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서평'
에리히 프롬을 꺼내어 다시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재발견했습니다. <<사랑의 기술>>의 일절입니다. 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문단도 가르고, 거기에 두어 마디씩 제 소감을 덧붙여 봅니다.
"권력에는 합리적 신앙이 없다. 권력에 대한 굴복, 또는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옳은 말씀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권력에 무조건 굴복하기 바쁘고요, 누군가는 손 안에 들어온 권력을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거지요. 권력이야말로 삶을 빛나게 하는 무기라고 믿어서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권력이야말로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겠으나,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성취한 것 중에서 가장 불안정한 것이 권력임을 입증한다."
기막힌 통찰이 담겨 있는 구절이군요. 그렇습니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권세도 십 년을 못 간다”라고 하였습니다. 권력을 상징하는 권세 권(權)이란 글자는 본래 “임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상한 정치 권력과 달리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권력 따위는 풀잎에 맺힌 이슬 정도로 보기도 하고, 정치 권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역사를 살펴보면 상극이어야 할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서로 부둥켜안고 야합할 때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때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바로 그처럼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서 우리의 프롬은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신앙과 권력은 상호 배척한다. 그런 사실 때문에 본래 합리적 신앙을 바탕으로 수립된 모든 종교와 정치체제는 말이다. 권력에 의지하거나 권력과 결탁할 때 부패하고 만다. (부적절한 결합으로) 종교와 정치체제가 가진 힘을 몽땅 상실하는 것이다.”
종교는 가변적이고 자의적인 현실 권력을 비판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종교 기관 또는 종교인이 구질구질한 현실에 영합하여 권력자를 미화하고 두둔하면 정치 권력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왜곡하고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말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저는 물론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제 관심은 스스로 권력을 움켜쥐는 데 있는 것이 아니지요. 저의 관심은요,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이 집권하여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막는데 국한됩니다. 시대착오적인 사람들, 특히 독재자의 후예를 자처하는 무리가 감히 다시는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하는데 한정된 정치참여인 것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