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의 '세평'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Paul-Valéry, 1871~1945)의 시, <해변의 묘지> 마지막 구절이다.

2019년, 작년의 오늘 나는 ‘세트’(Sète)라는 이름의 인구 4만 명의 프랑스 지중해 연안 도시에 있는 시인 ‘폴 발레리’의 무덤이 있는 공동 묘지를 찾았다.

‘세트’는 폴 발레리’가 태어나고 묻힌 곳이다. 그를 기념하는 기념관(뮤지엄)과 그가 묻힌 공동묘지 ‘마랭 묘지(Cimetière Marin)’에는 아래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드골 대통령에 의해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 프랑스 뿐만이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소개되는 ‘폴 발레리’,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산 언덕 해변의 공동 묘지의 화려한 무덤들 중에서 그의 무덤은 간소하고 소박했다. 딱 시인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무덤이다.

10대 후반 때 그의 장편 시, ‘해변의 묘지’, 마지막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는 세상이 온통 회색(灰色)빛으로 꽉차 있고, 박정희의 독재 무단통치의 암울한 시기에, 내 삶을 내가 살아내야 한다는 의지와 당위를 일깨워 주었다.

40년도 더 지나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까지 시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내 발걸음은 그의 묘지 앞에서 긴 시간 머물렀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응시하는 시인은 어느 날 누구든 닥치고 마는 죽음에 대응해 "살아야겠다!"는 삶의 당위와 의지를 노래했지만, 나는 그의 시에서 인간 개인의 존재론의 물음 만큼이나 동시에 사회의 존재의 물음에 의미를 뒀다. 물론 두 의미는 같이 있고 삼투(滲透) 한다.

Paul-Valéry, 1871~1945, 묘지
Paul-Valéry, 1871~1945, 묘지

카뮈(Albert Camus) 식으로 말해 ‘던져진 처지에 절망해 자살할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 어떻게든 삶을 살아낼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죽지 마라. 차라리 죽여 버려라.’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더구나 정치가 긴 시간 사람들 삶을 피폐시키는 한국 사회 현실이라면 말이다. 민족반역자, 도독놈들, 지식으로 사회를 교란시키면서 부패 권력에 기생하는 것들, 촛불로 일으킨 민의를 대의(代議)한다는 구실로 또 다른 기득권 층에 편입해 ‘촛불혁명’을 말로만 떠드는 자들, 온통 불살라 태워야 할 것들이다.

공동 묘지에는 3개의 축이 흔들렸다.

바다, 태양, 묘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묘지 앞에 벤치에서 일어나 지중해 바다를 향해 나는 걸어내려 갔다. 프랑스 남부의 태울듯이 내리쬐는 햇살 속으로 걸어 나갔다. 땀이 비오듯 흘렀다.

/김상수(작가ㆍ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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