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서평'
<언더그라운드 -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 기억>>, (양희, 허욱 공저, 산처럼, 2021)
아직도 일본과 한반도 곳곳의 지하에는 국가 폭력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지요. 시모노세키, 지쿠호, 나가사키, 나가노, 지란, 오키나와, 제주도, 부산, 서울 등에 말입니다.
강제로 껌껌한 지하로 끌려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지마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많은 사람이 권력의 강요 때문에 지하 시설물을 만들다 죽어갔고, 간신히 살아남아서도 그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 책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독재국가의 폭력, 즉 공권력에 희생된 무명씨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2014년부터 비극적인 지하시설을 탐사해온 허욱 감독, 그 결과물을 정리한 양희 작가의 협업으로, 우리는 이런 끔찍한 지하 시설물에 얽힌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미끈하게 정리된 공식적 역사의 이면에, 평범한 시민의 피와 눈물이 끈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그때 나는 청춘의 문턱에 올라선 열일곱밖에 되지 않은 사내였다. 식민지에 태어났다는 숙명, 자신의 악운, 군국주의의 강권, 강제노동에 의한 자유의 박탈, 이런 압박들은 나의 몸뚱이를 짓이기고 있었다. 그것은 나 혼자만에 대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몇십만 징용인들이 겪고 있는 똑같은 운명이었다. 나는 개, 돼지만도 못한 이런 비인도적 처우에 대해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놈들아!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어쨌다고 이런 곳으로 끌고 와 고생을 시키느냐. 그리고 내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작정이냐. 나라를 위한다고 하지만 너희들은 전쟁의 미치광이들이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입술을 적셨다. 짜고 미지근한 액체를 소매를 끌어당겨 닦았다. 그러나 아무리 한탄하고 슬퍼해도 이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이홍섭, 1927년생, 1944년 사가현 가라쓰 탄광에 강제 동원)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