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화 칼럼
'이차전지'에 관한 지역 언론들의 의제가 연일 눈길을 끈다. '주민 안전' 보다 기업의 ‘투자 협약’ 에 초점을 모은 기사들이 넘쳐난다. 어떤 의제를 어떻게 배치했을지 우선 순위가 명확히 드러났던 6월 15일 지역 언론사 보도들을 분석해 보았다.
#1.
군산에 위치한 이차전지 제조공장인 '천보 BLS'에서 또다시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14일 오후 4시 이후 발생한 사고로 당일 날에는 지역 언론에서 단신으로 뉴스를 다뤘고, 15일 본격적인 기사와 뉴스가 나왔다.
#2.
'천보BLS'의 화학물질 누출은 한 달 사이에 2번이나 발생하면서 군산 시민들의 불안감은 가중되었다. 지난 1차 사고 이후 화학물질을 다루는 2차 전지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새만금에 입주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시민사회단체는 안전 대책 수립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반복되자 배터리 업체 전반을 대상으로 한 유해업종 입주 반대 등 반발이 커졌고 새만금 이차전지 특구지정을 앞둔 행정기관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새만금개발청에서 ‘공장 등록 취소’를 언급하며 강하게 업체를 압박하고 나선 것.
#3.
이날 새만금개발청의 경고와 함께 민주노총 전북본부에서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외치기 전에 노동자와 주민의 안전보건대책을 수립하라는 성명을 내놓았고 익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에서는 '천보BLS'의 가동을 중지할 것을 권고하며 사안이 가볍지 않음을 내비쳤다.
#4.
같은 날 이차전지 핵심소재 원료인 '리튬염'을 만드는 업체인 ㈜이데일이 새만금에 6,000억원을 투자해 생산공장을 짓기로 한 투자협약이 있었다. 투자 규모는 6,005억원,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공사에 들어가 앞으로 700여 명을 신규 채용하고 투자도 더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전북도지사는 소재 공급에 관한 최적지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차전지 특화단지까지 새만금에 지정되면 투자 열기는 더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았다.
#5.
어떤 의제를 어떻게 배치했을까? 이차전지 관련 ‘주민 안전’ vs 기업의 ‘투자 협약’으로 뉴스 의제를 분류한다면, 15일 뉴스 배치는 지역 언론들이 무엇을 우선 순위로 고려하고 있는지 확연히 드러난 날이었다고 생각된다.
#6.
A와 B방송사는 메인 뉴스로 '천보BLS' 누출사고 소식을 리포트 기사로 전달했다. 업체의 누출사고를 강조하고 “정부도 화들짝 엄중 경고”, “가동 중지 검토” 등을 제목에 삽입해 위 사안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제목달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내용에서는 시민과 단체의 인터뷰를 삽입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어진 단신 보도에서는 노동단체와 방재센터의 입장들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이렇게 화학업체의 위험성을 강조한 이후 A언론사는 이차전지 업체의 새만금 투자 소식을 리포트 기사로 전달했는데 보도를 처음부터 시청했던 시청자라면 업체의 투자소식과 함께 자연스레 이차전지 업체의 위험성도 함께 인지될 수 있는 아이템 배치였다. B언론사는 투자협약 소식을 단신으로 후속 배치했다.
#7.
이날 C방송사는 이차전지 업체, 새만금에 6,000억원 투자 소식을 리포트 기사로 메인에 다뤘다. 그리고 이어진 단신 뉴스에서 화학물질 누출 '천보 BLS'를 엄중 경고했다는 소식을 다뤘다.
#8.
지역 신문사 D, E, F도 마찬가지다. 15일 업체 투자 소식을 1면 톱기사 또는 4단 이상으로 비중 있게 다뤘다. 그나마 D신문사가 19일 자 지역소식면에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강조하는 지면 톱뉴스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E, F 신문사는 더 심각하다. 홈페이지에서 14일 발생된 화학물질 누출 사고 소식이 검색되지 않는다. 아예 '무보도'한 것이다.
#9.
어떤 의제를 상위에 배치할 것인가는 언론사의 권한이다. 그 권한에 대해 뭐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현재 이차전지 특구 지정에 올인하고 있는 전라북도 상황에서 이를 문제 삼는 보도를 스스로 삼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조건 우리에게 와야 해’ 프레임에 빠져든 이해당사자로서 역할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일 뿐이다.
#10.
그래도 화학업체 사고의 위험성과 주민 안전을 계속해서 거론하는 소수의 언론사가 존재함에 안도감을 느낀다.
#11.
뉴스를 보신 독자나 시청자분들은 이니셜이 어떤 언론사인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A는 전주MBC, B는 KBS전주총국, D는 전북일보다.
/손주화(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