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강물이 크고 넓고 깊을수록 직선으로 흐르는 법이 없어요. 이 굽이를 돌고 저 굽이를 돌아 첩첩한 산을 넘어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지요. 인간의 역사는 말하자면 큰 강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때는 흐름이 느리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강물이 사라진 듯도 합니다. 그저 강 밑에 깔려 있는 모래바닥 밑으로 흘러가는 곳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더라도 강물은 결코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지요. 물이라는 것은 언제나 흘러가기 마련이니까요.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지요. 역사도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세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숨어서, 때로는 명랑하게 소리 내며 흘러갑니다. 동학농민운동의 흐름도 민주화 운동의 흐름도 또는 시민사회의 그 어떤 의미 있는 활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멀고도 깊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점, 압록강이나 두만강보다도 더 긴 유장한 강물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 같아요. 

1894년 초부터 1895년 3월까지요, 전봉준과 손화중 등이 동학농민과 함께 일어나서 마침내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할 때까지가 말입니다. 그것이 동학농민운동의 절정이었어요. 그러나 사실 동학농민운동의 세찬 물결은 그 일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흐르기 시작했어요. 그날 이후에도 그 물결은 끝없이 흘러갑니다. 어쩌면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찌 동학농민운동만의 일이겠어요. 잘 헤아려 보면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긴 흐름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 시대의 가객 정태춘이 "강물 속으로 또 강물이 흐르고"라고 표현한 것은 참으로 옳은 성찰입니다(<북한강에서>). 오늘 하루도 역사의 흐름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힘차게 또 한걸음을 내딛고 싶어집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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