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의 '이슈 체크'
이번 대선을 ‘초유의 0선 대결’이라고 언론이 앞장서 목소리를 낸다. 2강 구도로 압축된 두 후보에게 ‘초자’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유권자의 판단 능력을 무디게 만드는 언론의 기술(테크닉)이다. 나쁜 언론들의 테크닉은 먹히고 있다. 문제는 나름대로 개성과 강점이 뚜렷한 두 후보를 동시에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이 후보 간 변별력을 없애고 정치 무관심층을 늘리는데 앞장서는 꼴이다.
언론은 ‘언론기술자’라는 오명을 하나 더 얻게 될 것 같다. 모든 명제는 참이든, 거짓이든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러나 언론이 끼어들면 모든 명제는 참도 되고 거짓도 된다. 이번 대선은 언론기술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오염시킬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지방자치제도의 순기능에 눈감는 언론
1987년 민주항쟁이후 1991년에 지방의회가 다시 출범한다. 그리고 4년 뒤인 1995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시 ‧ 도지사 시장 ‧ 군수의 민선시대가 개막한다. 그리고 시도지사의 대선 출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출마의사를 밝혔거나 뜻을 굳혔던 인사들은 조순 ‧이인제 ‧ 손학규 ‧ 유종근 ‧ 이명박 ‧ 김문수 ‧ 김혁규 ‧ 홍준표 ‧ 남경필 ‧ 양승조 ‧ 이낙연 ‧ 김경수 ‧ 안희정 ‧ 김두관 ‧ 박원순 ‧ 최문순 등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지방행정은 국가행정과 구조적으로 같다. 대통령의 직무에서 국방과 외교를 빼면 시도지사의 직무가 된다. 시도지사는 대통령 직무의 사전 훈련이다. 결국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는 행정경험을 중시한 시 ‧ 도지사 출신이거나 의정활동으로 능력을 내세운 국회의원이 주축을 이룬다.
미국도 주지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다. 주 단위로 지방자치가 확고히 뿌리내린 덕이다. 귀에 익은 지미 카터(조지아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지 W 부시(텍사스 주지사), 빌 클린턴(아칸소 주지사) 등이 모두 주지사 경험을 토대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여기에 상 ‧ 하원을 거친 정치인 출신이 대통령직에 도전하고 있다. 주지사출신이 많은 것은 행정경험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이다. 행정경험은 국정 수행능력과 큰 차이가 없다. 이게 지방자치제도의 순기능이고 강점이다.
‘지방자치 훈련된 李’ vs ‘정권교체 민심 탄 尹’
2강으로 압축된 이번 대선은 지방자치로 훈련된 이 후보와 정권교체의 민심을 탄 윤 후보의 대결장이다. ‘0선 대결’은 언론이 억지로 만들어낸 어설픈 글장난다. 언론은 명백히 구별되는 후보들의 이력을 전혀 엉뚱한 기준을 끌어다 둘을 동질화시켰다. 이는 특정후보의 약점을 보강해주고 명분이 뚜렷한 후보의 강점을 약화시킨 언론의 왜곡이다. 물론 그 시작은 조 ‧ 중 ‧ 동 언론세력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5.16군사 쿠데타로 무너진 뒤 1991년 지방의회 출발, 1995년 자치단체장 주민직선으로 다시 태어났다. 30년 동안 죽었다가 부활한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그렇게 생명력 있게 자라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기에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기초단체장인 시장과 군수, 광역단체장인 시 ‧ 도지사는(지방정부) 대통령과 함께(국가정부) 우리나라 행정을 끌어가는 두 축이다.
한 후보는 지방정부의 수장으로, 다른 한 후보는 현직 공무원에서 임기도 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출마했다. 언론은 언론기술을 동원했다. 국회의원 ‘0선’이 바로 그것이다. 그 언론인의 아이디어는 좋았겠지만 저널리스트로서 소양도 미달되고 양심을 버린 행위다.
틀 짜기 저널리즘, 언론 입맛에 맞게 정보 가공
언론의 위기다. 그 위기는 언론전문직의 위기에서 이미 시작됐다. 전문직은 경쟁력 있는 지식을 갖추고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권력집단을 말한다(강명구). 언론 전문직은 민주적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다. 사회적 파수꾼으로 언론, 제4부로서 지위를 누리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언론기술이 값싸게 동원되는 현실에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멸칭은 불가피해졌다. 언론이 정확성과 객관성, 공정성 등 저널리즘의 본질을 망각한 채 언론의 파급효과만을 무기로 삼아 권력에 동원되고 있다. ‘틀 짜기 저널리즘’이 대표적이다.
언론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팩트(fact)를 가공할 수 있다. ‘강조 ‧ 선택 ‧ 배제 ‧ 해석’ 등의 정교한 기술이 동원된다. 이렇게 비트는 작업이 틀짜기 저널리즘이다(Framing Theory). 문제는 똑똑한 대중들이 언론기술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이번 대선이 언론기술로 무장한 기성언론과 날 것 그대로의 개인미디어(SNS) 간 투쟁으로 점차 치닫고 있다.
틀 짜는 기성언론 vs 틀 깨는 대안언론 SNS
이번 지방자치로 준비된 후보냐,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심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대결장이다. 한 후보는 성남시와 경기도의 행정경험과 실적을 무기로 대한민국을 바꿔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다른 후보는 부동산 정책 등 현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새롭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현재로선 정권심판 민심이 우세하다. 전 세계적으로 기존 정권을 바꾸는 열풍까지 불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힘든 일상이 민심으로 나타나고 유권자의 투표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보수를 지향한 전통언론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수성향의 후보 지원에 나선 모양새다. 갖가지 언론기술까지 동원하고 있다. 여기에 대항해 똑똑한 대중들은 기성언론이 외면하는 팩트들을 SNS를 통해 부지런히 퍼 나르고 있다.
선거 판세는 기성언론과 개인미디어의 대결장으로 갈라섰다. 그리고 중도층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대선의 승패가 갈린다. 권력이 된 기성언론은 여론을 만들어 가는데 힘쓰는 모양새다. 개인미디어는 ‘기레기’들이 만드는 여론의 허구성을 까발리는데 주력한다. 양측의 팽팽한 접전으로 승부는 1~3% 안팎에서 갈릴 것이란 예측이 점점 맞아 들어갈 것 같다.
출발선부터 빗나간 대선 레이스 우려

애초부터 ‘0선’에 초점을 맞추려한 언론의 기술로 야권 후보는 예상한 그대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언론의 보호막과 정권교체 민심을 타고 유력 주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재자 찬양과 민주주의를 부정 하는듯한 발언이 불쑥 터져 나오기도 한다. 후보와 가족의 비리에 기성언론이 눈감아준다는 불만도 팽배하다. 유권자가 스스로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후보가 나오고 공감하는 이가 크게 늘고 있다.
언론사도 기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언론기업의 이익을 위해 작동한다. 권력이 된 언론에 비판적인 후보에 언론이 공정할 리 없다. 언론비판 수위가 광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면 죽기 살기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 갈등 속에 이득을 보는 다른 후보가 있다면, 그는 의도하든 안하든 언론에 은덕을 입고 빚을 지게 된다.
박빙의 대선 판에서 기성 언론은 ‘기레기’란 멸칭을 걷어내야 한다. 그 방법은 저널리즘에 기초해 후보를 검증하고 대한민국 미래를 묻고 남북관계 해법을 집요하게 따지는 일이다.
/김명성 객원논설위원(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