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의 '세평'

박원순, 그는 갔다. 그것도 서둘러 갔다. 장례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 시각 유족들은 한 줌 재로 돌아온 고인의 유골을 안고 고향 선산으로 향하고 있다”, “부디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유족들이 온전히 눈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고인과 관련된 금일 기자회견을 재고해 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했다. 그가 태어났던 곳으로 가는 시간만큼은 기다려줄 것을 “간곡히”부탁했지만 기자회견은 그대로 열렸다.

그가 왜?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그 말들은 유추하는 말들뿐이지 사실은 아니다. 진실은 더욱 아니다.

고인(故人)이 된 그와 나는 아주 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대표로 있던 희망제작소에서 1개월여 희망제작소 컨설팅을 부탁받고 일했다. 그와 같이 그의 방을 사용했지만 그는 자주 출장을 다녔다. 어쨌든 얘기를 나눴고, 서너 차례 술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그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좀 지나서 ‘희망제작소 돕기’ 사진전에 내 사진을 내놓고 사진전을 그곳 전시장에서 했다. 그리고 시장이 되고 난 이후에는 한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니까 한 10년 이상 못 봤다.

TBS 7월 13일 보도(화면캡쳐)
TBS 7월 13일 보도(화면캡쳐)

그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영문을 모르니 안타까움도 더했다. T.V를 봤다. 혹시 T.V를 보면 그의 죽음에 대하여 어떤 이유라도 알 수 있을까? 내걸린 현수막이 TV회면에 잡혔다.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내심 덜컥했다, 뭐지? 바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고소인과 변호인 동행 고소, 고소 당일 즉시 변호사 입회하에 경찰 조사, 그리고 기자들에게 통지, 기자회견장에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의 집합과 주시, 이 과정이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박원순은 아직 피고소인일 뿐이지 성추행 범인으로 확정된 어떤 형사 재판도 받은 사실이 없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면 지위의 높고 낮음 신분을 막론하고 어떤 누구든 헌법 제27조 제4항 “형사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국가 최고 헌법은 명시하고 있다.

인권에 대한 사회 이해나 인식이 보편화되지 못했던 시대에는 혐의가 있는 것만으로도 범인처럼 막 다루어졌다. 이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에서 헌법의 무죄 추정이라는 헌법상 기본 원리를 잘 지키지 못했던 어리숙한 시대였기에 그렇다 쳐도 21세기에, 그것도 고소인의 법률 조력자인 변호사와 회견장에 나온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도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실정법을 대상으로 고소 고발의 경험도 있는 분들이니 법 절차를 다 알만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단정적이다. 예단의 정도로는 지나치게 확정적이었다. 딱 한 줄 ‘박원순 시장은 성추행범이다.’였다. 신고인은 딱 하루만에 '피해자'가 됐고 박원순은 ‘흉측하기찍이 없는 성범죄자’로 낙인찍히고 있었다. 이는 바로 ‘여론재판이었다.

고소인도 나오지 않았고 피고소인은 막 장례가 끝나고 화장이 되어 경상남도 고향 선산을 가고 있는데, T.V 카메라로 법정 아닌 법정이 생중계되고 있었고, 변호사는 재판장이었고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마치 배석 판사들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 분들 발언은 하나같이 ‘박원순 시장은 성추행범이다’를 전제로 말하고 있었다.

격한 발언이 쏟아졌다.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으로 전형적 직장내 성추행 사건"임을 말했다.

"인구 1000만 명의 대도시인 서울시장이 갖는 엄청난 위력 속에서 어떠한 거부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위력 성폭력의 특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박 시장은 시청 내실 등에서 고소인에게 신체적 접촉을 했고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음란한 문자와 사진을 전송했다.“고 주장했다. 듣기에 끔찍하게 들려왔다. 내가 아는 박원순이 아니었다.

4년 동안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들렸다. 그 신고인 여성은 4년 동안 자신의 성인지 판단에서 자기 결정권은 없는 상태로 그렇게 무력했단 말인가? 아니?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질문인가? 내가 피해자 중심주의나 '피해자의 관점'을 도외시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연령은 알 수 없지만 사회 활동을 하는 고소인은 성폭력상담소 소장의 말처럼 “서울시장이 갖는 엄청난 위력 속에서 어떠한 거부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불가항력이었단 얘기가 아닌가? 4년 동안이나 말이다. 얼핏 들으면 그 얘긴 박원순이 마치 반란으로 서울 시장 자리를 차지한 막가는 전두환 같은 폭군 출신인가?

한국기자협회 홈페리지 갈무리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내가 아는 박원순은 여성적일 만큼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다. 상대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친절한 사람인데,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타인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인간인가? 내가 경험한 그는 지나치게 민주적일 만큼 지루한 의사 교환과 토론이 그의 특기인데 또 다른 뒷면의 그의 얼굴이 있었나?

한국 사회에서 ”성추행 범죄“란 ’빨갱이‘ 이후 최고 위험 수위의 이데올로기가 됐다. 이유불문 속수무책으로 페인이 되다시피 한다. 그런데 박원순이 성추행을?

그랬을 수도 있다. 모르니까 인간이란. 개개인 인간의 저 복잡하고 미묘한 복합성이란 간단하게 규정지을 수 없다. 누구든. 그런데 그렇지만 T.V 카메라로 실시간 중계되는 ‘여론 법정’은 한 치의 여지도 없이 무죄추정의 원칙인 실정법을 위반하고 있었고 그들은 박원순을 성추행범‘으로 확정 지었다.

신고인의 발언은 이미 피해자 신분이 됐고 그의 입장은 기자회견장에서 대신 낭독됐다. 나는 가능한 내 판단이 유보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도 그런 것이 나는 이 사건의 정황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내 생각이 일방으로 기울어지면 안 된다고 여겨 낭독한 신고인의 입장문을 여기에 포스팅으로 옮기기도 했다. 처절한 심정이었다. 안타까웠다. 위로를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입장문 중에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라는 문장에서 걸렸다.

아마 신고인은 서울특별시 시의 장(葬)으로 장례를 치르면 안 된다는 청와대 청원을 말하고 있었다. 그 청원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과 서울시 온라인 분향소 애도 100만 명이 넘는 숫자란? 숫자의 크기에서 단순 비교될 사안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신고인이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라고 하니, 갑자기 신고인의 심정이 자연스럽게 읽혀오지 않았다.

기자 회견 중에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추행 사건임에도 피고소인이 망인이 돼 공소권 없음으로 형사 고소를 진행 못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면 피해자가 사과받고 책임이 종결된 거 아니냔 일방적 해석이 피해자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죽음으로 사건이 무마돼선 안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결정인 형사법 절차가 아닌 민사의 법 절차는 있다. 또 어떤 공신력을 통한 형식이든 사실은 규명되어야 하고 신고인의 입장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동시에 죽은 자의 입장도 보다 사실에 접근했으면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도 왕왕 용어와 다르게 정작 피해자를 사건에서 제외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표현보다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면서 피해자의 고통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직 비서 측의 주장처럼 박 시장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데 대해 "저희 나름대로 최대한의 예우를 했다. 이해해 달라"는 설명에는, 어제 기자회견장에서 T.V로 중계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이란 현수막처럼 예단은 무죄추정의 원칙인 헌법 정신을 일탈한 것이다. 이는 ‘죽은 자에 대한 명예훼손' – 사자명예훼손죄(死者名譽毁損罪) - 가 우려된다. 이것이 과연 “최대한의 예우”를 한 것인가? "예우"와 ’성추행범죄확정자'는 모순이다. . .

김상수 작가
김상수 작가

신고인 측은 2차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이런 기자회견일수록 격정과 감정이 아닌, 사실에 입각한 증거로 말해야 한다. 하나하나 사실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신고자 측의 목적일 것이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을 여론의 법정에 세우겠다는 취지의 2차 기자회견은 아니길 바란다.

/김상수(작가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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