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16)

코로나로 인한 심리적 우울감이 날로 깊어간다. 폭염이 더 덥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어느새 장마가 시작됐다. 더워도 우울하고 비가와도 우울하다. 이런 울적한 심사는 어떻게 달래야 하나.

잠시 분위기를 바꾼다는 뜻에서 생각해보자. 옛 선인들은 세 종류 여가가 있다고 봤다. 하루의 끝인 밤, 일 년의 끝인 겨울, 그리고 비오는 날이다.

비오는 날은 쉬는 날이다. 물론 농경시대의 유습이다. 바쁘게 부지런히 일하다가도 비오는 날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가. 잠시 한 숨 돌리고 쉬는 거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로 비오는 날은 쉬지 않던가. 그래서 비오는 날이 반가운 사람도 있다. 이렇게 비오는 날을 여가로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쩌다 우리는 종종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뜻(?)을 알 수 없는 그림들을 만난다. 그 중 한 가지,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놓고 보자. 종류 미상의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려놓고 삼여도(三餘圖)라고 써 놓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지만 그림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도대체 왜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렸지?’ 할 것이다. 정답은 고기 어(魚)자와 남을 여(餘)자가 중국에서는 독음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에서 물고기는 보통명사 상태인 물고기여야 하고 종류를 알 수 없는 물고기로 그려야 한다. 만일 잉어 세 마리나 금붕어 세 마리로 그리면 전혀 다른 뜻으로 읽힐 염려가 있다. 잉어는 관리로 등룡(登龍)됨을 뜻하며 두 마리를 그리면 대과와 소과에 급제한다는 뜻이 된다. 금붕어는 금옥만당(金玉滿堂), 즉 금은보화가 가득한 부자가 되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삼여, 즉 세 가지가 남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재산과 명예, 수명이 남기를 바란다는 뜻일까? 대개는 이런 세속적 추측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다른 뜻이 담겨있다.

그 연원은 삼국지 위서(魏書) 왕숙전(王肅傳)에 나오는 동우(董遇)에 관한 고사다.

어떤 사람이 동우에게 배움을 청하자 “책을 백번만 읽으면 뜻이 저절로 통한다(讀書百遍意自見)”며 거절했다. 그 사람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대꾸하자 학문을 하는 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가르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 세 가지 여가란 밤, 겨울, 흐리거나 비오는 날이다. 밤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고 겨울은 일 년의 나머지,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맑게 갠 날의 나머지가 된다(冬者歲之餘 夜日之餘 陰雨時之餘). 밤과 겨울, 흐린 날은 농사짓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여유시간만으로도 학문을 하는 데는 충분하다는 말이다. 물론 농본사회의 시간관념이자 사고방식이다.

본디 동양화는 뜻으로 그림을 읽어야 한다. 이른바 독화법이다. 저 유명한 소동파가 남종화의 개조로 추앙받는 왕유(王維)의 그림과 시를 두고 한 평구 ‘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란 말에서도 그 뜻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종종 동양화를 보노라면 그 뜻을 오해하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들이 가진 고전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국화가 제백석(齊白石)의 삼여도를 보자. 화제가 “그림이란 타고난 솜씨의 나머지요, 시도 졸음 끝에 얻어지는 것이며 목숨은 영겁의 긴 시간의 자투리에 불과한 것이다.(畵者工之餘 詩者睡之餘 壽者劫之餘) 이것이 나의 삼여다.(此白石之三餘也)”라고 씌어 있다. 대가로서의 달관과 오연함이 물씬 풍긴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서도 하늘이 내린 솜씨의 한 부분이라고 눙치고 여러 시회에서 빼어난 시를 썼으면서도 졸다가 쓴 시라고 몽짜 치는 역량이 노회하다.

이처럼 제백석은 삼여의 본뜻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삼여의 본뜻이 전달됨은 물론 거기에 보태 자신의 소견까지 더하는 능준한 경지를 보여준다.

어쨌든 삼여는 학문이나 예술의 태도를 일깨운 말이었다. 따라서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은 서재나 화실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그러나 요즘은 음식점에 가면 버젓이 삼여도가 걸려있다. 주인이 그림의 뜻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재복, 권복, 수복이 넘치기를 갈망하고 걸어놓았음직하다.

좋은 그림을 소장하겠다는 의욕이야 말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림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격에 맞지 않게 아무데나 걸어놓는 것은 개발에 편자 격이다. 초가집 대청이라면 모를까 외양간에 신선도를 걸어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비오는 날이 잦기에 해본 생각이다. 부족하나마 코로나로 인한 심란함이 가셨기를. 

/이강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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