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만난 호수의 '하얀 선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1가, 밀집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건지산을 향해 약 10분만 걸으면 자연의 생태가 살아 숨 쉬는 오송제를 만날 수 있다. 도심의 생태공간으로 잘 가꾸어진 곳이다.
도심 허파로 손색이 없다. 산소공장으로 불리는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오송제는 청정지역에서 서식하는 각종 곤충들도 서식하고 있어 도심 속 생태의 ‘보고(寶庫)’로 남겨진 생태습지로 불린다.

특히 오송제에는 청정지역에서 서식하는 밀잠자리와 노란잠자리, 깃동잠자리, 모메뚜기, 게아제비, 풍뎅이, 네팔나비, 부처나비, 소금쟁이 등 육상곤충상이 유일하게 서식하고 있다.
만수면적이 3.5㏊, 총저수량 4만 7,200㎥, 유효저수량 4만 5,400㎥로 주변에 과수원과 논이 인접하고 있는 오송제 상류지역에는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종인 ‘낙지다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북대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건지산에 둘러싸여 있는 오송제 주변에는 이산화탄소(CO₂)의 흡수역할을 하고 산소(O₂)가 생산되는 오리나무가 군락지 숲속을 이루고 있다.

이 외에도 부들과 갈대, 말즘 등 다양한 수생식물과 붕어, 잉어, 송사리, 동자개 등 4목 5과 8종이 서식하면서 백로, 왜가리, 기러기, 딱따구리, 두루미, 쇠오리 등 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잠을 자는 등 생태호수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건지산 자락에 위치한 생태호수공원 오송제에 봄이면 생명의 시작을 알리고 여름이면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이면 오색단풍으로 물들며 겨울이 되면 멋스러운 하얀 옷을 입은 오송제가 찾는 이들을 반긴다.
오송제와 건지산을 잇는 산책길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해마다 여름이면 선홍빛 연꽃이 인근 덕진공원 연꽃들과 함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늦여름 만개하는 오송제의 홍련은 8월까지 장관을 이룬다.

어느덧 연꽃 물결이 서서히 물러서며 가을 준비에 한창인 고요한 오송제 호숫가. 입추와 말복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 햇살이 따가운 8월 26일 점심시간 무렵, 하얀 희귀새 한 마리가 호수 주변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에 흠뻑 빠진 모습이 포착됐다.
어디선가 간간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을 재촉하는 오송제 산책길에서 만난 이 새는 바로 낮은 멸종 위기 새인 백로임에 틀림없다. 한 마리가 외롭게 가을 햇살을 따라 열심히 산책을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멈춰서니 멀뚱히 바라본다.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무언가에 흠뻑 도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걷는데만 열중한다.
도무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데도 비켜줄 생각조차 없는 듯 열심히 걷는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채 이리저리 걷는 백로에게 오히려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더니 훌쩍 인공 산책로 난간에 올라선다.

무슨 생각을 저리도 골똘히 하는 것일까. 온통 몸이 하얀색인 백로와 파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하얀 뭉게구름이 서로 잘 어울린다. 자료에 따르면 백로와 유사한 조류는 지구상에 12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5종이 있다.

백로의 종류로는 쇠(소)백로·중백로·중대백로·대백로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흰색을 띠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백로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쇠백로나 중백로에 가까워 보인다.

백로 중에서도 가장 작은(小) 백로를 ‘쇠백로’라고 부른다. 낮은 멸종 위기 등급을 받은 백로의 크기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쇠백로의 경우 약 58~61cm, 무게는 약 450~550g의 몸집을 지녔다.
그러나 가장 큰 대백로는 약 94~104cm의 크기에 무게가 약 0.7~1.5kg에 이른다. '나그네새'라고도 불리는 백로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며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변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백로에 대한 세부자료를 살펴보면 원산지는 대만과 한국, 인도, 중국, 미얀마, 일본, 마다가스카르, 유럽이며 주로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 분포한다고 하니 생활 반경이 매우 넓고 다국적이다.
주로 논이나 하천, 간척지, 늪에 서식하는 백로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도 서식하며 주로 여름새로 통했지만 요즘에는 중부 이남지역에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고 한다.

백로의 식성은 잡식으로 주로 물고기와 개구리, 뱀, 새우, 가재, 수서곤충 등을 먹으며, 번식할 때에는 4월 하순에서 8월 상순 사이에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한배에 약 3~5개의 알을 낳아 약 23일간 품은 후 부화하여 25~30일간 새끼를 키운다고 한다.

온몸이 순백색인 백로의 여름 깃은 등에서 비옷 모양의 장식깃이 꼬리까지 덮고 있다. 여름엔 더워보이지만 목 하단의 깃도 길어 매우 우아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백로는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로 상징된다. 시문에도 많이 등장하며 화조화의 소재로도 많이 소환되는 새 종류다.

그런데 저 하얀 선비새는 계속 카메라로 촬영하는 나를 못 본 것인지, 못 본 체 하는 것인지 도무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싶은 것일까. 하얀색 털과 긴 목을 한껏 과시하며 생각에 젖은 척, 가끔은 노래를 하는 척, 하늘을 보며 명상을 하는 척 온갖 폼은 다 잡는다.

혼자서 고고한 모습을 잃지 않으며 사색에 열중인 백로를 뒤로 한 채 조심스럽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오송제 호숫가 산책길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도 ‘하얀 사색가’는 계속 그곳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엇을 저리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굴 애타게 기다리는 것일까. 오송제 하얀 선비, 사색가가 저토록 오랫동안 고뇌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