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1.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이란 학자가 생각난다. 그는 학계의 ‘아웃사이더’였다. 평생 학문에 몰두했으나 1914년 56세에 겨우 교수가 되었다. 그러고는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았던 시대로 말하면 19세기말 20세기 초, 좋게 말해서 급격한 변화의 시대였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들추어보면 혼란과 모순이 극에 달한 시대였다. 그때는 종말론적 분위기가 팽배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 그때 그 사람을 뇌리에 떠올리는 것은 왤까. 지금의 상황이 유사점이 있어서이다. 목전에는 ‘4차 산업혁명’의 새 시대가 밝아온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21세기의 세계는 전망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은 그러하다.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없으나 무턱대고 낙관하기는 불가능한 시절이다. 나는 목구멍에 큰 가시라도 걸린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설사 수구적이고 부패한 일군의 정치가가 물러나도 그보다 악독하면 악독했지 선의라고는 없는 모리배들이 진 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사라진다 하여도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주류 매체가 건재하고 '거룩한' 검사, 판사, 변호사님들이 버티고 계신다. 이 대열에서 여러 목사님도, 교수님도 빠뜨릴 수 없다. 이른바 기레기님들은 또 어떠하며 만인의 왕 재벌님들은 또 어떠하신가.
아니, 이 분들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을 한다한들 강대국의 분탕질은 어찌할 것이냐.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의 횡포는 이루 말하기 어렵다. 또, 세계 증권가를 점령하고 있는 검은 손들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는 잠시 게오르그 짐멜과 동병상련인 듯한 심정이 되고 만다. (어젯밤에 제20대 대선 후보들의 토론회를 보고 나서 더욱 더 비감해진 것이 사실이다.)
2.

1916년 1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게오르그 짐멜은 한 차례 의미심장한 강연을 했다. 아직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지 않았던 때였다. 지루하고 소모적인 전쟁의 한 복판에서, 그는 <문화의 위기>를 화제로 삼았다.
문화란 과연 무엇인가. 유식한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을 강조하거나 자랑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문화’의 개념을 멋대로 확장하고 왜곡하는 습관이 있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100년 전 짐멜의 시절에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른바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문화란 늘 만만한 개념이었다.
그 점에서 짐멜은 달랐다. 그는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였다. “영혼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극기복례”가 문화라고 읽었다. 공자가 인(仁)이라고 했던 그 개념, 삶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목적이 문화라는 주장이었다. 짐멜은 삶의 목적이 바로 그러한 문화의 실천에 있다고 읽었다. 쉬울 리도 없지마는 끝내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짐멜의 “문화”였다. 이것이 공자의 “인”과도 유사한 개념이었다는 점이, 내게는 충격적이다.
3.
그러나 여기서는 공자를 잊어버리자. 짐멜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짐멜에게는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는 자신의 시대를 문화의 위기로 진단하였는데, 그 위기란 어디로부터 온다고 보았는가. (우리 시대의 위기를 통찰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세 가지는 짐멜의 주장을 간추려본 것이다.
첫째, 수단이 최종 목적으로 간주되는 도치 현상이 문제였다.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런 현상은 어떤 점에서 악질적인가. 인간은 내적이고 실천적 존재이다. 그런데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면,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합리적인 질서”가 완전히 망가진다.
둘째, “객관문화”가 “주관문화”를 압도하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속도에 있어서나 그 양에 있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외부에서 발생하는 문화 현상을 개인이나 집단이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이야말로 문화적 혼란의 비상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짐멜은 “문화”의 존재 의미를 “영혼의 완성”에서 찾았고, 그런 점에서 문화란 “주관적”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당면한 현실은 정반대였다. (위에서 말한 첫째와 둘째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되풀이 되고 있다.)
끝으로, 하나의 문화를 구성하는 여러 하위 분야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충돌하는 현상이었다. 이에 따라 문화적 소외현상이 발생하였다. 문화도 한 부분과 다른 여러 부분이 조화롭게 연결되어야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짐멜이 당면한 20세기 초반의 현실은, 하나가 다른 것들과 부딪치며 ‘상쇄’하는 결과를 빚었다.
짐멜의 탁월한 점은 이처럼 날카로운 통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19세기말부터 인간사회에 엄청난 파국이 밀려오고 있음을 정확히 파악했다.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 세상은 문화적 파탄 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것인데, 그는 이처럼 비극적인 사태를 지켜보며 인간의 장래를 결코 낙관할 수 없었다. (과연 20세기 전반의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두 차례에 걸쳐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4.

당대의 문화적 위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돈>의 문제였다. 그래서 짐멜은 <<돈의 철학>>이라는 두꺼운 책을 썼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짐멜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21세기 초반의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데도 유용하다. 그런 점에서 <<돈의 철학>>은 현대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저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 생활속으로 깊이 파고든 ‘비트코인’이야말로 짐멜이 지적한 돈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짐멜의 이야기는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짤막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본래적 의미에서 돈은 교환 수단이었다. 그것은 가치보상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중간매개자일 뿐이었다. 돈 자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극단적 무(無)”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문제는 말이다. 이 돈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가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합리성 또는 이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기이한 현상이 이미 세상의 대세를 이루었다.
현대인의 사고방식에는 돈이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삶에 필요한 어떤 대상 자체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사고 팔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유일한 걱정은 바로 “돈의 결핍”이다.
그러나 사물의 가치가 돈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가 알았으면 좋겟따. 하지만 이처럼 간단해 뵈는 인식의 전환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서구의 산업국가 시민들은 엄청난 물자부족에 시달렸다. 전후 독일에서는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대다수 시민이 곤경에 처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물자 곧 대상의 결핍이 인간사회의 근본문제였다. 짐멜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돈에 관한 인식의 변환이 가능하다며 이를 “심오한 영적 소득”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도 짐멜의 견해에 동의하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돈의 노예로 전락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던가.
5.
인간의 가치 전도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바로 돈에 대한 오해이다. 그에 못지 않은 문제가 전쟁에서 비롯된다. 전쟁이 왜 문제란 말인가, 되물을 시민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기보존” 욕구만큼 인간에게 절박한 것이 없다. 그런데 전쟁은 수백만, 수천만 사람들에게서 자기보존의 가치를 앗아간다. “민족의 승리와 유지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전쟁을 지휘하는 권력자들은 우리 모두에게 개인의 고유한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인간사회는 전쟁 놀음을 멈추지 못한다. (대선 토론에서도 어떤 철없는 후보는 끝내 '선제 타격'의 효율성을 고집하였다!)
거듭 말하지만 100여년 전에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오스트리아 빈의 시민들에게 “문화의 위기”를 경고하였다. 그 시절 유럽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으나, 그는 끝까지 절망하지 않으려고 애쓴 셈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희망의 의무”가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짐멜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칠흑같은 어둠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는 우리들도 또한 그래야 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 앞에는 21세기 혼란의 동굴이 아가리를 크게 벌린 독사 뱀처럼 기다리고 있으나,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 1916년 짐멜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했던 강연은,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게오르그 짐멜 선집 1, 김덕영, 배정희 역, 도서출판 길, 2013(3쇄), 177-215쪽에서 전문을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