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나(我')란 '나' 아닌 모든 인연이 '나'랍니다. 

이 말보다 인간에 대하여 범우주적이고 연기론적으로 정의를 한 사상이 있을까 싶습니다. 모든 인연이 바로 나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나이고, 우리가 밟고 서있는 땅도 나이고, 우리를 키운 태양도 나이고, 우리가 살기위해 숨을 쉬는 공기도 나이고, 우리가 편의적으로 이용하는 자연도 나입니다.

이처럼 우주를 구성하는 삼라만상이 모두 나인데 우리는 이를 망각한 채 자신을 다른 사물과 분별하며 독립적인 존재로 여기며 자신의 일부인 자연을 파헤치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시도 다른 존재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나’라는 존재는 모든 인연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我)' 아닌 모든 인연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화엄의 존재관을 보면 우주는 보배구슬 그물망처럼 독립한 개체이면서 전체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드라망과 같은 세계를 화엄에서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 중중무진의 다른 이름이 법계연기(法界緣起)입니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상대사께서 제자들을 지도하던 674년 어느 날 ‘표훈’이라는 제자가 “나(我)를 어떻게 봐야합니까?”라고 여쭙습니다. 이에 의상대사께서는 “제연(諸緣)이 근본아(根本我)이다”라고 답을 합니다. 즉 '나'를 제외한 모든 인연이 '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우주의 근원은 마음이니 마땅히 마음을 잘 써야 한다(善用心)’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신 중심의 사고방식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인간 존중 사상을 헌법의 최고 가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헌법에 천부적이고 초국가적인 인간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규정을 두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주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만물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셈입니다.이런 사상들은 오직 인간만을 생각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불러온 인간스러운 사상이고 해석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 송강절 선생이 지은 동양의 천문 및 지구 과학서인 '황극경세서'란 책을 보면 태초에 하늘(天)이 생기고 다음에 땅(地)이 생기고 끝으로 사람(人)이 생겼다고 하는데 이때 人(인)은 "인(人)+물(物)" 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사람만 있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人) 곧(乃) 하늘이다(天)”라는 최제우 선생의 인내천(人乃天)이나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라는 최시형 선생의 사인여천(事人如天) 등 동학의 인간존중 사상도 인간만을 중심에 둔 사상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께서 "저 새소리 또한 시천주(侍天主) 소리니라”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사람만이 홀로 한울(神靈)을 모신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이 다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훌륭한 사상을 수은 선생께서는 서양에서 들어온 서학에 대항한다는 뜻에서 ‘동학’이라고 불렀는데 천도교 중앙대교당 건물은 당시 서학을 상징하는 명동성당을 모방해서 지었고 현재 조선은 서학으로 물든 나라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서학을 믿으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민족주의자인 체 하며 입으로만 동학을 외치는 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장자(莊子) 도척(盜蹠) 편에 보면 옛날에 인간이 동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생활하던 원시 인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장자에 보면 옛날에는 짐승이 많고 사람이 적어 백성들은 나무 위에다 집을 지어 짐승을 피했고, 낮에는 도토리나 밤을 주워 먹고, 날이 저물면 나무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유소씨(有巢氏)의 백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유소씨(有巢氏)란 “인간 새(조류)”란 의미겠죠. 새가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사는 것처럼 인간들도 새집을 모방하여 나뭇가지와 덩굴로 높은 나무기둥에 집을 짓고 살았으니 ‘인간 새’란 의미로 ‘유소씨(有巢氏)’가 된 겁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들이 한때는 사슴과 더불어 살고 밭을 갈아 밥을 지어 먹고 옷을 짜서 입으면서도 서로 헤치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으니, 이때야말로 지극한 덕(德)이 융성했던 때였습니다. 이 당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살았던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자연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동물과 식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지구상에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하늘과 땅과 자연(동식물 포함)은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전 공룡도 인간 없이 지구상에 1억 5천만 년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서있는 지구의 역사는 46억년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현대인이 등장한 때는 약 3만5천 년 전이고,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도 모두 우주로부터 취한 원소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볼 때 인간의 역사가 차지하는 기간은 4분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도 “신즉자연(神卽自然, God or Nature), 자연즉신(自然卽神, Nature or God)”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이 자연이라는 건지 아니면 자연 속에 신이 있다는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연이 신이고, 신이 자연이면 범신론이 되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중용에서 "천지위언 만물육언(天地爲焉 萬物育焉)"이라 말씀한 것처럼 천지가 바르게 자리를 잡아야 만물이 잘 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만물(萬物)에는 인간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만물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인간만이 신성이나 불성을 지닌 청정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등 삼라만상도 모두 청정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산하대지를 종속물로 여기며 무분별하게 훼손하고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자연환경을 계속 훼손하면 언제가 인간들 스스로를 종말로 이끄는 과보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끝으로 중국의 고전 장자(莊子) 도척(盜蹠) 편을 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동양 최고의 성인인 공자님께서 '남의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탈하고 인간의 생간을 회쳐먹는 극악무도한 도척'이라는 도적한테 당하는 내용이 있는데 읽어보면 엄청 재미있습니다. 공자님이 도척한테 힘으로 당하는 게 아니라 말과 논리로 당합니다. 중국의 상고사를 가장 짧은 글로 가장 간결하게 요약하고 평가한 이야기인 셈입니다. 

/글·사진=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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