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두 오빠의 억울한 사망 사건, 진실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생 한루비 씨 사연

1971년 사망한 형 한종호 씨(전주숭실고등공민학교 재학 시절, 왼쪽)와 1974년 사망한 동생 한보만 씨(전주영생고등학교 재학 시절).(사진=유족 한루비 씨 제공)
1971년 사망한 형 한종호 씨(전주숭실고등공민학교 재학 시절, 왼쪽)와 1974년 사망한 동생 한보만 씨(전주영생고등학교 재학 시절).(사진=유족 한루비 씨 제공)

“정보기관에 끌려간 두 오빠가 고문당한 뒤 큰 오빠는 한 달 만에 괴한들에게 맞아 사경을 헤마다 죽고, 작은 오빠는 큰 오빠가 억울하게 사망한지 3년 만에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됐어요. 두 오빠의 죽음에 관한 진실규명을 위해 도와주세요.”

30일 오후 3시. 한루비 씨(55)의 애절한 호소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1970년대 발생한 두 오빠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해 그동안 국가 기관들과 힘든 싸움을 벌여왔다는 한씨의 긴급 제보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녀는 "<전북의소리>가 최근 보도한 '1981년 신정일 씨의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불법 구금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정보원에 자료 제출 명령을 내리기로 의결했다는 기사를 보고 두 오빠의 의문사 진실규명도 꼭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화를 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해당 기사]

‘안기부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지옥에서 보낸 7일’ 저자 신정일, ‘1981년 사건’ 관련 진실화해위, 국정원에 '자료 제출' 명령...43년 만에 '진실규명' 이뤄지나?

신민당 김대중 후보 선거운동 도운 두 학생, 왜 죽었을까?

1970년대 전북지역에서 사망한 한종호 씨(형)와 한보만 씨(동생)의 인적사항 및 체포 경위, 목격자 증인 등 자료.(유족 한루비 씨 제공)  
1970년대 전북지역에서 사망한 한종호 씨(형)와 한보만 씨(동생)의 인적사항 및 체포 경위, 목격자 증인 등 자료.(유족 한루비 씨 제공)  

한씨는 3년 전인 2021년 2월 1일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공화당으로 추정되는 괴한이 신민당에서 선거 홍보활동을 돕던 오빠를 무참하게 때렸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눈물로 호소했던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날 한씨는 “2021년 2월 당시 전주시청 기자회견 직후 진실화해위원회에 억울한 두 오빠의 사연과 함께 진실규명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두 차례 기각돼 1971년과 1974년 의문의 죽음을 맞은 두 오빠의 억울한 원인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11월 재조사를 의뢰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인 상태”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많은 시간이 흐른 사건이어서 증언자와 목격자의 진술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각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그동안 담당 조사관들의 잦은 교체로 일관성 있는 조사와 규명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유족들의 불만이 이어져 왔다. 

이날 “두 오빠를 억울하게 잃었다”면서 “진실을 꼭 밝혀달라”고 호소하며 눈물을 흘린 한씨는 1970년대에 전주에서 발생한 두 오빠의 의문 사망 사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 상세하게 답변한 뒤 관련 사진과 자료들도 이메일과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보내왔다.

고 한보만 씨가 사망한 저수지 인근에 묻힌 임실군 운암면 야산 터.(사진=한루비 씨 제공)     
고 한보만 씨가 사망한 저수지 인근에 묻힌 임실군 운암면 야산 터.(사진=한루비 씨 제공)     

두 오빠의 죽음이 발생했던 당시 나이가 3~5살이었다고 밝힌 한씨는 “서슬 퍼런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발생한 일에 대해 정치 보복이 두려워 수십 년간 그 때의 일을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다가 뒤늦게 부모님과 언니들로부터 그때의 사건을 들었다”며 "한참 늦게 진실규명을 위해 해당 경찰서와 국가 기관 등에 자료를 요청하고 진상 조사를 요구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임실군 운암면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전주시 서서학동에서 자취 생활을 함께 하며 벌어진 1971년과 1974년에 발생한 한종호·한보만 두 형제의 억울한 사망 사건은 세상이 무서워서 오랫동안 가족과 주변 친지들이 숨기고 살다가 동생인 한씨에 의해 2021년 세상에 알려지고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백방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라고는 일부 언론에 기자회견 내용이 공개된 것 외에는 아직 없다.

”박정희 후보 당선 직후 큰 오빠가 죽고, 3년 후 작은 오빠는 저수지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 후보 벽보.(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역사관 제공)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 후보 벽보.(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역사관 제공)

한씨의 큰 오빠 종호 씨(당시 18세)는 1971년 5월 전주숭실고등공민학교 재학 중에 사망했다. 이어 작은 오빠 보만 씨(당시 18세)는 3년 뒤인 1974년 1월 전주영생고등학교 재학 중에 숨졌다.

종호 씨는 1969년부터 학생 신분으로 신민당에서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니다 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신민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서자 벽보를 붙이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 홍보를 도왔다. 그러다 1971년 4월 27일 대선에서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후 이틀 만인 4월 29일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한씨는 “큰 오빠(종호)와 둘째 오빠(보만)는 당시 중학생때부터 3~4년째 신민당 활동을 해왔다”며 “특히 큰 오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신민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을 때 벽보를 붙이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 홍보를 도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큰 오빠는 1971년 4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지 이틀 후에 체포됐고 20여일 만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씨에 따르면 4월 29일 밤 9시께 전주시 서서학동 공수네다리 인근 마을에서 아는 지인이 집으로 찾아와 ‘큰 오빠가 3~4명의 괴한한테 맞고 있으니 얼른 현장에 가보라’고 했다. 이에 큰 오빠보다 3살 위였던 큰 언니(당시 21세)와 둘째 언니(당시 11세)가 일부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현장에 도착해보니 괴한들로부터 머리를 벽돌로 맞는 등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그후 큰 오빠는 체포돼 고문을 당했고 고통을 호소하며 사경을 헤매다 20여일 만에 끝내 숨졌다고 한다.

2021년 2월 1일 한루비 씨 등 유족들은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공화당으로 추정되는 괴한이 신민당에서 선거 홍보활동을 돕던 오빠를 무참하게 때렸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진실규명을 호소했다.(자료사진)
2021년 2월 1일 한루비 씨 등 유족들은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공화당으로 추정되는 괴한이 신민당에서 선거 홍보활동을 돕던 오빠를 무참하게 때렸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진실규명을 호소했다.(자료사진)

한씨는 “큰 오빠가 사망하기 전에 괴한들이 찾아와 ‘신민당 활동을 그만두라’라는 협박을 자주 했고, 경찰서와 정보기관에 끌려가 조사와 고문을 여러차례 당하기도 했다”며 “숨진 후에도 오빠의 시신을 강제로 화장시켰다”고 주장했다.

의문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74년 1월, 큰 오빠와 함께 신민당 활동을 하면서 전주영생고 2학년이었던 작은 오빠 보만 씨도 고향인 임실군 운암면의 저수지 주변 빙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에 대해 한씨는 “작은 오빠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주영생고를 다닐 때까지 줄곧 장학생을 놓친 적이 없었다”며 “큰 오빠를 도와 신민당 사무실에서 힘든 일을 도왔던 작은 오빠는 당시 신민당이었던 이철승·유청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똑똑하고 착하니 정치가의 길을 가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오빠가 숨진 현장에는 경찰관들이 나타났으나 전혀 수사는 하지 않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는 한씨는 “당시 전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한 두 오빠가 갑작스럽게 숨진 데는 정치 깡패들의 무차별 폭행에 따른 정치 보복의 희생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오빠 억울한 원한 풀어주고 어두운 역사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진실규명 반드시 해낼 것”

유족 대표 한루비 씨
유족 대표 한루비 씨

그러면서 한씨는 “경찰서에 여러 차례 찾아가 사건의 기록 등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당시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들게 했다”며 “이제라도 꼭 진실이 밝혀져 두 오빠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주고 또 다시 이러한 어두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실규명에 나서게 됐고, 꼭 이루고 말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두 사건을 1999년과 2001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자세히 듣고, 그 후 오빠들의 모교를 포함해 해당 경찰서, 병원, 국가기록원 등에 여러 차례 방문해 자료 등을 요청했지만 모두 자료가 없다는 답만 들었다.

그러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의 도움으로 사건을 공론화하기 시작했으며 2021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태다. 한씨는 "이제라도 진실이 꼭 밝혀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며 ”전국에서 이와 유사한 20여 건의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오빠(한종호·한보만)의 학교 동문과 친구, 당시 신민당 당원 가운데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다면 진실규명에 관심을 가져줄 것과 연락을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박주현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