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욕심 부린다고 더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또한 헛된 일이다.” 구약성서 전도서(傳道書, The Book of Ecclesiastes) 5장 9절 말씀이다. “도시는 약탈하는 것은 바로 돈이며, 따뜻한 가정에서 남자를 멀어지게 하는 것도, 천성적인 순수함을 왜곡하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도,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게 만드는 것도 돈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Sophocles, 496~406 BC)의 말이다.
“돈에 대한 사랑은 모든 악을 낳은 어머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412~323 B.C.)의 말이다. “모든 것의 힘의 원천이 돈이라고 처음 지적한 사람은 특별히 전쟁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 철학자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25)의 말이다.
“인간이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되는 어디에서도 나라가 공정하게 통치되거나 번영 속에서 행복을 누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 사상가이자 정치가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가 [유토피아](1516)에서 한 말이다. “권력을 얻기 위한 돈, 돈을 지키기 위한 권력.” 르네상스 시대인 15-17세기에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의 가훈(家訓)이다.
돈의 힘
“돈은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도다. 그리고 단순히 비인격적이라는 이유로 과거의 노예제도와 구별된다. 곧, 주인과 노예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사라졌다.”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i, 1828~1910)의 말이다. “돈에 대해 부자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사회계층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이들은 돈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말이다.
“돈이 신이 되어 하늘의 조화를 빼앗을 수 있으며...천하의 귀한 것도 돈이오, 천하의 재앙을 부리는 것도 또한 돈이라 할지라.” 개화기에 발행된 [황성신문] 1899년 11월 17일자 논설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돈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1921년 10월 [개벽]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은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다 같이 소리를 아울러 돈! 돈! 한다.”며 “이것이 소위 배금열(拜金熱)이라는 것이다”고 개탄했다. [동아일보] 1926년 9월 16일자 사설은 “인정도 없고, 의리도 없고, 도덕도 없고, 염치도 없어진”, “황금에 대한 숭배열”을 ”참극(慘劇)“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묘한 일이다. 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니 그게 얼마나 위대한지에 관한 무수한 증언과 주장들은 돈을 비난하거나 저주할 뿐 돈에 대해 좋게 말하진 않는다. 늘 돈에 관한 이야기는 돈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하기 때문일까? 애써 좋게 보겠다고 들자면, 미국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로저 스타(Roger Starr, 1918~2001)의 다음 주장은 어떤가? “돈은 사회에서 가장 평등한 힘이다. 돈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그에게 파워를 안겨 준다.”
돈과 사회적 평등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돈을 ‘평등한 힘’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돈이 비난받을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미국 사회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Viviana Zelizer, 1946~)의 다음과 같은 관찰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부모는 자식을 돌보기 위해 보모나 보육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입양 부모는 아기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며, 이혼한 배우자는 위자료와 양육비를 지불하거나 받으며, 부모는 자식에게 용돈을 주고, 대학교육을 보조하며, 첫번째 담보대출 지불을 도와주고, 죽을 때 유산을 물려준다. 친구들과 친척들은 결혼선물로 축의금을 보내고, 친구들은 서로 돈을 빌린다. 한편 이민자들은 정기적으로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부친다.”
미국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James Ferguson, 1959~)은 [분배정치의 시대](2015)에서 위 글을 인용한 후 “여기서 현금은 이러한 일련의 관계들을 단순히 상업적으로 만들어버리지도, 그 관계가 돌봄, 애정, 협동, 공유의 장이 되지 못하도록 막지도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맨 처음 돈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획득하려고 그토록 힘쓰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고향의 친지에게 송금을 하고 자식의 교육을 위해 저축하는 등 그 돈이 타인을 돌보고 지원하는 행위를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나 시장거래를 일종의 반사회적 사리사욕과 고집스럽게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연결은 우리가 분배나 사회적 지원과 같은 질문을 다룰 때 특히 위험하다.”
돈의 여러 얼굴을 동시에 살펴보는 게 좋겠다. 혹 평소 돈을 경멸하는 발언을 자주 했던 사람이 돈에 대한 탐욕으로 이성이 마비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본 적은 없는가? 행여 그러지 말자. 돈을 경멸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위선과 거짓이 아니라면 말이다. 돈이 사회에서 가장 평등한 힘이 될 수 있게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서둘러 포기할 필요는 없다. 사적인 파워와 무관하게 돈이 사회적 평등에 근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이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돈을 다시 보는 건 어떨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