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나이들 수록 명절이 오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입니다. 살림살이의 모자람이나 넉넉함과는 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긋남이나 흐르는 세월의 무상 때문에 다가오는 오롯한 슬픔.
조선 초기의 문장가이자 정치가였던 삼봉 정도전은 <경술 팔월 추석에 이순경李順卿(이존오)가 부여로부터 삼봉에 와서 함께 달을 구경하고 작별한 뒤에 이 시를 부치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평생에 밝은 달 사랑하건만, 밝은 달은 항상 둥글지 않네. 달을 대하니 벗님이 생각나는데, 벗님은 저 하늘가에 있네. 오늘 저녁은 무슨 저녁인가, 달과 사람 둘 다 어울린다네. 희고 흰 달빛은 서리와 같고, 다습고 다습다, 옥 같은 사람.
달이 지니 사람은 잠 못 이루고, 사람이 돌아가면 달은 또 돌아 사람이란 모였다 흩어지는 것. 달도 또한 차면 이지러지네. 사람이 달과 어긋나니, 아름다운 기약 서로 어긋나기만 하네. 한 달에 달은 한번 둥그는 거라, 달 대하면 길이 서로 생각나네.“
그렇습니다. 아름답던 기약도 세월 따라 어긋나기만 하고, 모였던 사람 이리 저리 흩어지는데, 달은 항상 그렇듯 둥글게 뜨고 그달을 바라보는 심사는 쓸쓸하기만 한데, 문득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술 취한 자와의 대화>가 떠오릅니다.

”달아, 다행히도 너는 더 이상 달이 아니구나. 하지만 달이라고 명명된 너를 여전히 달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무관심한 탓인지도 모른다. 내가 널 이상한 빛깔의 잊혀버린 ‘종이 초롱’이라고 부르면, 너는 어째서 더 이상 거만을 떨지 못하지.
그리고 내가 널 ‘마리아 입상.’이라 부르면, 너는 어째서 거의 움추러 들다시피 하는 거지. 마리아 입상아. 내가 널 노란빛을 던지는 달이라고 부르면 너의 위협적인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구나.“

두둥실 떠오른 한가위 달이 잊혀버린 종이 초롱이면 어떻고 마리아 입상이면 또 어쩌란 말인가? 나도 오늘밤 하늘에 달이 뜨면 카프카처럼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달을 바라보며 마음에 숨겨둔 생각들을 가을꽃들에게 들려주자.

하지만 그러고도 심심하고 또 심심하면 장자가 말한 것처럼,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밟으며 우주 밖을 유람하다'가 저녁 늦게나 돌아올까?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