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를 통해서일 겁니다. 많은 분들이 국어교과서에 '명상록'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걸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이양하 선생께서 영국의 작가 월터 페이터가 명상록을 읽고 쓴 감상문 비슷한 영문을 번역해서 '페이터의 산문'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글 속에 간단하게 명상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문의 칼럼이나 기사에서 인용할 때 보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명상록이란 제목의 글이 있었던 것처럼 소개하는데 잘못된 사실입니다. 국어책에 소개된 것은 '페이터의 산문'이란 제목으로 소개됐으며, 내용도 우리가 직접 명상록을 접한 게 아니라 영국 작가 페이터가 재탕을 하고 다시 이양하 선생이 삼탕한 작품을 통해서 만나 본 셈입니다.

그런데 저도 요즘 '도란 무엇인가!' 알고 싶어 다양한 서적들을 접하다가 최근 명상록을 구입해서 읽는데 명상록은 어느 종교에서 갖다가 경전으로 사용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휼륭한 책 같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됐건 불교가 됐건 비슷한 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로 쓴 명상록이 불가의 경전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그리스인들의 사유 세계나 유럽에서 인도대륙을 침입한 아리아인들이나 서로 비슷한 민족성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 그리스 수도에 살던 미란다 왕이 당시 유명한 인도의 현인 나아가세나 존자와 인간의 삶과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담론을 펼친 '밀란다팡하(Milanda Panha : 밀란다 왕의 물음)'이란 책을 보면 서로 진지하게 나눈 대화가 통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자문화권에 소개되면서 불가에서 경전으로 채택하여 '미란다왕문경'이나 '나선비구경'으로 더 많이 알려진 논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에 기반하여 쓰여진 명상록이 불가의 경전들과 많이 겹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불가에서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와 색(色)·수(受)·상(想)·행(行)· 식(識)의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나, 명상록에서 말하는 피와 뼈는 흙(地)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신경과 정맥과 동맥 등을 물(水)로 돌아가고, 그리고 호흡은 바람(風)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따뜻한 기운은 불(火)로 돌아가는 것이나 비슷한 내용입니다.

명상록에 보면 인간의 출생이란 우주 속의 원소들의 결합이고, 죽음이란 원소들이 해체되어 우주 속으로 흩어진다는 것이나, 불가에서 인간의 탄생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의 결합이요, 죽음이란 지수화풍 4대가 사라지는 것이나 같은 말입니다.

명상록에서 "네 정신을 뒤덮고 있는 안개를 걷너내어 청명하게 하라"는 말이나 불가에서 번뇌를 없애서 열반에 들라는 얘기나 같은 겁니다. 또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성을 꼭 붙잡고 한 마음으로 섬기라는 것이나 불가에서 부처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있는 불성을 찾아 부처가 된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명상록에는 비록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이긴 하나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구절은 우리에게 해골바가지 물로 유명한 원효 스님의 "모든 건 마음이 만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나 비슷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불가의 스님들에게 따끔하게 질책하는 듯한 말씀도 있습니다.

"산속에서 혼자 조용히 물러나 쉴 수 있는 곳을 갖기를 원하지 말고, 장소에 관계 없이 자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선정에 들 수 있도록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씀이나 깨달았으면 다시 중생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중생을 구제하라는 '입전수수(入廛垂手)'나 같은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명상록에서는 인생을 낯선 땅에서 치르는 전쟁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우리 인생의 험로(險路)에서 우리를 호위해서 가야할 길을 안전하게 안내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철학'뿐이라는 답을 줍니다.

그리고 역시 철학자다운 황제라 그런지 최고의 명예인 로마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찮고 덧없는 명예욕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메아리일 뿐이라며 명예욕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충언도 합니다.

/글·사진=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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