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 칼럼'

 지난 역사를 더듬는 가운데 우리 역사에 찬란한 빛을 선사한 동학으로부터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한 믿습니다. 저는 이 강좌를 다음과 같이 설계했어요.

첫 번째 강의에서는 동학의 가르침이나 정치사회운동을 말하지 않아요. 그 대신에 19세기 후반, 동학이 처음 나타나게 되었을 때까지의 역사를 곰곰 생각해볼 것입니다. 동학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피려는 거지요.

그런 뜻에서 제1강은 ‘『정감록』에서 신종교로’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동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상이 움트기 전, 한국 사회에서 과연 어떠한 문화적 흐름이 있었는가를 새로운 관점에서 짚어보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강의에서는 동학사상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동학을 일으킨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라는 분이 누구인지를 따져봐야겠지요. 또, 그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의 사상에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최시형은 까막눈이었다고 합니다. 한문을 모르는 순수한 평민이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 까막눈 최시형이 실은 대단했어요. 최시형과 최제우에게서 동학의 근본정신을 듣는 것이 둘째 강의의 목적이지요.

세 번째 강의에서는 동학이 동학답게 떨쳐 일어난 정치사회운동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의 본질을 조금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동요를 모를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구슬픈 곡조의 이 노래는 동학농민운동의 좌절을 말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요. 동학은 그저 듣에만기 좋은 가르침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하겠어요. 실천을 매우 강조했다는 말씀이지요.

동학농민의 실천적 운동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고, 또 한쪽에서는 농민전쟁이라고도 하지요. 저는 ‘운동’이라고 부르겠어요. 영어로 ‘운동(movement)’이라는 말의 쓰임새가 대단히 포괄적이기 때문이지요. 동학농민들이 누군가를 상대로 전쟁이나 혁명을 일으켰다기보다는 사회·문화적으로 대대적인 혁신운동을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제 관점입니다.

끝으로, 네 번째 강의에서는 동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싶어요. 저는 줄곧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고 말하는데요, 이는 동학의 역사와 우리의 현재를 통찰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겠지요.

통찰의 힘은 누구나 얻고 싶어하지만 쉽게 도달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제 부족한 학식으로 과연 통찰이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시작하는 마당이라 큰 꿈을 가져봅니다.

과거란 이미 지나가버린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과거의 그늘에 묻힌 역사가 있었기에 우리의 오늘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장차 우리가 열어갈 미래라고 하는 것은 말이지요. 먼 과거로부터 현재를 통해 흘러가는 유장한 역사의 강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미래를 철저히 구속하는 것은 아닐 터입니다. 우리에게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언제든지 역사적 흐름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른바 ‘역사적 결정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역사주의가 세상에 널리 퍼지기기를 소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요?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여행자의 필수품인 지도와도 같은 것이지요.

이 책은 2014년 '하자센터'에서 열렸던 네 차례의 강의를 바탕으로 새롭게 엮은 것입니다. 네 차례에 걸친 이 강의를 통해서, 우리의 선조들이 동학의 이름으로 이루고자 한 세상의 모습을 좀더 정확히 알아보고 싶어요.

아울러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장차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려고 해요. 독자 여러분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우리 역사의 새 길을 여는 준비의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수년 전 뜨거운 마음으로 강의 시간을 함께해준 그날의 청소년 여러분께, 그리고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 하자센터의 여러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출처: 백승종,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들녁, 2019)

오늘 밤(2021. 11. 9) 전북 남원에서 동학 강의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어요. 길을 떠나기 전에 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봅니다. 동학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되묻는 거지요.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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