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농촌' 현장을 가다

황금빛 들녘에서 엄마의 포근함이 묻어난다.
황금빛 들녘에서 엄마의 포근함이 묻어난다.

같은 공간,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농촌의 시간은 도시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도시의 시간은 항상 재촉하듯 빠르게 흘러가지만 농촌의 시간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작년 이맘 때 왔던 농촌 마을의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너른 들녘은 편안하고 포근한 부모의 마음과 닮았다.     

멀리 보이는 정령치 발아래 서어나무 숲.
멀리 보이는 정령치 발아래 서어나무 숲.

들녘의 색깔마저 그대로 멈춰서 있는 듯하다. 재촉하지도, 뭔가를 빨리 만들라고 성화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힘들고 외로울 때 늘 고향을 생각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왔다. 

고향하면 농촌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늘 넉넉한 엄마의 품 같은 농촌이 우리와 함께 공존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다. 농촌은 말 그대로 힐링이다. 

농촌, 우리 사회 지탱의 근간...먹을 거리·마지막 쉼터 등 다양하게 제공 

농촌의 상징이 된 경운기.
농촌의 상징이 된 경운기.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잠시 서서 뒤를 돌아본다'는 말이 있다. '뒤따라오는 영혼이 쫓아오지 못할까 봐' 그런다고 한다. 우리도 수확의 계절을 맞아 넉넉한 농촌을 찾아 잠시 짧게나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것이 진정한 여행이자, 치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농촌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근간이다. 대다수 도시민들은 모르고 살 수 있겠지만 지금도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농촌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먹을거리 생산 외에 전통 보존, 휴식장소 제공 등 농촌의 다원적·공익적 가치는 넘치고 또 넘친다.

논과 강을 사이에 두고 가로 지르는 들녘길.  
논과 강을 사이에 두고 가로 지르는 들녘길.  

농업은 꼭 필요한 산업이며 농촌은 고마운 공간이다.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생명창고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우리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쉼터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농업을 새로운 개념의 블루오션으로, 농촌을 색다른 문화와 접목시켜 신개념의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일부 자치단체들의 노력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농촌이 바로 그런 곳 

논과 밭,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서어나무 숲.
논과 밭,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서어나무 숲.

남원시는 지리산 발아래에 위치한 운봉읍 행정리 서어나무 숲을 시가 직접 관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변 논밭까지 사들여 힐링 숲으로 제대로 관리한다고 하니 참 고마운 일이다. 지금보다 잘 관리가 됐으면 좋겠다. 

흔히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농촌이 그렇다. 잘 느껴지거나 보이지는 않지만 농촌은 사람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거나 대기정화 기능 등 수많은 유·무형의 가치를 갖고 있다. 농촌이 도시를 품고 있기에 사회가 평화롭게 상생하며 공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어나무 숲 입구.
서어나무 숲 입구.

서어나무 숲은 행정마을 주변 약 1,600m²에 가꾸어진 숲으로 주민들이 마을의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180여년 전 조성한 비보림 숲으로 유명하다. 마을의 안녕을 위한 제사와 주민들의 쉼터로 자리잡은 소중한 공간인 이 숲은 마을과 사람, 숲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 진실을 잘 보여주고 있어 지난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어나무 숲에서 농촌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생각하다 

수령이 200년 다 된 서어나무들.
수령이 200년 다 된 서어나무들.

이곳 서어나무는 자작나무과 낙엽교목으로 수피는 회색이고 근육질의 울퉁불퉁한 줄기를 가지며 수령이 최고 200년 이어 온 나무들이다. 서어나무는 안정된 상태의 이 숲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나무들이다. 크기도 웅장하며 쉼 없이 선선한 공기와 바람을 내준다.   

농촌은 어딜 가나 지천이 꽃밭이다.
농촌은 어딜 가나 지천이 꽃밭이다.

이 숲에 들어서면 농촌이 맞닥뜨리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며 농촌에 대해 감사한 마음부터 절로 갖게 한다. 시간이 날 때면 농촌을 찾아 농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호흡하며 위로하면서 느림과 그들의 투박한 삶의 원형을 체득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민들에겐 힐링의 한 방법이자 우리 농촌을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게 보존하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는 하늘과 땅의 동업...기후위기, 동업의 파국 부를 수도 

황금 들녘과 비닐하우스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농촌. 
황금 들녘과 비닐하우스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농촌. 

흔히 농촌의 논과 밭, 산을 지탱하는 흙의 본질은 어떤 아픔이나 고통, 슬픔, 기쁨조차도 표현하지 않는 '큰 침묵의 긍정'이라고 말한다. 지속가능한 다양한 생태계 조건은 흙과 사람이 직접 손을 맞잡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몸에 흙을 묻히고 흙과 소통한 사람만이 흙의 속 깊은 고민을 들을 수 있듯이 말이다.

가을 무가 한창 자라고 있는 마을 텃밭.  
가을 무가 한창 자라고 있는 마을 텃밭.  

농사는 '하늘과 땅의 동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땅이 아프다는 것은 하늘 어딘가도 아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는 하늘과 땅의 동업이 파국에 이르렀다는 말이고, 그 파국은 곧 모든 생명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벼가 잘 익어가고 있는 농촌 들녘.
벼가 익어가고 있는 농촌 들녘.

기후위기가 가져올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식량 부족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지금 우리가 농촌을 외면하면 곧 닥칠 위기다. 농촌을 더욱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까닭이다. 

/김미선(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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