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의 '이슈 체크'

기시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供物)을 바쳤다. 공물의 실체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나무 명패와 야스쿠니 신사 제단 좌우에 세우는 나무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자 위패를 모아놓은 신사에서 지내는 가을 제사 자리다.

합동제사 대상자는 전쟁으로 죽은 250만 명. 기시다의 공물 봉납은 예상된 짓이다. 현재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닛폰카이기(日本會議 にっぽんかいぎ)의 실세 중 하나로서 자기의 위상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 국민들과 극우세력에게 닛폰카이기의 건재를 알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국의 문화재청도 ‘천황 숭배’로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다. 우리의 가야유적을 ‘천황이 통치하던 임나’의 유적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서두르고 있다. 과거 200년 일왕이 남조선을 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를 전 세계에 알리는 퍼포먼스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 역사문화를 친일파들이 교묘히 일왕 숭배로 바꿔치기하고 있는 것이다. ‘천황 숭배’를 고리로 냉각 상태인 한일 관계를 풀어가려는 짓인지 매우 우려스럽다.

닛폰카이기(일본회의)가 지배하는 나라 일본

이번에 기시다를 총리로 내세운 자는 아베 전 총리다. 아베 총리 당시 각료 20명 중 15명이 닛폰카이기 회원이었다. 일본의 국회의원은 중의원 485명, 참의원 245명을 합해 730명인데 닛폰카이기 소속은 40%인 3백 명 가량이다. 당을 초월해 닛폰카이기 아래 서로 뭉친다. 보수성향의 정치인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80% 가량이 닛폰카이기 회원이다. 닛폰카이기가 지금의 기시다 내각을 만들었다. 일본의 정권자체가 닛폰카이기 정권이고 일본이 닛폰카이기의 나라이다.

기시다 일본 총리
기시다 일본 총리

닛폰카이기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수출 통제와 우리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진 시기부터다. 공식회원만 4만 명이며 정치권, 재계, 역사학계를 망라한다. 특히 정치권은 지방의회까지 뿌리내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본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천황제 국가의 복원’이다. 이들은 선거구를 기준으로 300여 개 지부를 두고 막대한 기부금과 협찬금으로 정치인을 배출하고 있다. 8만여 개에 달하는 전국의 신사(神祠)가 일사불란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천황 숭배’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신(神)인 ‘천황’을 국가운영의 원리로 격상시키는 ‘제정일치’ 사회로 일본인의 단합을 꾀하고 있다.

닛폰카이기, 우리나라 정권 교체도 감행

일본이 군국주의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낸 때가 아베 총리시절이다. 아베는 혈통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외할아버지가 기시 노부스케다. 대륙 침략의 한창이던 때 만주국의 설계자로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그런 전력으로 A급 전범자가 됐다. 교수형을 앞두고 용케 살아났다.

생존을 위해 맥아더를 향해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던 중 6.25 한국전쟁까지 일어나자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게 됐다. 정계에 뛰어들어 총리직까지 거머쥐며 90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아베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이 땅을 농락했다.

그가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에 취약한 한국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반도체 관련 수입을 느닷없이 막아버린 것이다.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한국 내 보수심리를 자극해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입히고 정권교체까지 겨냥한 노림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겨냈다. 반도체 산업의 자립화는 오히려 빨라졌고 거대 여당이 출범했다. 아베의 ‘장난질’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총독부, ‘천황’이 다스리던 나라 만들기

일제는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안에 조선사편수회를 발족했다. 역사를 침략과 지배의 정당성이라는 틀 안에서 비틀고 날조했다. 가장 공들여 날조한 행위가 고대에 200여 년 동안(369~562) 일본이 이미 식민지로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설이다. ‘천황’이 ‘임나’를 정벌하고 통치했다는 것이다. 실로 황당한 얘기다.

그들은 고대 자기네 땅에 있었던 ‘임나(任那)’라는 지명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5백년 역사를 지닌 ‘가야’를 뜬금없이 임나라고 우겼다. 그리고 가야를 통치하던 기관을 ‘임나일본부’라고 그럴싸하게 꾸몄다. 임나일본부라는 기관을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설치하고 가야를 다스렸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정책으로 정교한 이론화 작업을 추진했고 이를 가르쳤다. 그러던 중 이 땅은 해방을 맞았다.

북한은 조선총독부 역사관 청산, 남한은 아직도 '맹종’

해방을 맞이한 남북한 역사학계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북한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청산했고 반대로 남한은 총독부 역사관 계승으로 나아갔다. 북한은 친일파 우대에 실망한 남한의 역사학자들을 북한으로 모셔갔다. 일제에 수감됐다가 해방과 함께 출감한 김석형과 같은 역사학계의 대가들이다.

북한은 고대 기록을 담은 역사서(原典 1차 사료)를 토대로 일제의 역사 날조행위를 모두 뜯어 고쳤다. 조선총독부가 근거 없이 정책적으로 조작한 임나일본부설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오히려 고대 역사서를 바탕으로 일본열도에 진출한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의 발자취를 밝혀냈다. 그리고 임나가 일본 열도 어느 곳에 있었는지도 찾아냈다. 일본의 역사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반면 남한은 조선총독부 역사정책을 수립한 당사자들인 일본인 관변학자들을 학문적 스승으로 삼았다. 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1932),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1904~1992)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남한 학계는 원전을 무시한 채 일본인들의 연구 성과(論文. 2차 사료)를 중시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종사했던 이병도는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총독부 역사정책을 성실히 이어갔다. 교육부장관을 지내면서 더 굳혀갔다. 이병도는 한국역사의 태두(泰斗)로 칭송을 받는다. 태두는 가장 권위가 있는 자를 일컫는다. 지금껏 우리 역사가 식민사학을 벗지 못하고 날조된 역사에 세뇌되고 있는 까닭이다.

가야를 ‘천황의 역사’로 날조해 세계유산 추진

“진구황후(神功皇后)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가 7국과 4읍을 점령하고 임나에 일본부(日本附)를 설치해 다스렸다. 임나일본부는 562년 신라에 점령되었다”

나라를 잃은 백제유민들이 한(恨)을 담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다. 따라서 정확성은 없고 한 많은 ‘정서’를 반영한 책이다. 가짜 역사서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국의 많은 역사책을 비교하며 진실을 캐내야 한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만 쓰여 있을 뿐인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정설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일본 극우적 역사학자와 우리 남한 역사학자들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조선 침략은 먼 옛날 식민지의 복원’이라는 백 년 전 조선총독부의 케케묵은 정책이 오늘까지 더 힘을 얻고 있다. 7개 나라 중에 ‘반파’와 ‘기문’ 등이 있고 그게 남원 장수 임실 일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들통 났다. 문화재청은 소중한 가야 유적지를 “먼 옛날 ‘천황’의 공적과 발자취”를 기리며 반파, 기문의 임나 유적지로 바꿔치기하려다 주민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문화재청은 일본학자와 이병도, 그리고 총독부 역사관을 이으려다가 현재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남북 역사 교류로 뒤늦은 친일 청산 매듭지어야

‘천황 숭배’를 기치로 내건 닛폰카이기의 실세인 기시다 총리의 출범.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가야 유적지를 ‘천황 숭배’로 바꿔치기해 기시다 총리에 선물을 주려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뜻하지 않는 선물일 것이다. 문화재청은 냉각상태에 있는 한일 관계를 풀어낼 계기로 삼았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이는 분명 매국행위다. 있지도 않은 200년 식민지를 자처하는 것은 중대 범죄다. 그 과정을 살펴 중대 범죄자로 엄벌해야 한다. ‘현대판 이완용’들을 색출해내야 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남북 관계가 풀리는 대로 역사교류를 서둘러야 한다. 남한보다 고대사 연구가 월등한 북한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며 식민사학(植民史學) 청산에 나서야 한다. 내년 3월의 대선도 친일 잔재 청산, 총독부 역사관 청소의 분수령이 되어야 한다.

/김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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