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의 '이슈 체크'
군부독재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 당시 남미에서는 좌익척결을 명분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비행기에 실려가 태평양 상공에 내던져졌다. 군부독재가 횡행한 ‘더러운 전쟁’ 시절(1976~1983년)이다.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만 3만 명가량이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갔다. 마르크스주의로 무장한 해방신학에도 너그러운 교황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 요청에 흔쾌히 답변했다.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
교황,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대학살 현장 목격

우리나라가 박정희-전두환의 군부독재를 겪던 시절, 아르헨티나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테러가 자행됐다.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학생과 언론인, 지식인들이 숱하게 사라졌다. 실종되거나 살해가 일상화된 생지옥 그 자체였다. 군부는 이들을 없애기 위해 곳곳에 죽음의 수용소를 설치했다. 고문과 납치는 일상이었다. 가톨릭 신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군부독재와 지주계급, 기업의 착취 속에서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이 싹텄다. ‘하느님은 민중의 편에 있는 민중의 하느님’이라는 것. 이러한 믿음은 영혼 구원에 머물던 종교를 사회구원으로 빠르게 확장시켰다. 빈곤은 사회적 죄악이 되었고 민중의 고통은 가톨릭교회의 아픔이 되었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경제구조는 투쟁의 대상이 되었고 계급투쟁은 정당화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중남미 전역에서 벌어진 이 같은 현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바티칸 초청해 미국-쿠바 정상화 '화해 물꼬'
2014년 12월 1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쿠바와 수교를 위한 공식 협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단교 53년 만에 정상화가 된 것이다. 그날은 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일이었다. 오바마는 교황과 가톨릭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과 쿠바 양국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화해하도록 힘쓴 공로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외교 회복은 곧바로 여행 자유에서 수출입 확대로 이어졌다. 양국 간 화해가 이뤄지기까지 가톨릭은 “쿠바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세계는 쿠바를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며 종교의 사회구원 역할에 충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년 전인 2018년 10월 교황을 처음 면담할 때도 방북을 제안했다. 하지만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방북이 성사되지 못했다. 교황의 방북은 세기의 사건이다. 교황이 평양 현지에서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세계인을 감동에 젖게 할 것이다. 이어지는 내년 2월의 북경 동계올림픽은 인류의 제전이 될 것이고 금지된 북한의 참가도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이다. 인류의 축복 속에 남북 교류가 재개될 것이다.
국내 보수층 냉담, 교황 활용 북한체제 선전 '딴지'

국내 보수층은 보수 언론을 통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보수 언론은 냉담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북한이 경제난을 감수하면서 교황의 방북을 수용할 것인지 의문이라는 회의론을 퍼뜨린다. 코로나에 민감한 북한이 대규모 미사를 개최하기 어렵다는 비관론도 먼저 제기한다. 교황을 초청할 때 북한이 종교 인정에 대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란 우스꽝스런 시나리오도 나온다. 수령 체제의 위기감도 클 것이라며 예단한다.
더 나아가 누구를 위한 방북이냐며 노골적으로 빗장을 걸기도 한다. 교황은 방북의 성과를 얻기 힘들 것이라며 훈수한다. 이들은 대통령과 정권이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아냥거린다. 북한의 음모도 제기한다. 북한이 예전부터 교황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점을 의식한 탓이다. ‘교황이 알현하러 온다’는 식의 북한 내부 선전용이라는 것이다. 결국 교황 방문은 북한의 체제 우월성 선전에 활용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북한, 종교 긍정하고 정상 국가 지향 발 빠른 움직임
북한은 2010년 현재 종교 인구가 전체의 0.25%를 차지하고 있다(이병수). 해방 당시에 비해 100분의 1로 축소됐다. 이색적인 것은 1980년대 이후로 주체사상의 입장에서 종교를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제적인 종교단체를 통해 종교 교류가 이뤄지면서 민족통일 등에도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는 정상적인 국가를 지향하는 김정은 체제에서 남북 종교인 간 교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교황청도 충분히 분석하고 있으리라.
평양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려졌다. 남한의 교계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모두 북한 출신인 이유다. 거기에 김일성 집안이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점, 김정은 자신도 스위스 유학생활에서 접했을 종교 활동을 고려할 때 교황 방문 여건 그리 나쁘진 않다. 오히려 북한의 종교가 차츰 활력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김정은이 교황 방문을 오래전부터 환영해오던 터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유럽인의 북한 여행이 잦았다. 교황의 평양 방문은 북한에 대한 공포를 일거에 해소할 것이다.
교황청이 평양과 직접 협상해 평화를 실천하라

교황의 해외 순방은 해당 지역의 교구장이 실무 협상을 하고 교황을 공항에서 영접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평양교구는 있지만 교구장이 공석이어서 서울대교구장이 겸직하고 있다. 남북 협상이 원활하지 않은 지금. 결국 바티칸이 평양과 직접 협상하는 게 현실적이다.
교황의 방북이 이뤄지면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지역 발 평화의 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다. 국제사회에 울림은 커질 것이고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협상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동시에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발걸음이 분주해질 것이다. 북한에 종교가 정상적으로 뿌리내릴 계기가 되고 인도적 지원이 열릴 것이다. 북한은 교황을 맞이함으로써 고립과 폐쇄의 뚜껑을 벗는다. 정상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설 기회가 열린다.
교황청은 북한으로부터 초청장을 기다리지 말고 앞서 요청하라. 신임 정순택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은 좌고우면 말고 교황 방북 추진단을 즉각 꾸려라. 남한 교인들의 교황 방북 의견도 교황에 전달하라. 개신교와 불교, 원불교 등 한국의 종교계도 교황방문을 촉구하라. 교황의 북한 방문은 절대 선(善)이다. 교황 방북을 막는 자는 분단에 기생하는 자들뿐이다.
/김명성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