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서평

       '중세 접경을 걷다-경계를 넘나든 중세 사람들 이야기'(차용구 저, 산처럼, 2022)
       '중세 접경을 걷다-경계를 넘나든 중세 사람들 이야기'(차용구 저, 산처럼, 2022)

'유럽의 빵 공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라가 있다. 지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략 전쟁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이다. 이 나라의 역사를 아시는가. 그 맨 처음에 키예프 루스 공국이 있었다. 차용구 교수의 역작 <<중세 접경을 걷다>>에서 키예프 루스 공국의 여걸이었던 대공비 올가를 발견하고 조용히 웃었다.

알다시피 키예프 루스 공국은 요즘으로 말하면, 우크라이나를 비롯하여 벨라루스와 러시아까지를 포괄하는 큰 나라였다. 이 공국은 바이킹과 슬라브족이 공존하는 나라였는데, 제2대 통치자 이고리 1세가 죽자 부인 올가가 실권을 쥐었다.

올가는 바이킹의 딸이었는데, 슬라브 족의 반발이 심하자 외교적 줄타기를 하였다. 마치 지금의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그러하듯 말이다. 올가 부인은 흑해 남쪽의 부유한 대제국 비잔틴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두 나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부인은 비잔틴의 종교인 그리스 정교도 수용하였다(957년).

그런데 부인의 미모에 반했던가. 아니면 정치적 야욕에 사로잡혀서였던가. 비잔티움 황제가 올가 부인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였다. 부담을 느낀 올가 부인은 서쪽으로 눈을 돌려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접근하였다. 오토 1세는 올가 부인을 돕기로 결심하고 심복을 파견해 한동안 키예프 루스 공국을 도왔다.

외교적 곡예는 우크라이나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라는 말 자체가 “변경”, 또는 '접경'을 가리킨다. 그들은 동서남북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도 있는 반면에, 그 어느 쪽에서 등장한 강대국의 침략에도 쉽게 노출된다. 올가 부인은 위기를 잘 넘겼으나, 그 후손들은 안전하지 못했다. 13세기가 되자 키예프 루스 공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때는 몽골의 침략이 우크라이나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경계 또는 접경에 선 이들은 양자 공존의 상황을 추구한다. 그들은 상호교섭의 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차 교수의 책 <<접경>>은 그 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 책은 흥미로운 '접경'의 역사이다. '접경'으로 본 결과, 서양 중세사의 공간이 동유럽과 북유럽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여기서의 '접경'은 중의적이다. 지리적, 공간적으로만 그런 “접경”을 다룬 게 아니다. 차용구 교수는 젠더의 접경을 탐구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올가를 비롯해, 레글린디스, 테오파노, 기젤라, 힐데군트 등 많은 여성이 이 책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남성 위주의 중세사회에서 그들은 독특한 여성의 삶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또, 성소수자도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소수자들의 삶을 치밀하게 묘사하다보면, 여러 가치가 서로 충돌하다가도 어느 지점에서는 서로를 허용하고 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접경'은 단순한 주변부 또는 경계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란 느낌이 든다.

차용구 교수의 이 책에는 한 가지 큰 미덕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중세의 역사를 오해하였다는 깨침이 소중하다. 중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단조롭거나 단순하지 않았다. 그때 거기에도 다양하고 풍부한 삶의 현장이 있었다. '접경'에서 발아한 문화적 풍부함이 결국에는 시대를 바꾸고 역사를 새로운 경지로 이끈 견인차가 되었다. 우리는 이처럼 귀중한 시사점을 이 책에서 얻는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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