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따라 인생따라'

오래 사는 것이(장수長壽)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한유(韓愈)는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이다. 서른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정치적으로 깊은 좌절을 겪었던 한유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오잠(五箴)>이라는 글을 지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모르는 것을 염려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고칠 수 없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총서’에 실린 글이다.

또한 언잠(言箴)에서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찌 말을 하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묵묵히 있어도 그 뜻이 전해진다.“고 하였다.
그가 지은 <출문(出門)>이라는 시를 보자
‘장안 백만가에 문 나서니 갈 곳 없네.
아니 굳이 홀로 있음을 좋아해서랴.?
세상과 정말 어울리기 힘드네.
(중략)
문 나서면 각각 갈 길이 있을 것이지만
내 길 길은 아직 편하지 않네.
문득 이 가운데 머무르리니,
천명天命은 아마 나를 속이지 않으리.‘

당시대의 지식인으로 한유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원빈(李元賓)이라는 사람의 묘지(墓地)를 지었다.
“이관은 자를 원빈이라고 한다. 그 조상은 농서 사람이다. 처음에 양자강의 동쪽에서 와서 나이 스물넷에 진사과 시험에 추천되어, 삼년 만에 좋은 성적으로 급제하였다.
다시 박학굉사과 시험에 추천되어, 태자 교서의 직에 취임하였고, 한해 지나 나이 스물아홉에 경사(서울)에서 죽었다. 염을 마치고 사흘 뒤에 친구인 박릉 최홍례가 도성의 동문 밖 7리 되는 곳에 장사지냈다. 향(鄕)을 경의라 하고 원(原)을 승원이라고 한다. 친구 한유가 돌에 새겨서 기록한다.
사(辭)는 이렇다.
아아 원빈아, 장수長壽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요절을 싫어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살아 있어도 훌륭하지 않다면 누가 오래 살았다고 말하랴, 죽었다 해도 명성이 불후하다면 누가 요절이라고 말하랴, 아아 원빈아, 그대의 재능은 지금 시대보다 높고 덕행은 고인의 위에 솟아났다.
아아 원빈아, 대체 어찌된 일인가, 대체 어찌된 일인가,“
한유는 간결하게 그의 친구인 원빈의 이력을 적고 오래 산 것이 능사가 아니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그러면서도 솟아나는 슬픔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원빈아 대체 어찌된 일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가를 안다는 것이 쉽지 않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자식들 건사 잘하고, 그래서 자식들 자랑하고, 거들먹거리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일까? 나에게 가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어올 때 선뜻 잘사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할 때 나 역시 자괴감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선하게 사는가 하는 것임을, 또 때때로 선하게 사는 길은 오래 살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이라고 세네카는 말하는데, 짧고 길게 사는 것 그것이 어렵다.
/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