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슈 진단
지난 3월 8일 제3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투표일에 순창군 구림농협 자재 창고에서 투표를 기다리던 유권자들에게 트럭이 돌진해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발생한지 한달이 지났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해당 농협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나 몰라라 하고 있어 공분이 거세다.
구림면 피해자가족협의회 중앙앙선관위 앞서 '투표장 참사 책임 촉구' 집회

특히 한달 전 농협 조합장 선거 당일 사고로 가족을 잃은 순창군 구림면 주민들은 7일 항의 피켓과 상여를 짊어지고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를 방문하여 책임 있는 조처 등을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사고 피해자 가족들로 구성된 '구림면 투표소 사고대책 피해자가족협의회'(협의회)는 이날 중앙선관위 앞에서 '살인 투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투표소를 안전하게 관리하지 못한 선관위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협의회는 "그동안 마을의 모든 선거 때마다 투표 장소로 구림초등학교 강당이나 구림면 체육관 등 안전한 여건을 갖춘 시설들을 사용해 왔는데 왜 하필 차량 통행이 많고 사고 위험이 높은 구림농협 자재창고를 투표소로 결정했느냐?“며 "우리 가족들이 왜 투표장에서 참담한 일을 당해야만 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많은 인파 몰렸음에도 안전관리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 무엇인가?“

또한 협의회는 "투표소 입구와 차량 통행로가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투표 대기자들을 보호할 안전 유도선 등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며, 사고 발생 시간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안전관리 요원을 배치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도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협의회는 "사고가 난 투표소가 국가 기관인 선관위가 관리하는 현장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이태원에서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안전'을 외치던 대한민국(국가)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고 성토했다. 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질의서를 선관위 측에 전달했다.
특히 이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상복을 입은 채 상여를 짊어지고 선관위 앞에서 “이번 사고는 선관위의 안일한 안전 관리가 부른 참사”라며 퍼포먼스와 함께 투표소 관리 책임을 물었다. 또한 유족들은 "당시 현장 사진을 보면 투표소 입구와 차량 진·출입 통행로가 동일한 공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그런데 주변에는 안전 차단선이나 보행자 유도선이 전혀 설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족들 “이번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인재”...선관위 “선거사무 범위 아니다”
유족들은 "이번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인재"라면서 "대낮에 선량한 국민 수십 명이 투표소에서 목숨을 잃은 재난이 발생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선관위 측은 “당일 사고 원인은 1톤 트럭 운전자의 운전 미숙에 있고, 투표소 위치와 안전관리 미흡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선관위는 협의회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통해 "불의의 사고에 대해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사고 수습에 힘쓸 것임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며 "선거 당일 조합의 일부 건물을 투표소로 사용했으나 조합 판매시설 전체의 주차장 관리는 선관위가 위탁받은 선거사무의 범위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투표소는 2019년 제2회 조합장 선거 시에는 없었던 신축 건물로 투표소로서의 기능에 충분히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했다"며 "이번 사고는 가해 차량이 투표소 입구로 돌진한 극히 이례적인 일로 투표소 선정 과정에서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밝혔다.
"구림초등학교 강당, 왜 투표장으로 사용하지 않았나?"...논란
그러나 앞서 순창군선관위 측은 “그동안 구림초등학교를 투표소로 사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학교 등교 기간이고 코로나19 이후로 학생들 안전 문제가 대두되어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기에는 2020년 선거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학교장이 승낙을 안 해주었다”는 해명에 대해 구림초‧중학교 측은 “선관위나 농협 등 외부기관으로부터 투표 장소와 관련된 어떠한 협조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혀 책임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조합장 선거 당일 사고가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이 '안전관리 허술'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안전한 학교 강당을 사용하지 않고 투표(대기) 장소를 야외로 변경한 데 대한 의문을 분명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현행 조합장 선거는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합장 임기 만료일 180일 전부터 선관위(각 조합의 관할 구·시·군 선관위)가 관리·운영하도록 돼 있다.
전국동시조합장 선거 업무, 일체 선관위에 위탁...사고 수습은 '나 몰라라'

앞서 지난해 9월 21일 당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와 해양수산부(장관 조승환)·산림청(청장 남성현)은 전국 1,353개 농·수협 및 산림조합의 조합장을 선출하는 ‘제3회 전국 동시조합장선거’의 선거업무 관리를 선관위에 위탁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는 지난 2015년 처음 시행했으나 일부 조합에서 무자격 조합원 관련 선거 무효 분쟁 등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 올 3월 8일 실시된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부터는 업무 일체를 선관위에 위탁해 조합장 선거가 치러졌다.
그런데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진행되던 지난달 8일 오전 10시 30분께 순창 구림농협 주차장에서 A(74)씨가 몰던 1톤 트럭이 투표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인파를 들이받아 4명이 숨지고 16명이 크게 다쳤다.
검찰은 "투표를 마치고 사료를 사서 나가다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으나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진술 등을 토대로 A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선관위와 해당 농협은 서로 사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서 유족들의 거센 공분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