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세종이 골치를 썩인 뿌리 깊은 문제 하나가 있었다. 그 당시 성균관 유생들은 공자와 맹자의 지혜가 담긴 유교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세종의 대신 허조는 바러 그러한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유생들이 이미 합격한 동료들의 답안지를 베껴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갑니다.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왕의 염려가 더욱 커졌다(세종 14년 3월 12일). 왕은 과거시험에서 경전 이해에 관한 문제를 내고자 하였다. 이른바 강경제도를 과거 시험에 도입함으로서, 유생들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과거시험을 주관한 양촌 권근과 춘정 변계량 등이 세종의 뜻에 반발하였다. 강경은 시험관과 유생이 마주 보고 앉아서 치르는 대면시험이라서, 평가에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반론의 근거였다.
세종은 이 문제를 여러 해 동안 따져보았으나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종 19년(1437) 9월 3일, 허조가 강경법의 필요성을 또다시 공론화하였다. 그러자 왕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경서에 익숙한 이가 귀한 인재이다.”
(경서에 익숙하다는 뜻은 유교적 가치 규범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뜻. 결국 가치 지향성이 강한 지식인이 사회 개혁에 필요하다는, 세종의 인식을 반영하는 발언입니다. )
왕은 강경 시험을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대신들을 설득하였다. 세종의 태도가 요지부동이란 사실이 드러나자, 그동안 이 문제에 소극적이던 의정부 대신들이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들은 왕의 결단에 찬동하고 경학에 뛰어난 학자를 물색하기에 힘썼다(세종 21년 2월 2일). 사태가 이렇게 바뀌자 여태까지 미루어온 제도개혁이 본 궤도에 올랐다.
세종 24년(1442) 8월 10일, 강경 시험이 다시 거행되었고 왕세자(문종)가 총책임을 맡았다. 객관적인 평가가 필수적이었던만큼 채점방식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예조는 거듭 시험한 끝에 합리적인 평가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합격 판정도 이제 4단계로 세분화해, 조통(粗通), 약통(略通), 통(通), 대통(大通)으로 나누었다.
가령 조통은 외우고 해석할 때 큰 실수가 없고, 요점을 풀이할 때도 대의에서 많이 빗나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에 비해 약통은 외우고 해석할 때도 유창하고, 요점 풀이도 본의에 맞으나 자유롭게 전후좌우로 통하지는 못하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주의를 끄는 제도적 보완점이 있었으니, 응시자의 강경 점수를 다수의 시험관들이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는 방법이었다(세종 26년 2월 9일). 왕은 평가규칙을 이처럼 정밀하게 개선했고, 그러자 조정 신하들이 모두 안심했다.
수십 년 뒤 성종 때 경연에서 동부승지 홍귀달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세종 시대에는 강경을 위주로 인재를 뽑았습니다. 그 결과 선비들이 모두 경전 공부에 힘썼으며, 이극배 등은 특히 경서에 밝았습니다.”(성종 7년 10월 8일)
그런데 세종 시절에는 ‘문신들의 천국’이었다고 지레짐작하면 틀렸다. 세종은 문무의 균형 있는 발전을 추구하였다. 왕의 뜻을 헤아린 무신 이춘생과 변처후는 쓸만한 제안을 내놓았다. 무관도 자격 연수를 계속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왕은 그들의 제안에 찬동했고, 결과적으로 무신도 문신과 마찬가지로 계절마다 일정한 과제를 수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상벌을 주기로 방침이 확고해졌다(세종 11년 7월 11일).
인재가 풍부해야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특출한 인재를 찾아내어 마땅한 자리에 기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종은 우리가 앞에서 살핀 것처럼 성격이 용의주도한데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끈질긴 노력으로 대신들을 설득할 줄 알았다. 성공하고 싶은 정치지도자라면 이런 세종에게서 배울 점이 있을 줄 안다.
※출처: 백승종, <<세종의 선택>>, 사우, 2021
사족: 이른바 '이대남' 문제는 그 본질이 무엇일까. 그들 대다수가 막힌 '출구' 때문에 세상을 원망하고 있다고 본다. 제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들은 안정된 직장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기껏 취직을 해도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이대남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사회 제도와 교육제도의 개혁으로 풀어야한다. 제20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뽑히고 싶은 후보는, 이대남의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하기 바란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