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남형석 MBC 기자
지난 5월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이란 산문집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남형석 MBC 기자가 8월 두 번째 산문집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란 산문집을 출간했다.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란 책은 남 기자가 휴직하고 강원도 춘천에 내려가 ‘첫 서재’란 공유 서재 하며 벌어진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이다.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지난 3일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의 저자인 남형석 기자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남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현직 기자가 쓴 ‘고작 이 정도의 어른’ 이어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산문집 화제

- 지난 8월 <돈이 아닌 것을 버는 가게>란 두 번째 산문집을 출간하셨어요. 첫 산문집과 3개월 차이인데 힘들지 않으셨어요?
“이게 출간 기준으로는 3개월 차이가 맞는데요. 제가 첫 번째 책은 일기 형식으로 몇 년 전부터 매주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올렸던 글들을 모은 책이에요. 그래서 몇 년간 글이 쌓여 있었던 상태여서 그걸 출간한 거고 또 그 출간하는 사이에 제가 ‘첫 서재’를 짓고 고치고 하는 과정을 또 매주 전제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3개월 만에 후딱 다 쓰고 이렇게 한 게 아니예요. 때문에 렇게 보이는 기간에 비해서 힘들지는 않았어요.”
- <돈이 아닌 것을 버는 가게>란 책은 춘천에 문을 연 공유 서재인 ‘첫 서재’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책으로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말씀드렸듯이 글 쓰는 플랫폼에 매주 이거를 글을 제가 올렸거든요. 그러면서 ‘첫 서재’에 관한 글도 계속 꾸준히 차분 차분히 올렸는데 난다 출판사에서 그걸 눈여겨보시고 ‘첫 서재’ 한번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글들을 책으로 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주셨어요. 이게 시한부 서재잖아요. 이게 끝나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질 서재인데 기록으로 남겨두면 영원히 박제되는 거잖아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저도 감사하게 출간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 이게 시한부 서재잖아요. 처음 시작할 때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다를 거 같은데.
“다르죠.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는 정도 마음이었어요. 물론 나중에 너무 돈을 많이 써서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같아요.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고요. 그래서 나쁜 일 없이 나쁜 생각 안 하고 완벽하게 내가 가장 원했던 공간에서 살아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를 생각하면 잘한 것 같고 정말 행복한 삶이었죠.”
- 왜 서재를 하고 싶었어요?
“꼭 서재를 하고 싶다는 거창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 저와 아내가 살아온 모양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교집합을 찾다 보니 읽고 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다음 자기만의 공간 있는 것을 추구하고 거기에 또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결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공간을 꿈꾸게 됐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공간이면 서재가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책이 놓여 있는 공간에 그 책을 보러 사람들이 오는 공간이라는 걸 상상하게 됐어요. 그래서 서재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 책 중간에 ‘첫 서재’ 사진을 넣으셨잖아요. 보통 사진은 앞이나 뒤에 넣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편집자분과 같이 상의한 건데 편집자분이 저희 편집자께서 ‘처음에는 첫 서재가 어떻게 오는지 그리고 폐가를 고친 과정 같은 것들을 쭉 쓰는데 사진 미리 보여주는 것보다 글로 충분히 느낀 다음에 이렇게 탄생한 서재가 바로 이곳이라고 말하는 게 나은 순서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뒤에 넣으면 그걸 다 읽고 난 다음에 보는 것보다는 중간에 사진을 쭉 보고 그다음에 이 사진 속 공간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담는 게 낫다는 편집자의 판단이었습니다.”
- ‘첫 서재’가 예쁜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때 어땠어요?
“골목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그 서재를 봤어요. 그때는 폐가였는데 라일락 나무도 너무 예쁘게 살아있고 외벽이 다 타일로 덮어져 있었거든요. 타일로 덮인 외벽도 햇볕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더라고요. 폐가인데도 생명력이 있는 기분이고 햇볕을 듬뿍 받은 기분이어서 걸음을 딱 멈춰서 오랫동안 바라봤던 것 같아요.”
- ‘첫 서재’ 관련해서 주위에 얘기했을 때 뭐라고 하던가요?
“저는 오래전부터 직장생활 중에 한 번은 멈추고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단 얘기를 늘 했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얘는 어느 정도 그렇게 살겠거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삶의 모양이 뭔지 궁금해하셨을 수도 있겠는데 그게 소도시 춘천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서재를 하기로 했다고 말하니까 신기하기도 했던 거 같아요.”
- 10여 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다 20개월 휴직하고 춘천에 공유 서재를 연 거죠. 혹시 기자로서 번아웃 온 건가요?
“사실 번아웃이 왔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저는 기자로서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마음으로 도망쳐 나온 건 아니고 기자 생활도 괜찮았어요. 다만 한두 가지 이유를 말하자면 첫 번째는 아무리 좋은 직장도 회사라는 큰 옷을 제가 입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회사라는 옷 말고 진짜 나의 사람움을 꼭 닮은 공간에서 나만의 옷을 딱 입고 살아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어요. 내가 가장 지향하는 삶의 모양대로 살고 싶은 욕구는 아무리 좋은 직장과 좋은 동료들을 만나도 해소되지 않더라고요.
두 번째로는 기자를 오래 하다 보면 우쭐대는 마음도 좀 세지고 기자들은 그런 것도 좀 생기잖아요. 그리고 경쟁도 센 바닥이다 보니까 공격성도 강해지고요. 그런 저 자신을 문득 돌아봤을 때 제가 이렇게 살다가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굉장히 우쭐댄 사람으로 늙어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내가 20대 때 꿈꾸던 삶대로 한번 살아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살아 보니까 어떤가요?
“멀찍이 떨어져서 보니까 기자로서 쉽게 빠질 수 있었던 직업적 함정들에 내가 많이 빠져 있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반성도 많이 되고 다시 돌아가면 내가 어떤 기자가 돼야 될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본 것 같아요.”
돈이 아닌 것들을 벌어보자고 생각했고 그 돈이 아닌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라고 했을 때 타인의 잠재력이나 꿈, 아니면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고 이런 것의 기회를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본 것이...
- 어떤 기자가 좋을까요?
“물론 기자로서 경쟁심이 투철한 건 매우 좋은 자세이기도 하지만 그 경쟁심 때문에 가끔은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에 대해서 소홀히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내 경쟁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피해 주거나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는 기자가 안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고요. 공격성이나 경쟁심보다는 좀 더 따뜻한 시선 그리고 오해보다는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세로 취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음료도 주면서 2시간마다 공간 값만 받았잖아요, 그렇게 하고도 유지가 되었나요?
“애초에 제가 돈을 벌겠다고 한 게 아니에요, 사실 다 대출로 사서 지은 집이거든요. 그래서 대출 빚을 갚고 그다음 전기요금이나 수도 요금 나오는 것 정도만 충당할 정도로만 공간 값을 받자는 취지로 한 거예요. 그랬으니까 돈이 아닌 것들을 벌겠다고 한 가게죠. 그리고 제 생각보다도 손님들이 많이 와주셔서 오히려 유지하고도 남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첫 다락’은 원하는 사람은 일주일 정도 머물 수 있게 했고 값은 5년 후 돈이 아닌 다른 거로 주는 거죠. 왜 5년 후로 했어요?
“‘첫 다락’은 한 주에 한 분 한 손님한테 충분히 머물게 해드리고 숙박비 대신 5년 후에 돈이 아닌 걸 받는 조건으로 머물게 해드렸거든요. 그런데 숫자를 5년으로 정한 거는 사실 큰 의미 없어요. 1~2년 사이에서 뭔가 이렇게 큰 변화가 사람이 일어나기는 힘들고 10년 20년은 저희가 또 기다리기가 약간 너무 궁금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5년이라는 게 상징적인 숫자로 정하는데요. 머문 사람분들한테는 ‘계약이라는 게 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5년 있다가 숙박비로 줄 만한 무언가가 없다고 판단되면 10년 있다 줘도 되고 15년 있다 줘도 된다. 그 대신 가장 가치 있는 숙박비를 우리한테 주는 게 우리한테도 이득이니까 너무 5년이라는 숫자에 매몰돼서 또 조급해하시지 마시라’라고 말씀드려요.”
- 왜 돈이 아닌 다른 걸 원한 건가요?
“이제까지는 계속 돈 벌면서 살아왔잖아요. 돈 벌면서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삶의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죠. 돈 버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되니까요. 그래서 휴직 기간만큼은 돈이 아닌 것들을 벌어보자고 생각했고 그 돈이 아닌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라고 했을 때 타인의 잠재력이나 꿈, 아니면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고 이런 것의 기회를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본 거예요.”
- 20개월이면 80명 정도 받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저희가 겨우내 너무 추워서 겨울 방학 기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거 제외하니 마지막 손님이 77번째 손님이세요. 다 정말 소중했죠. 저랑 일주일씩 머물면서 얘기도 하고 인터뷰도 했는데 이분들이 뭘 안 주더라도 충분히 나의 자산이자 또 다른 나의 좋은 추억이 되고 좋은 이야깃거리들 많이 얘기해 주셨어요. 이런 것만으로도 지금도 많이 번 것 같아요.”
- 기억이 남는 거 소개해줄 수 있나요?
“딱 한 분을 꼬집어서 제가 말씀드리기가 약간 애매하긴 한데 어떤 분이 많이 오시냐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지만 그걸 할 여건이 잘 안돼서 고민 중인데 하고 싶은 걸 접는 방식으로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한번 해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 삶의 자세를 통해서 어떤 삶이 진짜 행복한 삶일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죠.”
- ‘첫 다락’ 손님이 좋다고 하면 목요일쯤 인터뷰하신 거 같던데 직업병인가요(웃음)?
“직업병일 수도 있는데 궁금했어요. 이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이분들이 우리 다락방으로 오는 건 어떤 시인의 말마따나 하나의 세계가 통째로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왕 오셔서 한 이 사람의 세계를 내가 최대한 알고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인터뷰하게 됐어요.”
- 책에 보니 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왔는데 아이가 의자에 토를 한 에피소드가 나와요, 그 아이 엄마가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갔는데, 왔나요?
“다음에 두 번이나 또 오셨어요. 아이랑 같이도 오시고 아이 어디 딴 데 잠깐 갔을 때 혼자서도 오셨어요. 그것을 다시 보셨는지는 제가 모르겠지만 일부러 저도 최대한 안 쳐다보고 그렇게 혼자 지내시라고 있어서 거기 다시 닦은 부분을 보셨는지 안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왔다는 것 자체에 저도 감사하게 생각했죠.”
내 삶의 모양에 맞는 건 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 책에 넣지 않은 에피소드가 잊을 것 같은데.
“책에 고마움을 다 담지 못했어요. 여기 오시는 손님들이 정말 바리바리 뭘 많이 싸 들고 오세요. 커피를 파는 집인데도 딴 집 커피도 드셔보시고라고 하면서 커피도 사 들고 오시고 저한테 준다고 점심도 가져오셔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거의 얻어먹다시피 했죠, 또 ‘첫 서재’ 끝난다고도 손님들이 직접 만든 ‘첫 서재’ 미니어처도 가져와 주시고 ‘첫 서재’ 모양의 오르골도 직접 만들어서 선물로 주셨거든요.”
- 책 마지막 부분에 ‘첫 서재’ 마지막 날을 상상하셨잖아요, 실재 그게 지난 일요일(10월 30일)이었죠.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지난주 일요일이었는데 저희가 일주일 더 문을 열기로 해서 사실 이번 주 일요일이거든요. 근데 문을 지금도 사실 문 닫는 날 생각하면 좀 먹먹해지긴 하는데 담담하게 닫아야죠. 담담하게 닫는데 아직 사실은 그날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날도 똑같이 문 열고 똑같이 문 닫고 하면서 별 감정 동의 없이 딱 그냥 웃으면서 끝냈으면 좋겠어요.”
- 책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엄청난 메시지를 전하려고 만든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분들이 한 번쯤 이렇게 잠깐 자기 삶을 멈추고 내 삶의 모양을 꼭 닮은 삶은 과연 뭘까? 그런 삶을 한번 살아볼 수 있을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주시면 책 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누구나 자기 삶의 모양이 있잖아요. 그 삶의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서울이라는 도시나 아니면 직장인이라는 생태계가 그런 생각할 여유가 없도록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내 삶의 모양에 맞는 건 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할 기회를 이 책 통해 가지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영광 기자

-저는 왜 이 부분에서 눈물이 핑 돌까요. 좋은 인터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