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하루에도 몇 통씩 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답신도 필요하지 않는 편지들, 내 마음속에 불현듯 그리움이 밀려오거나 슬픔이 일렁이기만 하면 써서 붙이던 그 편지들, 그 편지들이 어느 누구에게 갔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이, 수없이 많은 세월이 가고, 그 뒤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나는 가끔씩 허공에 편지를 띄워 보낸다. 누가 받아도 좋고, 누가 받지 않아도 좋은 그 편지를.

“일전에 내려 주신 아름다운 시편(詩篇)을 연협(衍篋. 상자의 하나)에 감추어 두고 보배에 비교하기를, 수주(隋珠. 수나라의 임금이 뱀을 살려주자 그 뱀이 물어왔다는 천하의 보석)같이 하였는데, 한 번 본 뒤에 문득 잃어버려 자취가 없으니, 귀신이 빼앗은 바가 되었나 봅니다.

요사이 흥 보내는 일이 반드시 많으리니, 먼저 보내주셨던 시를 아울러 꼭 써서 보내 주시어, 나를 즐겁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또한 이 못난 사람의 초고(草稿)를 본래 차마 보실 것은 못되지만 다행히 얼핏 보시고 하나하나 고쳐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옛 사람에 소군(蕭君)이 한 글자를 내려 준 것을 스스로 다행으로 여긴다는 자가 있었는데, 하물며 내 나쁜 시와 글자의 뜻을 아직 고퇴하지 못한 것이겠습니까?“

권오복이 김일손에게 보낸 시의 서문이다.

내가 보낸 글을 어떤 사람이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가슴이 아릿할까? 그런 사실을 알고부터 보내는 글은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고 이런 저런 상념과 마음을 담아 보내는 글이 될 것이다.

그 글이 그에게 남아 있거나 금세 사라지거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권오복의 편지를 마음 한편에 밀쳐 두고 이어서 시 한편을 다시 읽는다.

“밤비는 쓸쓸히 내리고, 싸늘한 등불 밝게 빛나는 데, 서풍이 불자 나뭇잎이 떨어지니, 가을 소리 들리는 곳이 없네.”

가만히 읊조리는 시의 음률 속으로 가을이 성큼성큼 따라서 지나가 버리고 그 지나가는 시간의 빠름 만큼이나 가슴이 무너지듯 쓸쓸해지는 것은 그 무슨 연유일까?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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