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과 대화하길 즐긴다. 그들은 우리도 반드시 거치게 될 길을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이며, 그들에게서 그 길이 어떤지에 대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469~399 B.C.)의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나이를 먹으면 지혜로워진다는 친숙한 교훈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믿기 어려워진다.” 미국 언론인 헨리 루이스 멩켄(Henry Louis Mencken, 1880~1956)의 말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5년이나 10년 전보다 더 현명하지는 않다. 사실 나는 내가 눈에 띄게 덜 현명해진 것이 아닌지 종종 의심하곤 한다.”
그렇다. 사람 나름이다. 세월이 지혜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세월만이 줄 수 있는 종류의 지혜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정치판에선 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뜨거운 쟁점이 되곤 한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 유력 후보 2인의 나이 차가 클 경우엔 비교적 젊은 후보는 박력과 패기, 비교적 나이 많은 후보는 지혜와 경험을 강조하는 게 마치 무슨 공식처럼 되고 말았다.
적절한 나이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가 1960년 대선에 나섰을 때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젊은 나이가 약점으로 여겨지자 케네디는 43세 이하의 나이로 국가지도자가 된 유명 정치가로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1759-1806),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356 BC-323 BC)을 열거했다. 이어 그는 만약 43세를 기준으로 자른다면 조지 워싱턴은 대륙군을 지휘하지 못했으며, 콜럼버스는 미국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며,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쟁자인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1913-1994)은 케네디보다 4살 많은데다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거쳐 부통령까지 지냈기 때문에 경험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짜증이 난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Joseph P. Kennedy, Sr., 1888~1969)는 케네디의 참모 테드 소렌슨(Ted Sorensen, 1928~2010)에게 단 한 문장으로 된 편지를 보냈다.
“나는 계속 닉슨의 경험에 관한 얘기를 듣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 경험이라는 것은 보통 일생 동안 저지른 실수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말이다.”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이 출마했을 때 참모들의 가장 큰 걱정 중의 하나는 레이건이 너무 고령(출마 당시 73세)이라는 점이었다. 경쟁자인 민주당 후보 월터 먼데일(Walter Mondale, 1928-2021)보다 17살이나 많았다. 그런데 레이건은 10월 21일 제2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자신의 나이에 대한 일반의 우려를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잠재웠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쟁점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 경쟁자의 젊음과 무경험을 내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진 않을 것이다.”
나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적절한’ 나이는 존재하지 않거나 그 기간이 매우 짧다는 점이다.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 1947~)가 다음과 같이 잘 지적했듯이 말이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성기 때 리처드 기어가 발하던 터프한 매력이나 위노나 라이더의 투명한 눈빛과 요염함을 가진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더 나쁜 소식은 평생이 아주 짧은 순간만 ‘적절한’ 나이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와 숫자
물론 그 ‘적절한’ 나이를 평가하는 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나이와의 투쟁’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나이의 주관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것도 바로 그런 몸부림으로 볼 수 있겠다. [플레이보이(Playboy)]지 창립자인 휴 헤프너(Hugh Hefner, 1926-2017)가 81살 먹은 2007년에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떤가?
“내게 아주 놀라운 사실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숫자 놀음일 뿐입니다. 암이나 교통사고, 그밖에 다른 이유로 40세에 세상을 떠날 운명인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이 지금 몇 살이라고 할까요? 38세? 그 사람은 이 운명을 알든 모르든 삶의 황혼기에 와 있습니다. 그럼 100세에 죽을 운명인 사람이라면 언제쯤이 인생의 황혼기일까요? 78세일까요?”
미국 배우 존 배리모어(John Barrymore, 1882~1942)는 “꿈이 있던 곳에 후회가 들어설 때에 인간은 비로소 늙은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게 젊음과 늙음에 관한 최고의 기준이 아닌가 싶다. 혹 주변에 나이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후회로 진입하려는 5-60대의 사람이 있다면, 미국의 자기계발 전문가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 1899~1975)의 다음 말을 들려주는 게 어떨까?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어보려는 부질없는 꿈이요 욕심이라고 할 망정, 그러면 또 어떤가.
“미켈란젤로는 80세가 넘어 최고 작품을 만들었으며, 괴테도 80세가 넘어 [파우스트]를 썼다. 에디슨은 90세가 넘어서도 연구를 계속했으며, 피카소는 75세 이후에 미술계를 지배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9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창조적인 건축가로 지목받았으며, 버나드 쇼는 90세에도 희곡을 창작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