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쇠망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나타났으나 반론도 거세다. 가령 마이클 허드슨은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금융 위기(1930년대, 2008년) 같은 것은 일종의 자연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간단한 문제일까. 금융 위기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한꺼번에 붕괴시킬 수 있다.
재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8세기에 영국은 건전한 재정을 바탕으로 프랑스를 누르고 세계 지배에 성공하였다. 미국이 세계를 좌우하게 된 것도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미국의 재정 부실이 장기화되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결국에는 달러를 대체하는 화폐가 등장할 것이다. 유로화와 중국의 위안화가 그 역할을 못 하란 법은 없다.
미국의 위기를 암시하는 징표는 너무나 많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지정학적으로 보든, 군사, 재정(경제), 사회, 환경, 의료의 여러 측면에서 보든,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은 수십 년 전보다 취약해졌다.
우리가 가장 눈여겨볼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군사 지출이 과도해 미국의 재정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다는 점이다. 일례로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전쟁은 2011년에 종전을 선언하였지만, 그 뒷수습을 위해서 미국은 아직도 해마다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현재도 미국은 세계 각지에 있는 군사 기지를 운영하느라 재정적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국채의 대부분은 중국과 일본 등 외국 정부의 수중에 있다.
둘째, 막대한 재정 지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에서 사실상 패전하였다. 이후에도 미국은 세계 여러 곳에서 전쟁을 벌였으나 미국의 뜻대로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된 적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돕고 싶어도 감히 파병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미국의 군사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 아래 유럽의 재무장을 서두르고 있지요. 만약 유럽 강대국들이 방어력을 충분히 갖춘다면 그들은 미국의 뜻에 순종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셋째, 미국이 전성기의 활력을 회복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미국은 자국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동맹국의 지출을 확대하는 식으로 군사 기구를 혁신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는 매우 어렵다. 중국과의 갈등이 앞으로는 더욱 잦아지고 다각화할 터인데,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국가 채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오히려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사회적 갈등은 장차 더욱 심해질 것이다.
수년 전부터 미국은 사사건건 중국과 시비를 벌인다. 각종 지표를 보면 그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2020년에 중국은 유럽연합과의 교역에서 미국을 추월했는데, 이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또, 중국은 해외직접투자 FDI 분야에서 세계 1위 국가로 떠올랐다. 이로써 미국은 경각심을 넘어 가히 중국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중국은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음 선거를 의식하거나 여론의 방해를 걱정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가의 전략을 계획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이런 특징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전 호주 총리 케빈 러드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언론이 알리지 못하는 약점이 있으나, 미국의 문제점은 늘 언론에 공개된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력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미국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이래저래 21세기의 국제사회는 혼란에 빠진 듯합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신냉전’을 부추기는 가운데 중국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요. 유럽의 전통적인 강대국들과 일본은 이 기회를 틈타서 군사력을 키우며 세계무대에서 자국의 위상을 강화하려고 모색하는 중입니다. 대한민국호는 위기이자 기회인 이 상황을 뚫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 시민과 지도자의 지혜와 용기, 통찰과 결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백승종, <<제국의 시대>>, 김영사, 2022.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