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배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인간적 배신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배신, 신앙상의 배신도 있다. 업무상의 배신행위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까지만 해도 배신은 그저 배신이었다. 설사 배신을 통해 국가에 공을 세웠다 해도, 당사자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제법 팽배했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내쫓고 새 왕이 되자, 성삼문成三問(1418∼56)과 김질金礩(1422∼78) 등은 무고하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 그러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언제 발각될 지 모르는 급박한 형편이 됐다. 약삭빠른 김질은 동지들을 밀고해 피비린내 나는 ‘사육신死六臣’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김질은 결국 세조의 공신, 정확히는 추충좌익推忠佐翼 제3등공신이 됐고, 벼슬도 높아져 우의정까지 지냈다. 조정에서는 그를 충신으로 대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인심은 끝내 그를 저버렸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조선왕조실록』의 졸기卒記에서조차 은근한 풍자의 기운이 있었다. 김질은 일찍이 하이도下二道(경상도와 전라도)의 군적순찰사軍籍巡察使가 됐다. 세조의 뜻이 사려師旅(군대)를 확장하는 데 있는 것을 알고 오직 받들어 순종하여 그는 군액軍額을 늘리기에만 힘썼다. 한산閑散(퇴임)한 문무과 출신과 생원·진사를 다 군열軍列에 편입하여, 비록 심한 폐질이 있는 자라도 혹 면제되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그의 종사관從事官 양진손梁震孫은 더욱 각박했기 때문에 원망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성종실록』, 성종 9년 2월 24일

생의 마지막까지도 김질은 세조의 인정을 받기에 급급하였다. 선비들이 보기에, 그는 사리에 어긋난 행동을 일삼다가 저세상으로 갔다. 과연 그를 황천으로 데려간 마차가 황금 마차였는지를, 부족한 내가 어찌 알겠는가.

히틀러의 독일은 겨우 몇 년 동안 프랑스란 국가를 지배했다. 그때도 상당수 문인과 지식인 및 관료들이 조국을 배신했다. 1945년 드디어 전쟁이 끝나자 앙드레 지드 같은 문인들이 앞장서 지난날의 배신자들을 단죄했다. 가령 신문·잡지만 해도 총 900여 종 가운데 무려 700종이 나치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폐간했다. 물론 우리가 지레 짐작하는 것처럼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서슬 퍼런 기세가 점차 누그러져 나중에는 많은 죄인이 차례로 풀려났다. 이 점은 이미 역사가들이 밝힌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과거사 청산은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였다.

일제 식민지 35년이 끝난 뒤에도 이 땅의 배신자들은 두려운 줄 모르고 오만방자했다. 이 땅에서 한 세대 이상 계속된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불과 수년간 그것도 프랑스의 북부 지방에서만 자행된 히틀러 체제와 맞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누가 친일파였는지를 가려내는 문제조차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멀쩡한 내 나라를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팔아먹은 몇몇 역적 놈들의 이름은 역사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하건마는 그들의 자손은 못된 제 조상들이 우리에게서 강탈한 드넓은 땅을 아직도 제 것이라고 우긴다. 2005년 후안무치한 이완용과 송병준의 자손들이 허술한 이 나라의 소유권법을 믿고 날뛰는 꼴도 그 정점에 달했다(『경향신문』 인터넷판, 2005년 1월 7일자).

배신도 자랑이 되는 나라라서 그런지 2009년 5월 중순에는 이름난 소설가 황석영이 이명박 정권에 아부하며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용을 썼다. 그 작가를 위한 보수 매체의 변명도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 여론에 떠밀려 그는 아무런 소득 없이 물러나고 말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과연 역사를 어지럽힌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을까. 뜻밖의 답이 『구약성서』에 있다. 고대 유대 민족은 야훼를 제외한 일체의 ‘우상숭배’를 금했으나, 이집트며 바빌로니아와 같이 강성한 이웃이 있었기에 조상의 종교를 내팽개친 유대인도 적지 않았다. 유대공동체는 이런 배신자들도 여러 차례 감싸 안았다. 그들이 유대공동체의 품으로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오래도록 묵묵히 기다렸다. 이스라엘 민법에는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 있다. 누구든지 유대교로 복귀하면 과거를 묻지 않고 시민권을 되돌려준다.

배신자들이여, 구구히 변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너희의 회심을 기다려주겠다. 이 사람들의 회심에 기댄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하신 분들도 많으리라. 만약 그렇게 느끼는 의로운 분이라면 그들에게도 방법은 있다. 바로 잡을 뜻이 있는 분이라면 불의를 참지 말고, 침묵을 깨시라. 그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이끄는 대한민국이라면 좀 더 소란스러워야 한다. 잘못하는 일이 한둘이 아닌데도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 모든 것이 요란한 빗소리에 묻혀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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