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 다른 언론-볼만한 뉴스(55)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새만금잼버리)가 우여곡절 속에 막을 내렸다. 긴 준비 기간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국내외 언론들이 새만금잼버리 개막 이후 연일 의제를 설정하며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회가 끝난 지금도.
특히 개막부터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속출과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개영식에서 80명 이상의 대원들이 탈진과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며 쓰러진 이후 일부 국내 언론들은 세계잼버리 개최지인 '전북과 새만금'을 쓰레기 더미를 갈퀴로 파헤치듯 보도하는 이른바 ‘먹레이킹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의 양태를 드러냈다.
주최 측의 부실한 준비와 안일한 대응에서 비롯된 문제는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새만금잼버리를 지역주의 관점으로 확대시켜 보도하는가 하면 세계잼버리대회 주최와 주관기관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거나 특정 기관 또는 지자체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며 책임을 덧씌우는 프레임 보도가 지속되고 있다.
'잼버리 실패' 근본적 진단보다 자극·선정적 보도, 위험수위 넘어서
세계잼버리 파행 운영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진단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장의 보도가 서울 주요 언론들의 일반기사는 물론 사설과 칼럼 등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역과는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상반된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상 실패로 막을 내린 새만금잼버리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기보다 일부 언론 보도에선 정쟁을 부추기거나 지역성과 지역주의를 지나치게 자극시키는 행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는 10일 ‘잼버리 한탕으로 예산 2조원 따낸 전북도, 대가는 나라 망신’이란 제목의 사설을 내보내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새만금잼버리의 부실 운영 책임을 지적한 사설은 제목에서부터 ‘잼버리 한탕으로 예산 2조원 따낸 전북도’란 과격하고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암시했다. 이날 신문 사설이 지적한 것처럼 전북도가 충분한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코로나 확산을 구실로 배수 시설 등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 '나무 한 그루 없고, 물이 흥건한 진흙탕 매립지에서 국제 행사를 열도록 했다'는 점에는 십분 공감이 간다.
조선일보 “국제 행사 미끼로 대규모 국가 예산 따내는 ‘한탕주의’ 이번이 처음 아니다?”

그러나 사설은 “한국은 국제 망신을 뒤집어썼는데 전북도는 잼버리를 계기로 최소 2조 6,000억원 규모의 직·간접 예산 혜택을 입게 됐다”며 “매립 비용 2,000억원, 1,000억원 넘는 잼버리 행사 예산 외에도 잼버리 유치 이후 착공된 고속도로엔 4,239억원의 예산이 소요됐고 여기에 연계되는 도로 건설에 1조 1,000여억원이 추가 투입될 예정이다. 2029년 개항 목표인 새만금 국제공항에도 8,077억원이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국제 행사를 미끼로 대규모 국가 예산을 따내는 지자체의 ‘한탕주의’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며 다른 호남지역 사례를 끄집어 들었다. 이날 사설은 “전남 영암의 F1경기장은 세금 4,300억원을 쏟아붓고 국제적 대망신으로 끝났다”며 “광주광역시는 ‘2019년 세계 수영선수권대회’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공문서 위조까지 했다. 새만금 잼버리로 끝나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잼버리조직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예산 1,171억원 외에 "이를 미끼로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됐거나 혜택을 입었다"는 등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도 잘 알다시피 새만금사업이 어떤 사업인가?
1989년 11월 새만금종합개발사업 기본계획 발표 이후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착수돼 30년 넘게 진행돼 온 국내 최장 기간의 국책사업이다. 최근까지 대통령이 무려 8차례 바뀌면서도 이처럼 새만금개발사업은 착공 후 현재까지 32년이 지났지만 계획 면적(291㎢)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 43%(125㎢)만 진척됐을 뿐, 전체 사업 완공은 기약 없는 국책사업으로 남아있다.
정부, 32년 끌어 온 새만금사업도 ‘한탕 노린 사업’인가?

이런 와중에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은 새만금을 전북도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왔다. 당초 정부 계획대로라면 1991년 방조제 착공 이후 14년 후인 2004년에 모든 사업을 마무리하도록 설계됐지만 2006년에서야 긴 방조제만 연결됐을 뿐 외곽 공사와 내부 개발은 여전히 미완인 채 진행 중이다.
그동안 찔끔찔끔 들어간 예산을 모두 합치면 많을 수 있겠지만 '미래의 땅', '신이 만든 땅', '신기원' 등으로 언론에서 부추겼던 새만금사업은 착공된 1991년부터 지금까지 전북도민들에게는 '로또의 꿈'에 불과한 곳이다. 무려 30년 넘게 진행된 사업에 투입된 예산을 마치 새만금에 세계잼버리를 치르기 위해, 또는 새만금사업을 위해 잼버리를 치러 한탕을 노린 것처럼 표현한 것은 분명 어폐가 있다.
<조선일보>는 앞서 지난 7일에도 ‘예산 1,171억 중 아이들 야영장엔 129억만… 조직위 운영에 740억’의 기사에서 “폭염·폭우에 대비한 기초적인 제반 시설 미비로 파행을 빚은 새만금 세계 잼버리 주최 측이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허투루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며 “조직위원회 인건비 등 운영비로만 740억원 넘는 돈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전북민언련 사무처장 “조선일보 예산 관련 보도 유감”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온 이날 잼버리조직위 측은 그동안 밝히지 않던 예산 내역을 세밀한 부분까지 공개하며 인건비와 운영비가 조선일보에서 제기한 것처럼 많지 않다고 밝혔다. 조직위 측은 긴급 추가지원 예산을 제외한 1,171억원 중 인건비는 55억원, 운영비는 29억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사무처장은 “7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예산 1,171억 중 아이들 야영장엔 129억만… 조직위 운영에 740억' 기사를 인용한 언론 보도들은 유감스럽다”며 “조직위 운영비 740억원은 조직위 인건비만 들어간 게 아니다”면서 전후 맥락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손 처장은 “이 내용은 용역 보고서만 확인해 봐도 알 수 있는 항목인데, 740억원이 전체 인건비로 쓰인 것처럼 '비대한 행정 조직 운영'을 거론하며 방만 경영 뉘앙스를 준 것이 적절한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조선일보 보도 이후 우후죽순 인용해 간 많은 보도가 대부분 조직위 인건비로만 운영비가 사용된 것처럼 기사화 하며 아이들을 위한 야영지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 쓰였다는 식으로 도식화 했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32년 되도록 기반시설 구축(1단계)도 하지 못한 상태”

마침 같은 보수적 성향의 논조를 보여온 중앙일보조차 12일 칼럼에서 새만금사업이 장기간 방치된데 대한 정부(정권)의 책임과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했을 정도다. 신문은 ‘국가 대개조,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도 국제적 망신을 시키고 국격을 추락케 한 책임은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며 “그러나 흥분과 분노의 뜨거운 감정에만 휩쓸려선 안 된다. 냉철한 이성으로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복기해봐야 할 때”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많은 언론들이 거론하는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칼럼은 “새만금사업이 애물단지가 된 데는 정치의 책임이 크다”며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돼 1991년 간척 사업의 첫 삽을 떴지만 이후 7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토지이용 계획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어 “‘식량 증산’이 목표였다가 복합산업단지로 변경됐고, 환경단체의 반대로 수년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는 칼럼은 “해양개발 및 글로벌 허브(이명박)-동북아 경제 허브(박근혜)-재생에너지 단지(문재인)-금융·관광·IT 특화 기지(윤석열)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발 구호는 요란했지만, 32년이 되도록 기반시설 구축(1단계)도 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간척사업을 시작한 중국 상하이 푸둥 지구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자리 잡았다”고 밝힌 칼럼은 “새만금은 차질없이 계획대로 진행된다 해도 2050년이 돼야 완료된다. 60년 걸린 국책사업인데, ‘새만금이 국가 발전과 미래 비전에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호남 출신 정치인)는 탄식이 나온다”면서 “먼 미래를 내다본 전략적 고민과 청사진 없이 불쑥 던져놓고 보는 무책임한 정치가 재앙의 불씨를 잉태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일갈했다.
전북CBS 보도국장 "죄송합니다. 새만금입니다!“ 칼럼서 대변

오죽했으면 전북CBS 이균형 보도국장은 12일 "죄송합니다. 새만금입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번 잼버리 파행에 대한 새만금 입장을 대신해서 전하기도 했다. 그는 컬럼에서 “앞으로도 27년 후인 2050년에서야 모든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니까요. 이처럼 한없이 늘어지다 보니 전북 도민들에겐 '새만금'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이지만, 전북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새만금', '새만금' 하다 보니 이미 다 완성된 것으로 알고들 계시지요”라고 지적하며 사상 최악의 잼버리로 인해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새만금 잼버리'가 된 배경과 이유 등을 이렇게 설명했다.
“역대 정권에서 전북에 위치한 저에게 얼마나 관심을 보였나요? 제가 서울이나 수도권 등에서 진행되는 국책 사업이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무한정 늘어진 채로 남아있을까요? 만약 제때 예산이 투입돼 정해진 기간 내에 간척사업이 마무리됐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망가진 잼버리 대회로 치러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칼럼 말미에서 이 국장은 “'게'도 '그물'도 다 잃었거니와 '꿀'은 고사하고 '벌'만 허벌나게 쏘였네"라고 표현해 더욱 시선을 끌었다.
사설은 신문 '속마음'...큰 상처와 좌절 안겨준 사례
조선일보가 사설 제목에서부터 지적한 ‘잼버리 한탕으로 예산 2조원 따낸 전북도, 대가는 나라 망신’과는 상이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관점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새만금잼버리 실패의 원인을 '전북'의 프레임에 가두어 찾다 보니 새만금사업 전반의 실태와 문제점을 놓쳤거나 표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묻어나는 보도다.
신문의 1면이 '얼굴'이라면 사설은 그 신문의 논조를 대표하는 '속마음'과 같다. 가뜩이나 실패한 새만금잼버리로 허탈과 실망이 가득한 전북도민들에게 더 큰 상처와 좌절을 안겨준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