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지도자가 때로는 지성적이고 유식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일반적으로 유용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된다. 지성은 사태의 복잡성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 지성의 소유자를 너그럽게 만들며, 사도(使徒)들에게 필요한 신념의 강렬함과 격렬함을 매우 완화시킨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들, 특히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은 매우 편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의 말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르봉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줄 많은 증거들이 있다. 지성에선 단연 우위였던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가 권력투쟁에서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에게 패배를 당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Serge Moscovici, 1925~2014)는 [군중의 시대](198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더의 독성
“빛나는 지성과 폭넓은 지식은 그것들이 부족하였던 스탈린보다도 그것들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던 트로츠키에게서 하나의 핸디캡이 되었다. 즉 그것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트로츠키를 망설이게 하였으며, 타협하고 틀리게 계산하는 경향이 있게 하였다.”
지지자들의 열렬한 추종을 이끌어내는 지도자의 특성은 지성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점도 지성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 진 리프먼 블루먼(Jean Lipman-Blumen, 1933~)은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200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리더의 독성이 만개하면 누구나 쉽게 그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래서 이 심한 독성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교활하기 짝이 없는 치명적인 리더나 독성의 초기 단계에 놓여 있는 리더의 자석 같은 당김을 피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그런 리더의 경우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거나 우리에게 덫을 씌우는 도전과 이상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지성은 단점이라는 건 지도자들이 지성은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기존 리더십의 그런 한계를 꿰뚫어보면서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을 모색해보자는 뜻이다. 미국 정치학자 머리 에델먼(Murray Edelman, 1919~2001)은 “역사와 이론은 지도자가 추종자를 만들기보다는 추종자가 지도자를 만든다는 걸 시사한다”고 말한다. 정치학자 제임스 번스(James M. Burns, 1918~2014)가 내린 결론도 같다. “위대한 추종자가 있어야 위대한 지도자도 가능하다.”
리더십과 섬김
리더십은 지도자와 추종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업의 산물이라는 걸 인정할 때에 비로소 바람직한 리더십의 실천이 가능해진다. ‘지원적 리더십(supportive leadership)’,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dership)’ 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이 외쳐지는 이유도 바로 그런 변화의 흐름을 시사해준다.
미국 리더십 전문가 J. 도널드 월터스(J. Donald Walters, 1926~2013)는 [지원적 리더십의 기술(The Art of Supportive Leadership)](1987)에서 “진정한 리더십은 오직 한 유형 뿐이다. 그것은 바로 ‘지원적 리더십’이다”며 이렇게 말한다. “지원적 리더십은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끄는 것이다. 지원적 리더십은 강압이 아닌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원적 리더십은 인간과 관련된 어떤 일에서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준수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사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 1904~1990)가 창시한 운동이자 리더십 유형으로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복(公僕)이라는 말뜻에 충실하고자 하는 ‘섬기는 리더십’이다. [예수의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의 비밀(Jesus on Leadership: Discovering the Secrets of Servant Leadership)](1998)의 저자인 C. 진 윌크스(C. Gene Wilkes)는 ‘서번트 리더십’의 기본 원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리더십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리더십은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이다.”
존 맥스웰(John C. Maxwell, 1947~)은 “섬김은 조종이나 자기홍보의 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섬김의 동력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했다. 남들을 지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눈독을 들여 리더가 되려는 사람들이 흘러 넘치는 세상에서 꿈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리더나 지도자들에게 ‘섬김’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섬김’을 바치려는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래야 지도자에게 지성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