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11년,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피해자들이 현실적인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국회와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관심을 갖고 하루빨리 조정위원회에 현실적인 배상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가습기 살균제 전북지역 피해자 10여명은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안호영 의원(완주·진안·무주·장수) 사무실을 방문해 피해자들의 요구안을 전달하고 현실적인 피해 배상 조정안을 오는 21일까지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중환자들부터 우선 배상하는 '피해 배상 조정안' 이달 21일까지 마련 합의"

전북지역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이 제작해 내건 현수막
전북지역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이 제작해 내건 현수막

안 의원이 직접 나서지 않고 측근 보좌관이 대화에 응했지만 이날 참석한 피해자들과의 협의가 무난히 성사돼 당초 우려됐던 마찰 등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해당 기사] 

“더는 희망도 없다, 죽고 싶다”...가습기 살균제 전북 피해자 450명 절규 '참담' 

전북지역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이요한 씨는 이날 “안 의원 측근인 오모 보좌관과 피해자들이 약 두 시간 동안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며 “안 의원을 중심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환경부 장관을 불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두 번 세 번 피해를 입지 않도록 최대한 협의하고 협조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오는 2월 말까지 조정안을 확정지어 3월부터 긴급한 수술을 해야 하는 중환자들부터 우선 배상하기로 하는 '피해 배상 조정안'을 이달 21일까지 최종 합의하기로 협의했다”면서 “만일 이와 같은 약속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온 몸을 던져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체 피해 신고자 7,642명 가운데 피해 상태에 따라 초고도, 고도, 일반, 등급 외 등으로 구분하여 우선 순위에 따라 보상하는 대신, 긴급한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부터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는데 양 측이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환경부, 피해자들 관심 갖고 하루빨리 현실적 배상안 마련해 주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전달한 공동성명 일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날 안 의원실에 전달한 공동 성명에서 “가습기 피해자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들과 전체 국회의원들이 총 동원돼 대선 캠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 환경부와 가해 기업 아바타 조정위위원회는 가습기 참사 피해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2차 조정안을 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그러나 2차 조정안은 현실에 맞지 않은 조정안”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밝힌 뒤 “환경부는 가습기 피해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들이 현실적인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부와 국회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관심을 갖고 하루빨리 조정위원회에 현실적인 배상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계속되는데 보상·치료는 '막막'

cpbc 1월 20일 보도(화면 캡처)
cpbc 1월 20일 보도(화면 캡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지 올해로 11년 째. 피해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진상 규명은 멈춰 섰고, 피해자 인정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호소는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지난 1월 20일 cpbc 가톨릭평화방송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실상과 문제점 등을 집중 조명해 주목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은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생활하는 게 사실상 되게 어려운데 병원에 갈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화도 나고 왜 이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까, 왜 누구 때문에 우리 생활이 이렇게 무너졌을까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말해 시선을 끌어 모았다.

정부의 공식 확인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건 2011년 8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작년 말 현재 피해 신고자는 7,642명에 이른다. 폐 질환은 물론 이름 모를 병마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1,740명에 이른다고 이날 방송은 보도했다.

cpbc 보도를 종합하면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비자만 적게 잡아 350만명이며, 이로 인한 건강 피해자는 5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기관의 심사 판정을 거쳐 피해 구제를 받은 사람은 작년 말 현재 4,114명으로 피해 신고자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참사 규모에 비해 너무 턱없이 부족한 지원" 

장동엽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이날 방송과 인터뷰에서 “피해구제법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는 피해자들이 늘고는 있는데 피해 규모나 사건 참사 규모에 비해선 아직까지 너무 턱없이 부족한 지원을 받고 계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간병비와 장례비 등을 현실에 맞게 인상하는 등 피해지원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무엇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을 둘러싼 진상 규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2020년 진상규명법이 개정되면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 조사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피해 가족들의 주장이다.

진상 규명이 멈춰선 상황에서 1심 법원은 지난해 1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판결의 주된 이유였다.

앞서 지난해 10월 초엔 피해자 단체와 기업, 전문가 인사들로 구성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하지만 멈춰선 진상 규명과 1심 법원의 무죄 판결로 인해 피해자들이 원하는 배상과 보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그간의 진상조사 결과 등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국회와 청와대에 보고할 계획이다. 그러나 올해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는 해여서 쉽게 전달될지, 또 이행될지가 미지수다. 그래서일까. 피해자들의 호소는 더욱 간절하기만 하다. 

"가습기 살균제 10년의 비극...피해 연장해선 안 돼”

한겨레 1월 19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한겨레 1월 19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가운데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위원장인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1월 19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다시 주목을 끌었다.

그는 “2014년 8월 피해자들이 일부 기업 관계자를 ‘살인죄’로 고소하자 검찰은 2016년 1월 본격 수사에 착수해 제조사인 옥시를 비롯해 같은 성분으로 살균제를 제조·판매·유통하는 데 관련된 사람들을 기소했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다”며 “그런데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 옥시와 다른 원료 물질을 사용한 기업의 관계자들은 뒤늦게 기소돼 지난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지만, 두 물질의 유해성을 확인하고 수사·기소하고 재판하는 시기가 각각 달랐고, 적어도 1심까지는 재판 결과도 달랐다”며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고 덧붙이면서 입법부의 느슨한 조치를 비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날 신문과 인터뷰에서 “2013년 19대 국회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해 무산되고, 2017년에야 어렵사리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들이 분담금을 걷고 정부가 출연금을 내서 그 기금으로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처를 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치료비, 요양생활수당, 특별유족위로금같이 법에서 정한 몇 가지가 기금에서 지급되고 있고, 피해자들 처지에서는 당장 급한 비용 문제에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됐지만, 실질적인 보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렇게만 해서는 도저히 일상을 회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 사건까지 굵직한 양대 사건을 맡아 피해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이 그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주현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