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승종의 '역사칼럼'
2016년 11월 1일, 그 당시 나라는 왼통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관한 시비에 휩쓸렸지요. 그때도 검찰은 미적대기만 하였고, 벼슬 높은 정치가들은 출구전략에만 매달리고, 언론은 대체로 이 사건에 냉랭하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어언 5년 전의 일이라 우리의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근혜의 후예인 우리나라 야당 일각에서는 국정농단의 책임을 두고서 다른 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제와서 박근혜를 벌준 사실을 후회한다는 망발까지도 태연히,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참으로 유구무언입니다.
현실 정치의 속성은 아마 그런 것이겠지요. 미래를 향해 뚜렷한 전망이나 지침을 가지고 움직인다기보다는 그저 권력을 쫓아가기에 급급한 거죠. 때가 되면 시민의 회초리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회초리로 피가 나게 때려주어야 겨우 역사의 방향을 조금 트는 정도입니다.
이번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G 20"에서도 정상들이 모여서 기후 위기 를 거론하였으나 그저 말잔치만 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저마다 "주식회사 00국"의 대표로 회의에 나간 것이라서 대기업에 악영향을 주는 결정은 차마 할 수가 없습니다. 시민이 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을 것처럼 목에 칼을 들이대야만 겨우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나 절망할 일은 아닙니다. 십년 이십 년에 한번 씩이라도 조금씩 바꿔나가면 되지요. 지금까지도 인류는 그렇게 살아온 것이고요.
지나간 일을 몽땅 잊기가 아쉬워서 2016년 11월 1일에 쓴 최순실 국정농단에 관한 짤막한 글을 부기해둡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힘겹게 몸으로 써온 민주주의의 역사란 것도 이내 망각의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 테니까요.
1.
검찰이 어떻게 나와도 이제 우리는 ‘진실’을 안다. ‘순실’이 그 잘난 호화변호인단의 호위 속에서 무슨 거짓말을 속사포처럼 뿜어대도 우리들 시민은 안다. 검찰은 여직 하기 싫어하며 이핑계 저핑계로 미뤄둔 수사를 그만해도 좋다. 주범이 빠졌는데 까짓 종법들만 가지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한들 뭐가 어떻게 또 달라지겠는가.

2.
권력과 돈에 배부른 자들은 과도정부니 거국내각이니 멋대로 써댄다. 아직도 간교한 암고양이가 저기 저 어둡고 음습하고 길고도 멍청한 긴 터널 속에서 주문을 외고 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잔말이냐? 먼저 주범을 체포하여야 한다. 주범과 종범들을 나란히 굴비처럼 엮어놓은 다음이라야 ‘과도’가 과연 필요한지, ‘거국’이 정말 우리들의 요구사항인지를 따질 일이다.
3.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우리가 한다. 시민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루이16세를 대법관이 처형했든가? 마리 앙뚜아네트를 대검찰관이 몰아붙였던가? 미친 궁예를 왕건의 유식한 부하들이 심문 끝에 처치하였든가? 시민들에게 맡기라. ‘진실’을 아는 시민들의 손에서 이 일은 결단이 나야 한다.
4.
너무들 유약하다. 너무들 고약하다. 너무들 음험하다. 너무들 간악하다. 너무들 도를 넘었다. 길고 구부러진 역사의 길목에서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용솟음치는 ‘진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검찰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아야하고, 기레기 소리 듣는 언론인도 자성해야 한다. 잘난 척하며 살아온 모두는 이제야말로 겸허한 마음으로, 시민의 진실을 따르라! 어리고, 젊고, 병들고, 늙었으나, 헤아릴 수 없이 큰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희망인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라!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