역방송의 보호구(保護區)가 됐었던 방송 권역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지역방송이 지역성을 추구하는 것은 과연 현 시대적인가, 하는 질문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지역방송은 중앙에서는 홀대를, 지역에서는 외면 받는 이중적 억압과 차별 속에 변방의 소리로 취급 받았다.
여기에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갈수록 줄어드는 광고 수익원, 수용자들의 달라진 미디어 이용 행태는, 가득이나 힘들었던 지역방송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방송 현장과 학계, 정치권이 논의하는 ‘지역방송발전기금’ 역시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역방송에 대한 정책, 제도적 차원의 지원은 지역방송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하나의 ‘필요 요건’일 뿐 결코 ‘충족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마동훈, 2001).
게다가 지역방송사가 정부 지원이라는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연명치료만 받고 있다는 지탄의 목소리(이문행, 2018)를 상기하면, 오늘날 지역방송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탓에 현시대에 지역성을 추구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특히 로컬 씬(Scene) ‧ 유튜브를 통해 지역방송에 접합시킬 요소를 찾고자 했다. 지역성은 역사와 문화 등으로 빚어진 공동체의 산물이자 공기(空氣)임에도 다수의 연구들은 ‘지역방송’이라는 분야에 국한해 공회전하는 경향을 보였었다. 그렇기에 지역방송 연구에 외부 장르를 끌어들임으로써, 관성적이고 관행적인 궤도를 조금 바꿔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지역방송을 만드는 생산자로서 지역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이르게 되었고, 소위 ‘로컬’이라는 이름으로 달리 불리는 주변부적 현상에 질투심 같은 것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난 해 9월부터 로컬크리에이터와 지역방송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로컬 씬(Scene)을 이루는 로컬크리에이터 당사자와 이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는 관계자들, 로컬크리에이터 현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지역방송 전·현직PD, 그리고 유튜브라는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있는 현직PD 등이 그 대상이었다.
여기에 일종의 자기 기술을 흩뿌리기도 했다. 연구자인 동시에 생산자라는 이중화된 정체성은, 반사된 자아를 통해 현재의 좌표를 확인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로컬 씬과 유튜브에서 지역방송에 대한 6가지 함의 발견”
연구 결과, 로컬 씬과 유튜브에서 지역방송에 대한 6가지 함의를 발견하였다. 첫 번째는 강화된 이동성이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노마드적 라이프 스타일은 인구의 이동을 촉진시키는 요소다. 현대사회의 이동성은 복수의 장소로부터 오는 차이와 이질성을 발견하게 해서 지역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또 다른 지역성으로 이어지게 한다.
두 번째, 장소감의 변화이다. 가상공간의 출현은 공간의 확장성을 가져온다. 이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닫힌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보여주는 경관은 단절되었던 공간을 연결하고 비동시적 상황을 동시적으로 바꿈으로써 자기 소속감과 사회적 연대감을 확인시켜 준다.
세 번째, 다원화된 공동체의 출현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합목적적 이해관계나 이용 충족 동기에 따라 무리를 짓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국가, 출신 지역 등을 가로질러 나타난다. 특히 유튜브와 같은 가상공간에 등장하는 취향의 공동체는 전통사회 때보다 느슨하고 선택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네 번째, 지역성을 나타내는 표현의 방식이다. 일종의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방송은 ‘서울이 아닌 지역’을 촌스럽고 낙후된 이미지로 재현해왔다. 이에 반하여 로컬크리에이터와 유튜브는 콘텐츠를 요즘 소비되는 양식에 맞추어 표현 기법과 유통 방식을 바꾸었고 일상성과 최신성을 반영하였다.
"‘지방’은 서울과 동일한 ‘지역’...오히려 자원 풍부"
다섯 번째, 위계가 재구성된다. 로컬크리에이터에게 ‘지방’은 서울과 동일한 ‘지역’일 뿐이다. 오히려, 발견되지 않은 자원이 풍부한 지방도시가 서울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경계를 초월하는 유튜브에서는 콘텐츠의 이동이 수평적이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위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편평한 공간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방송은 서울 - 지방, 그리고 지역방송 - 시청자(지역민) 사이에서 각각 작용하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방송이 처한 현시대적 입지를 인식하고 종속적이고 때로는 일방적이며 권위적이던 태도와 사고를 바꿔야 한다는 결과에 이르게 됐다.
이러한 지역성을 실현하기 위해 4가지 방식을 고안하였다. Focus on / In-out / Out-in / Pass through (Coded) 형 Locality 모델이다. Focus on 유형은 지역방송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안들을 심도 있게 다루는 방법이다. 산불과 태풍, 정치 스캔들과 같은 자연적·사회적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지역에서 일어나고 일들에 대한 지역민들의 정보 획득 욕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이때 지역방송은 물리적 장소로부터 오는 현장성과 기민한 취재력을 발휘함으로써 중앙 매체보다 더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굴한 기획 아이템과 심층적인 취재력이 더해질 때 지역민들의 이용 충족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설령 출입처에서 주는 보도 자료에 의거해야 할지라도 그것은 보도 자료를 ‘다시 쓰는 기사’가 아니라 ’다시 보고 다르게 쓰는 기사’가 되어야 한다.
또 지역 안/밖에서 일어난 일일지라도 지역 바깥/안에서도 볼 만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한다. In-Out / Out - In 유형이다. In-Out 유형은 비록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지역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쓴 기사/프로그램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펜션 화재 사고를 조명하면서도 평소 안전 점검의 제도적 취약점은 없었는지를 진단하는 보도이다. 이러한 내용은 경계 밖 시청자들에게도 당사자적 관점을 부여함으로써 지역방송의 소구력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Out - In 유형은 지역 바깥에서 벌어진 일을 지역 내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가령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본만의 일인 듯하나 이로 인한 위험은 영토의 경계에 의해 차단되는 것은 아니며, 바다에 인접한 한국의 작은 어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도해야 한다. 그동안 국제 뉴스는 대개 국가 대 국가 단위로 다뤄지면서 중앙(서울)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으나 이제는 국가 대 지역 단위로의 접근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 유형은 Pass through 유형이다. In-Out / Out - In 유형을 조금 더 확장시킨 개념으로 코드 입힌 로컬리티(Coded locality)로도 명명할 수 있다. 열린 채널, 다양한 공동체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지역방송도 때로는 지역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문법에서 벗어나 소구력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뉴미디어, 지역성 구현하기에 더 용이한 환경일 수도”
이러한 내용들이 주로 지역방송의 제작과 유통에 관한 것이라면,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내부의 조직 문화가 동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지역방송 자체편성 의무편성 비율에 뉴미디어 콘텐츠를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해봄 직하다.
법제상 지역방송은 특정 지역에 대한 지상파방송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공공재인 전파 사용에 따른 공익적 가치 실현이 사회적 과업으로 부여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가 꼭 지상파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뉴미디어가 일부 측면에서 지역성을 구현하기에 더 용이한 환경일 수 있다.
지역방송이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과 재원을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는 것도 결국 본연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며, 이를 통하여 존재론적 가치를 밝히고 그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방송 재허가 평가 시에 적용되는 지역성 평가 지수도 레거시와 뉴미디어 분야에 맞추어 고안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재허가 평가가 지역성을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보다는 재허가에 필요한 평가 점수를 산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면 그 필요성은 이미 충분하다. 따라서 지역방송을 위한 공적 제도 역시 현시대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성의 특징을 적극 반영해야 할 것이다.
로컬크리에이터와 지역방송이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역성이란 것 자체가 지역방송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설령 상품화된 지역성일지라도 오랜 시간 소외되어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지방도시가 이때라도 ‘움직이고 흐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어찌 됐든 사람이 있어야 지역이 남는 거고 우리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던 지역성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방송 내에서만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는 바깥 흐름과 통하지 않는 외골수적인 시선에만 머무를 수 있다. 그렇기에 추후에는 경제 산업 등 다른 학문과의 혼종을 자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더욱 주시할 것은 코로나 시대 이후에 달라질 로컬의 모습이다. 미디어 환경만큼이나 로컬의 변화를 직시하는 것이 지역방송의 미래지향적 역할을 찾는 방법일 것이다.
/소민정(전북CBS PD, 전북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참고 문헌
ㆍ마동훈(2001). 지역방송, “밖에서” 할 일과 “안에서” 할 일 : 지역방송 뉴스분석을 중심으로 한 경쟁력 강화 방안 모색
ㆍ이문행(2018). 지역방송 콘텐츠 경쟁력 진단 및 활성화 방안, 언론과학연구, 18(2), 5-34
ㆍUrry, J. (2002). Mobility and proximity. Sociology, 36(2), 255-2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