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춘향제 대면방식 열린 남원 광한루 탐방기

'남원' 하면 광한루를 빼놓을 수 없다.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고전 춘향전의 발상지이다. 필자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남원에서 어느덧 92회째 춘향제가 4일 성대한 막을 올려 모처럼 많은 인파가 몰린 가운데 다채로운 오프라인 행사를 선보이며 8일 아쉽게 막을 내렸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대면방식의 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렸다. 춘향제 개막 나흘 째인 7일 가족들과 오랜만에 광한루를 찾았다. 정겨운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대화하며 웃는 모습들이 마치 딴 세상 같아 보였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대면 커뮤니케이션이라니, 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껴보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사람 냄새 물씬...진풍경 되찾은 광한루원

춘향제 폐막을 하루 앞둔 날인데도 광한루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조금 이상했지만 모두들 즐거움 가득한 표정들 앞에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음식점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잠시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다. 오랜만에 찾은 광한루 입구에서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가 몰렸다.
매년 음력 4월 8일을 전후로 열리는 남원의 전통 민속제전인 춘향제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까지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931년 춘향의 사당인 춘향사를 짓고, 이 해부터 이도령과 춘향이 처음 만났다는 5월 단오를 기하여 매년 행사가 열려왔다. 관의 주도로 개최돼 오던 것을 1986년부터 민간주도로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춘향제는 최근 2년 동안 코로나 영향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 없는 축제 속에 비대면 행사들이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그러나 그동안 춘향제 주요 행사로는 춘향묘 참배, 춘향제사, 전야제와 등불행렬, 무용·기악·창악 등 국악인의 밤, 가장행렬·농악·각종경기·씨름·용마놀이·줄다리기·그네뛰기·시조경연대회·전국남녀궁도대회·전국국악명창경연대회·춘향선발대회 등 40여 종목의 다채로운 향토 제전이 선보여 왔다.
광한루원, 유교문화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4대 누각 중 '으뜸'

모처럼 찾은 광한루는 여러가지 많은 역사와 전설을 지닌 곳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한 광한루원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낸 공간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 시대 대표적인 정원으로 알려져 왔다.
뿐만 아니라 황희 정승, 정인지, 송강 정철 등 조선시대 유명 인사들이 연관된 공간이기도 하다. 게다가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최고의 누원으로 꼽힌다. 남원시가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광한루원은 하늘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건설한 인간이 신선이 되고픈 이상향으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시인 묵객들 사이에서는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했는데 그 중 광한루를 으뜸으로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왕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25 전쟁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광한루원은 경복궁 경회루의 지원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과 함께 한국의 정원을 대표할 만큼 우수하며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 모체가 되고 있다.

정원의 사상적·역사적 배경은 자연적 사고방식 즉, 신선사상과 음양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또는 수심양성의 도로 표현되는 송, 죽, 국, 매의 사절과 유교의 선비사상이 담겼다. 그 중에서도 신선사상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신선정원의 양식은 생성 시기인 조선시대의 제도적인 원인에 기인하여 유교문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누원 모습은 누원 근처 시장이 불타고 옮긴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 확장 사업을 하면서 차례로 근처의 부지를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신기하게도 광한루원 앞에는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호수 속의 3개의 섬(삼신산), 그리고 서편에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로 구성되어 있다.
요천의 맑은 물 끌어다 하늘나라 은하수 상징하는 연못 만들어

오작교는 평교지만 교각의 형태가 원형으로 된 홍예교로 누정원을 구성하는 구성물의 일부로 처리되어 있는데 직선적이고 평탄한 노면에 율동감을 주어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호수에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돌인 지기석을 넣고 견우가 은하수를 건널 때 쓰는 배인 상한사를 띄워 칠월 칠석의 전설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상징한다고 한다.

호수는 현재 상태에서 1대 2의 비율을 갖는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 안에 3개의 섬이 동서 방향으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 자라가 동남방향으로 향해 놓여 있어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광한루원의 구성은 넓은 은하 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광한루를 지은 사람은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 정승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후 남원 부사가 광한루를 보수하면서 남원을 흐르는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광통루(廣通樓)라고 불렀는데, 광통루 호수에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 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있는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라고 한다. 그런데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으로 부르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광한루원이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송강 정철에 의해서였다. 임진왜란 직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짓고,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섬, 방장섬, 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최고의 누원답게 다양한 역사의 향기와 볼거리에 취해...신기한 '인면어'도

지금도 광한루원에는 원앙과 오리가 노닐고 수많은 잉어 떼들이 유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잘 찾아보면 사람의 얼굴을 닮은 모습을 하고있는 '인면어'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먹이 주기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잉어들이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먹이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인면어'라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 흉측하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많은 잉어떼들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잉어들이 어디서 왔을까. 자료를 살펴보니 남원시는 관광객에게 볼거리 제공을 위해 광한루원 오작교와 혼불 문학관 연못에 관상어인 비단잉어와 금붕어를 방류해 왔다.

10년 전인 2012년 6월 5일 1,200여 마리를 방류했다는 연합뉴스 기사가 눈에 띈다. 방류된 비단잉어와 금붕어는 전북도 수산기술연구소 민물고기시험장에서 품종개량 시험 등을 통해 관상용으로 아름답게 길러온 20cm 이상의 성어라고 적혀 있다.

비단잉어가 반겨주는 오작교를 지난 완월정,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그네, 전통 놀이 체험장 등을 걸으면 오랜 역사의 체취를 느끼게 된다. 또 춘향전을 떠올리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보게 된다. 특히 완월정 모습이 그대로 물에 비쳐지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다.

춘향제가 열리는 매년 5월이 광한루원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시기인 듯하다. 녹음 가득한 국내 최고의 누원답게 다양한 역사의 향기와 비단잉어들, 그리고 많은 볼거리들이 잠시도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김미선 시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