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아테네인 하나하나는 교활한 여우지만, 집회 때 모아놓으면 양떼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정치가이자 시인인 솔론(Solon, 630~560 BC)의 말이다. “군중은 폭군의 어머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412~323 B.C.)의 말이다. “이해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군중의 방식이다.” 중국 사상가 맹자(372-289 BC)의 말이다. 

“군중은 늘 겉으로 보이는 것에 사로잡히고, 이 세상에 있는 건 오직 군중뿐이다.”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가 [군주론](1513)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도자 없는 군중은 아무 가치도 없는 거나 다름없는 존재“이며, ”지도자가 없어서 통제되지 않는 군중만큼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무서운 존재도 없지만, 반면에 이것처럼 취약한 존재도 없다”고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머리를 달고 있는 눈 먼 괴물. 그러나 서로 반목하고 불화하는 머리들. 흔들리는 군중.”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말이다. “노아의 방주에 올라 탄 그 많은 동물들도 군중 속에 웅크리고 있는 금수의 본성에는 못 따라간다.” 영국 극작가이자 시인인 벤 존슨(Ben Johnson, 1572-1637)의 말이다. “군중은 머리만 있고 두뇌는 없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영국 역사가 토머스 풀러(Thomas Fuller, 1608~1661)의 말이다. 

군중을 지배하는 것은? 

“만약 사람들을 군중으로 이해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판단이란 복권을 뽑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1700)의 말이다. 장군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는 그들을 대단히 존경했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 1712-1786)은 “군사회의때 소집된 그들은 바보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각각은 매우 똑똑하고 이해력이 있다. 그렇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인간들은 그 만큼의 바보로 변한다.”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의 말이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된 모든 인간은 의식 있고 합리적인 존재이다. 군중 속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은 무의식적 존재일 뿐이다.”

“군중의 환심을 사는 방법은 쉽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을 놀라게 하는 것 역시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영국 작가이자 성직자인 찰스 칼렙 콘튼(Charles Caleb Colton, 1780-1832)의 말이다. “군중이란 자발적으로 야수의 본성으로 내려가는 사람이다.” 미국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말이다. 

“군중을 지배하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충동이다.” 미국의 노예제 폐지운동가이자 사회개혁가인 보스턴 변호사 웬델 필립스(Wendell Phillips, 1811~1884)의 말이다. “군중은 늘 이성이 아닌 공감으로 생각한다.” 미국 작가이자 성직자인 윌리엄 라운스빌 앨저(William Rounseville Alger, 1822-1905)의 말이다. 

“군중은 과도한 감정에서만 감명을 받는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구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의 말이다. 그는 “자신들의 힘이 지닌 순전히 파괴적인 본성의 결과로, 군중들은 쇠약한 육체나 시체의 분해를 촉진시키는 미생물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그는 군중은 어리석다는 원칙을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특징과 관계없이 항상 일관성 있게 적용했다. 그래서 “40명의 학자들이 투표했다고 해서 40명의 물지게꾼의 투표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는 말도 했다. 이는 자신이 프랑스한림원에서 제외된 것에 유감을 품고 있었기에 나온 말이 아니냐는 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군중심리와 경제적 행위 

지금까지 소개한 군중에 관한 명언들은 거의 대부분 군중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군중과 군중심리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한다. 특히 경제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정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할 이유에 대해 미국 정치가이자 금융가인 버나드 바루크(Bernard Baruch, 1870-1965)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경제적 행위는 본디 군중심리를 따르게 되어 있다. 군중의 사고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제 이론은 수많은 허점을 갖게 된다. 우리의 본성 깊숙이 뿌리 내린 특성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무형의 힘이지만, 이것을 이해해야만 당면한 사건들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바루크가 말한 ‘본성 깊숙이 뿌리 내린 특성’은 주위의 영향에 민감하고 모방을 선호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와 관련, 소비자 행동 컨설턴트 필립 그레이브스(Philip Graves)는 [소비자학?: 시장조사의 신화, 소비자에 대한 진실, 쇼핑의 심리학](2010)이란 책에서 “군중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는 눈앞에 군중이 반드시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며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말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의 원리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나 믿음은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십수년 전 국내 한 신용카드 회사의 TV 광고는 “천만 명이나 쓰는 카드가 있대요. 괜히 천만이겠어요”, “대한민국 성인 남녀 넷 중 하나는 ○○카드를 갖고 계십니다. 자그마치 천만이나 쓴다는 얘기죠”라고 외친 적이 있다. 확실한 사회적 증거에 동참하라고 선동하는 광고라고 할 수 있겠다.

“부동산은 심리다”라는 말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정권들, 특히 문재인 정권은 그 원리를 완전히 외면하고 사회정의를 내세운 탈레반식 도그마에 집착하다가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최악의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문 정권 5년간 ‘2030 부동산 영끌대출’이 8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이들 청년 세대의 비명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범죄’가 어디 있으랴. 잊지 말자. 군중심리를 모르면 경제는 물론 부동산 정책을 논하지 말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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