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시간을 시간이라고 여겼을 때,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시간이 아니라고 여겼을 때, 시간은 시간이 된다. 소리도 없이 지나가는 시간,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시간, 그 앞에서 시간의 노예이면서도 시간의 노예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가는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시간은 시간을 자꾸 갉아먹는데, 내가 그렇다. 흐르는 시간 앞에서 길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먼 길을 걸어갈 때, 길이 끊어지고, 길이 사라질 때가 많다.

돌아갈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는 일. 가시덤불을 헤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다가 지쳐서 바라보는 하늘에 허우적대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몇 송이의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다시 시작되는 악전고투 나그네에게는 걸어갈 길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혼자서 먼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안다.

“두발로 마음 가볍게 나는 열린 길로 나간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내 앞에 펼쳐진 세상,
어디로 가든 내 앞에 긴 갈색 길이 뻗어 있다.
나는 더 이상 행운을 찾지 않는다.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더 이상 우는소리 않고, 미루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고,
방안의 불평도, 도서관도 비평도 집어치우고,
기운차고 흐뭇하게 나는 열린 길로 여행한다.“

월트 휘트먼은<열린 길의 노래>에서 자유로운 그의 삶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고난 속의 길을 나서면서까지 세상의 온갖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여유도 없이 길을 간다.
그래서 그랬을까? 바이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여! 미소와 눈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계추여!“

언제쯤 마음 다 비우고 기운차고 흐뭇하게는 아닐지라도 아무런 사념 없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