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연기(緣起)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일들이 벌어진다는 인연의 이치를 의미하는 불교의 교리 중의 하나로 가장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교리입니다. 이 연기는 누가 만든 게 아니고 태초부터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 작동하고 있던 원리인데 이것을 발견한 겁니다.

그런데 최근 장자를 다시 보다보니 장자에도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몇 자 적어봅니다. 장자를 연구한 학자들은 '연기(緣起)'라는 용어보다는 '상호의존(相互依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거 같은데 결국 연기나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철스님께서 설하신 백일법문을 보면 부처님의 중도사상은 초기 경전인 초전법륜경과 숫타니파타에 나오기 때문에 그 뒤에 나온 경전들은 비록 부처님 사후 수백 년이 흐른 뒤후에 글로 쓰여졌지만 부처님의 말씀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연기'도 결국 불교의 핵심인 중도나 사성제(고.집.멸.도), 팔정도와 관련되어 따로 분리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부처님께서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제자에게 최초로 설법한 초전법륜경에는 연기(緣起)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고, 또한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도 역시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잡아함경에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 彼有),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此生故 彼生)"라는 연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중에서 12연기네, 11연기네, 9연기네 등 연기에 대한 다양한 교리가 나옵니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 삼매에 들었다가 새벽별을 보고 십이연기를 깨우치셨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12연기라는 건 없었고 중도와 사성제 그리고 팔정도를 깨달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오면서 부처님 못지 않은 훌륭한 제자들에 의거 12연기로 계승·발전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초기 불교를 연구하는 외국의 학자들이 연구한 논문을 보면 초기 경전에는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고 불교가 발전하면서 경전 속으로 스며든 거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주장은 오랜 세월 불경을 연구하여 발표한 내용이라 틀린 거 같지는 않습니다. 장자에도 보면 "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피출어시, 시역인피.’ 피시방생지설야)" 즉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 나오는데, 이는 저것과 이것이 동시에 생겨난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잡아함경에 나오는 연기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장자를 해설한 교수들은 불교의 연기론을 공부하지 않아 이 둘을 비교해서 설명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불교학자들은 노장사상을 공부하지 않아 불교의 연기론을 이야기 하면서 장자의 상호의존에 대한 부가 설명이 없는 거 같습니다.

자기가 전공한 분야만 알고 있으니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거 같습니다. 세상에는 자세히 보면 대부분 같은 원리들이 태반입니다, 단지 자기가 연구한 분야만 알았지 남의 분야를 보지 않으려고 하니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장자가 살던 시기나 부처가 살던 시기는 비슷하였고 장자의 사상은 그때부터 이어져 온 반면, 불가의 연기론은 부처 사후 수백년이 흐른 뒤에 경전에 나오고 있으니 연기론의 원조는 불경보다 오히려 장자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는 잘난 교수님들의 영역이니 저같은 돌파리 놈이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에 자기만의 독자적인 교리를 가진 종교는 없습니다. 불교도 외견상으로는 힌두교를, 내용상으로는 자이나교를 닮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특이 우리의 민족 종교의 하나인 증산교 같은 경우는 세상의 모든 종교의 장점과 조선상고사인 역사까지 다 취해서 만든한 종합 백화점 같은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타인이 타종교에 대하여 어쩌네 저쩌네 말할 게 못 됩니다. 믿는 사람은 믿으면 되는 겁니다. 

연기론을 부처님이 당시 직접 설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존경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처음에 부처님께서 방향을 바로 잡아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주셨으니 나중에 12연기론이라는 훌륭한 교리를 제자들이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존경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글·사진=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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