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 의대 증원과 퇴색된 남원 국립의전원 설립...실태와 문제점(1)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000명 이상 파격적으로 늘리겠다고 예고한 정부가 당초 이번 주 중으로 구체적인 인원을 밝히겠다는 방침을 기약 없이 연기했다. 의료계의 거센 반발과 우후죽순처럼 각 지자체들이 의대 신설과 증원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한발 뒤로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 가운데 일각에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의료계와 대립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정치권 내부 조언을 배려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전북 현안이자 남원지역 숙원 과제인 국립의학전문대학원(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은 2018년 정부 방침으로 확정됐고 부지 선정까지 마친 상태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급기야 의대 증원 정책에 밀려 이대로 유야무야 사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퇴색하고 있는 남원 국립의전원 설립에 관한 실태와 문제점을 세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윤 대통령 “의료 인력 확충 충분히 소통할 것”...’의대 증원‘ 명확히 밝히지 않아 실망·아쉬움 ’교차‘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지역 완결적 필수 의료 혁신전략’ 회의에서 의료개혁의 핵심 쟁점인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과 추진 의지를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증원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선 의료 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이 필요 조건”이라며 “국민을 위한 정책 효과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 의료인, 전문가들과 우리 정부는 충분히 소통할 것”이라고 밝혀 당초 강한 의지와는 달리 한발 뒤로 물러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주에 소재한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이같이 밝혔다. 당초 예상과 달리 의과대학 정원 폭을 얼마나 키울지는 빠진 대신 윤 대통령은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이날 보건복지부는 국립대병원 등을 중심으로 필수의료 전달체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전략' 관련 브리핑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윤 대통령이 아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아 진행했지만 국립대병원이 지역 중증·응급 완결치료를 할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강화한다는 등의 계획 외에 의대 증원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수도권 쏠림'으로 인해 거의 고사 직전인 지방의료·필수의료를 확충하기 위한 방안 등에 역점을 둔 반면 적으면 500명, 많게는 1,000명에서 수천명까지 언급됐던 향후 의대 증원 규모는 빠져 실망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의대 중원 대신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 의료격차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립대병원의 필수의료 중추 육성 ▲국립대병원의 보건복지부 소관 전환 ▲재정투자와 규제혁신을 통한 중증질환 치료 역량의 획기적 강화 등을 제시했다.
2025학년도 대입 반영하려면 지금 밑그림 나와야...'알맹이 빠진 후퇴안' 지적

그러나 2025학년도 대학입시, 즉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치르는 입시부터 의대 정원이 늘어나려면 올해 안에 밑그림이 어느 정도 나와야 하지만 이날 이와 관련한 구체적 방침이 나오지 않자 자칫 무위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증원 규모가 얼마나 될지, 또 어떤 방식으로 확대할지에 관한 내용이 가장 큰 핵심일 것으로 믿었던 의료계와 각 대학, 지자체들은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알맹이가 빠진 후퇴안‘이라며 실망하는 분위기다.
앞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7일 저녁 소집한 의료계 대표자 긴급회의에서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이런 움직임을 정부가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의협 내부에서도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대략적으로라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일단은 반발을 의식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분석했다.
의협은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당시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간 '9·4 합의'를 이행할 것을 촉구해 왔다. 이 합의안의 핵심은 의대 정원 문제를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된 후 의정협의체를 통해 논의한다는 게 골자를 이룬다. 복지부와 의협은 올 초부터 현재까지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모두 14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의대 정원 규모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은 것이어서 정부가 이날 발표한 혁신전략에 증원 의제를 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됐다.
“국립의대·국립대병원 없는 지역, 의료격차 심화”...되풀이 '악순환'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오락가락한 발표와 후퇴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공백해소를 위해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필수의료 전달체계를 강화하는 혁신전략을 발표한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여야 정치권이 정쟁이 아닌 한목소리로 의대 정원의 획기적 확대를 환영하고 국민 대다수가 적극 지지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국민만 보고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의대 입학정원 규모 등이 빠진 것은 의사협회의 강경 투쟁 방침에 정부가 뒷걸음치며 지난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경실련은 “지역과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최소 1,000명 이상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와 국책연구기관의 검토 결과”라며 “의협이 논리와 근거도 없는 정책 발목잡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국립의대와 국립대병원이 없는 지역의 의료격차 심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을 뿐 개선이 요원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경실련은 이날 성명에서 “국립의대가 없는 전남과 경북, 인천 등은 의사와 병원이 부족한 의료취약지로 꼽힌다”며 “정부 정책의 최종 목표가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필수공공의료 부족을 해소하는 것인 만큼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국립의대가 없는 지역에 우선해 공공의대 신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계속)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