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퇴직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 지가 두 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요즘의 일상이란 게 아침에 일어나 경전들을 읽고 아침을 먹으면 바로 아파트단지를 1시간 반 정도 걸으면서 유튜브로 각종 경전 강의를 듣습니다.
그러다 집에 들어와 졸리면 잠시 잠을 청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유튜브로 경전 강의를 들으면서 걷습니다. 그러고 저녁에도 저녁을 먹고 걸으면서 경전 설법을 듣습니다. 그리고 들어와 자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면 다시 경전을 봅니다.

이런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많이 걸었는지 허리디스크가 다시 도져 요즘에는 매일 오전에 병원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난 42년 동안 직장으로 출근해서 일을 할 때는 항상 긴장감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아픈지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나서 그런지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거 같습니다.

최근 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면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가 이웃 분들이나 경비아저씨와 마주치면 순간 당황스럽기도 한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평일 아침이면 남자가 일하러 나가야할 시간인데 허름한 복장에 면도도 안한 저의 모습이 이웃 분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창피함 같은 것도 느껴집니다.
사실 42년을 열심히 일하고 은퇴해서 쉬는 건데 제가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죄책감을 왜 가져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일상에 적응이 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취업을 해서 일만하다 보니 ‘Workaholic’이라는 ‘일중독증’에 걸려 일이 없으니 제 자신 스스로가 공허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또한 직장에 다닐 때는 월요일 아침이면 출근하기 싫어지는 ‘월요병’이라는 게 있었는데 막상 은퇴를 하고 집에서 쉬다보니 다른 사람 출근하는 월요일이면 저도 출근하고 싶은 ‘백수의 월요병’ 같은 것도 생기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퇴직을 하면 쉬면서 여유롭게 여행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다시 악화되고 있다 보니 집사람이 위험하다고 어딜 가지 못하게 합니다. 머슴살이를 그만두면 자유인이 될까 싶었는데 머슴살이보다 더 심한 감옥살이를 당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뒤돌아보면 가장으로서 평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40년 이상을 일만하며 살아왔는데 다시 집안에 갇혀 산다는 게 쉽게 적응이 안됩니다. 함경북도 무산, 웅기, 회령 지방 방언을 보면 그 지역 사람들은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함경북도 산중에서 남편이 장사를 떠나거나 사냥을 나가면 며칠씩 밖으로 나돌다가 집에 들어오니 남편을 ‘나그네’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많은 지역에서 남편을 바깐양반(전남 화순), 바깟양반(경북, 충북, 충남, 전북 일부지역과, 강원도 평창 등), 바깟어런(경북 영주, 안동 등), 바깟어른(경북 봉화, 충충북 청주, 충남 대천 등), 바깟주인(경북 영덕), 배깟양반(충남 조치원), 배깟어른(충남 조치원) 등으로 불렀습니다.

아마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남편들은 바깥으로 가족의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역할이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은데 저는 집안에 갇혀 감옥살이를 하고 있으니 저도 다시 하루빨리 나그네 같은 남편이 되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요즘 이런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道)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배운 바로는 사실 도를 깨우치는 것도 별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의 옛날 선사들 말씀처럼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면(饑來喫飯 기래끽반, 困來卽眠 곤래즉면)”되는 것입니다.

노자나 장자에서 우리가 배우는 '자연을 따르는 무위법'이나 중국 선사들이 말씀하시는 불도(佛道)나 별반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노자나 장자에게는 '자연이 위대한 사원이고, 자연이 곧 도(道)이고 진리'라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자연의 숨소리이며 생명의 약동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무더위로 힘든데다 주춤하던 코로나 바이러스마저 다시 유행할 거라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지는 시절인데 부디 가내 두루 편안하시길 기원합니다.
/글·사진=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