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이 책에서 나는 조선사회의 두 가지 특징에 주목했다. 첫째, 마을에 스며든 선비의 힘이다. 조선 500년 동안 많은 선비들은 마을에서 살았다. 시골 마을은 그들의 생활터전이었고, 거기서 선비들은 서당을 운영했다. 그들은 이웃사람들을 일깨웠다.
이것이 조선 사회를 역사상 독특한 사회로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했기에 국가가 외적의 침략을 받으면 각지에서 의병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이는 조선시대 마을의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성리학 문화를 대표하는 한국의 서원들은 시골 마을에 흩어져 있었다. 주요한 문화기관이 서울에만 집중되어 있는 오늘날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조선왕조는 얼핏보아 중앙집권적 국가였으나, 실질은 달랐다. 조선은 ‘마을공화국’의 연맹체나 다름없었다. 선비들이 건설한 조선 사회의 실상은,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나는 조선 사회의 본질을 곱씹어보기를 촉구한다. 그로부터 우리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시민들이 높은 문화적 수준에 도달한 분권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 지식인과 시민이 공고한 연대를 구축한 사회라야 희망이 있다.
이야말로 비인간적 차별과 양극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무망하게도, 나는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다시 모두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유교를 공부해야 한다는 뜻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아파트를 내버리고 마을로 돌아가서 유교이념을 널리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성인(聖人)도 시속(時俗)을 따르는 법이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우리는 21세기 시민이므로, 지금 우리가 선 자리에서 시민사회의 문화수준을 높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보편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방안을 모색하자는 말씀이다.
역사가로서 나의 임무는, 그런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내 역할은 장차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는 데 그친다. 이 글에서는 다소 거칠게나마 한국 사회의 미래 지향점을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바람직한 공동체의 본질에 관한 역사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장차 분권적 사회를 이루고, 계층을 망라한 상호연대를 강화하려 할 때,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미래의 한국 사회는 과연 견고한 하나의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현대 한국 사회는 공동체로서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절로 떠오르는 질문이다.
권력과 재력은 극소수의 기관과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시민의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른바 선진 공업국가 중에는 한국처럼 청년실업률이 높은 나라가 어디 있는가. 우리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도 대단히 낮다.
청년들은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자학적으로 말한다. 한국인의 삶은 질적인 면에서 볼 때 실로 열악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나쁘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공동체의 순기능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해법을 숙고해야 한다.
많은 사람은 북유럽의 복지사회를 배우자고 말한다. 일견 옳은 주장이지만, 잠시 동안 시선을 우리의 과거를 향해 던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조선사회야말로 인간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을 통해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 바로 질서와 안정에 있지 않았던가.
내가 아는 어느 서양학자는, 조선 사람들을 “조직의 명수”라고 불렀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는 정말 다양한 계회(契會)가 존재했다. 집안에는 족계(族契)가 있었고, 마을에는 동약 또는 향약이 있었다. 같은 관청에서 근무한 관리들끼리도 마음이 통하면 계를 맺었다.
동일한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도 계를 맺어 서로를 돌보았다. 배움을 함께 한 사람들끼리는 동문(同門) 또는 문생(門生)이 되어, 대대로 특별한 유대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조선의 사회조직이 순기능만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지연, 혈연, 학연의 끈끈한 인연이 지나치게 강조되자
어두운 그림자도 짙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왜곡하거나 턱없이 미화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런 약점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조선 사람들은 계회로 대표되는 다양한 사회조직을 구성했다.
그들은 조직의 구성원을 대등하게 대접했고, 상호 존중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사회조직은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기꺼이 담당했다.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불치의 한국병처럼 굳어진 오늘날, 우리는 ‘혼밥’과 ‘혼술’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비정하고 메마른 이 시대의 한 모퉁이를 방황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로서는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역사를 통해 절망을 헤쳐 나갈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정당하다. 자기애에 사로잡힌 복고주의자의 함성이라면, 그것은 물론 위험천만한 일이다.
또, 역사적 운명론을 신봉하는 몽상적인 발화(發話)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거에 때한 깊은 성찰을 통해 역사의 샘물을 함께 길어 마시고, 그로부터 앞길을 개척할 강한 힘과 늠름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썩 달라진다.
※출처: 백승종, <신사와 선비>(사우, 2018;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 우수콘텐츠 선정)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