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서평'

제가 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떠올릴 때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로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 “왜, 나쁜 역사는 반복하는가?”를 묻게 됩니다.
그 질문에 답하는 좋은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실은 5년 전에 나온 책이지요. 이 책의 저자는 제니퍼 웰시라는 분인데요. 캐나다 출신 국제 정치학자이지요. 옮긴이는 이재황 선생입니다. 이미 많은 책을 쓰기도 하였고, 번역도 했어요. 아주 믿을만한 분입니다. 그래서 그렇지만 이 책은 술술 잘도 읽힙니다.
<왜, 나쁜 역사는 반복되는가>(산처럼, 2017)에서는 현대 세계를 어지럽히는 여러 가지 난제가 하나씩 깊이 있게 논의됩니다. 이슬람 스테이트(IS)도 그렇고요,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중동 난민 문제가 다뤄졌어요. 또, “제2의 냉전”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의 화려한 정계 복귀도 비중 있게 파헤칩니다. 아울러, 99% 세계 시민들을 가난의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책의 서술은 간단명료하지만, 그 뜻은 깊습니다.
“결국에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들에 대한 우리 사고방식은, 정치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그 일을 직접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20세기 역사가 보여준 바이다. 시민 개개인이 공정성에 관해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심도 있게 분배의 평등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공정성을 옹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관철하려면 상당한 개인적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번역문을 제 취향에 맞게 조금 손질하였습니다.)
지난 현대사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 시민들은 행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였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정치가들이 명령하더라도 결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런 주장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어요. 시민들은 권력자들을 상대로 좀 더 많은 요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민의 의지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겠지요. 이것은 평소 저의 소신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웰시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늘 감회가 새로워요. 시민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태우면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흐름이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단속(斷續)적으로 이어졌다 끊겼다를 되풀이하지만, 실망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부모님들의 피눈물이 바다 밑에서 잠자고 있던 세월호를 들어 올린 한 가지 사실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 시민들은 눈물과 비탄과 한숨과 촛불의 행진을 앞으로도 멈추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왜, 나쁜 역사는 반복되는가>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온 가족이 모여서 21세기 세계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면 좋겠어요. 먼 나라 일,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되는 이슬람의 문제도 그렇지요. 앞으로는 기후 난민이 발생하여 한반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도 있겠지요. 딴 나라, 멀고 먼 세상 바깥의 문제도 실은 우리 자신들의 일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세상의 모든 일은 실상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기가 어렵지요. 지구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미처 다루지 못하고 있는 북한 핵무기 문제라든가 ‘위안부 문제’도 동아시아적인 시각만으로는 사태의 전모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문제도 지구적인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거들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소중한 한 표 한 표가 실은 세상을 나쁘게 만들 수도 있고, 조금은 낫게 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