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의 '이슈 체크'

대선 이슈가 성남시 분당 대장지구 개발 사업으로 덮였다. 눈에 안 보이는 검찰의 선거개입 의혹보다는 땅 문제에 누구든 열 받기 십상이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선거 전략이 딱 들어맞게 됐다.

정치인 자녀의 50억 퇴직금까지 기름 부은 꼴이다. 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시간을 갖고 수사에 대비할 것이고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당장 돌파구를 터야한다. 경선이 끝나더라도 대선이 치러지는 동안 야당은 집요하게 문제 삼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참패로 이어졌고 정권교체 우세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토지문제는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 고려가 사라지고 조선이 개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려시대 말엽 논밭도 없어 군인이 사라지다

고려는 황제국이다. 연호를 정하고 호칭도 ‘짐’을 자칭하고 ‘조서’를 내렸다. 제후국에서 통용되는 ‘과인’이나 ‘교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개경을 황제의 수도라는 뜻의 황도(皇都)로, 서경을 서도(西都)라 불렀다. 나라의 인재도 멀리 중국 남방과 북방으로부터 받아들였다. 해외에서 영입한 인재들에게 신하로서 특별한 예를 갖추어 집을 배정해주고 혼인까지 시켜줄 정도로 파격적으로 대접했다(고려사).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안내 포스터(KBS 홈페이지 캡쳐)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안내 포스터(KBS 홈페이지 캡쳐)

고려의 국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우선 토지제도를 들 수 있다. 20세~60세까지의 모든 농민들에게 토지를 주고 그 대가로 병역의무를 지게 했다. 60세 이후에는 아들이나 조카가 이 땅을 인계받아서 병역의무를 수행했다. 아들이 없으면 그 부인에게 주었다. 70세 이후에는 자식 없는 군인의 아내에게 땅을 지급했다. 전사자의 아내에게도 생계를 유지하게 했다. 즉 모든 백성들이 지급받은 토지의 대가로 병역을 수행하고 병역의무가 끝난 후에도 그 토지가 아들이나 부인에게 그대로 계승되는 복지국가였다. 고려가 숱한 외침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다. 토지와 군역(軍役)이 일체화된 토지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몽골의 원나라 간섭기에 들어서면서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친일파처럼, 부원배의 횡포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 원에 결탁한 매국노들은(舊家世族)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자신의 농장으로 만들고 양민들을 노비로 만들었다. 병농일치 국방체계가 붕괴된 것이다. 군인들의 봉급인 땅이 없어지면 직업군인도 사라지게 된다. 나라가 망해간 것이다.

역성혁명파 개국 플랜, 정도전의 토지제도 개혁

고려 말 정도전 중심의 역성혁명파는 혁명적인 토지제도를 개국 플랜으로 내세운다. 인구를 헤아려 농토를 나누는 방식이다(計民授田). 왜구와 홍건적 토벌로 대토지 소유자가 된 이성계도 이를 받아들인다. 소수가 다수의 토지를 강탈해서 이미 문란해질 대로 문란해진 땅 문제. 혁명적인 방식이 아니면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려면 토지가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당연히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그들의 논리는 ‘오랜 법제를 경솔하게 고칠 것이 아니다’라는 것. 결국 찬반 속에서 절충한 끝에 모든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지는 못하고 나랏일을 보는 관리, 군인, 학생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과전법 시행에 그쳤다. 그리고 관청과 개인이 가진 그동안의 모든 토지문서를 개경 한복판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그 불은 여러 날 동안 탔다.

토지문서가 없으니 더 이상 내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어졌다. 정도전은 “백성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일이 비록 옛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문란한 제도에 비하면 어찌 만 배나 낫지 않겠는가?”라며 자평하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권문세가로부터 거대한 토지를 빼앗아 많은 이들에게 분배한 것만으로도 혁명적인 변화였다.

대장지구 논란의 핵심은 ‘공영이냐 민간개발이냐’

현행 토지개발 방식은 공영(공공)개발과 민간개발로 구분된다. 공영개발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하는 것이고 민간개발은 토지를 소유한 민간사업자가 개발 공급하는 방식이다. 공영개발은 공권력이 동원된다. 공공기관이 필요한 토지를 일괄매입하고 개발한 뒤 분배한다. 따라서 협의매수든 강제매수든 신속하게 진행된다. 반면 주민참여가 배제돼 주민과 토지소유자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공영개발의 장점은 무엇일까. 첫째, 저렴한 택지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상승하는 가격을 공공기관이 틀어쥐기 때문에 가능하다. 둘째, 공공택지와 공공주택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다. 셋째, 토지를 일괄매수하기 때문에 도로와 공원, 학교 등 공공시설을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 넷째, 개발이익을 몽땅 거둬들이고 재투자할 수 있다.

대장지구 개발 사업은 대형 민간개발 방식으로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챙길 막대한 이권을 막았다는 점이다. 국가가 민간개발로 하도록 한 명령(이명박 정권)을 지방자치단체가 공영개발로 맞서면서 절반이라도 이익을 흡수한 것이다. 공영개발을 통한 이익 환수에 정치공세를 퍼붓는 것은 정당이 국민을 속이는 짓이다. 공영개발의 본질을 알면서도 이에 편승한 언론은 무능을 드러낸다. 경제부가 눈감고 정치부만 떠들면서 진실까지 팽개치고 있다.

반면 민간개발 방식의 막대한 이권 챙기기가 국민적 공분을 샀기 때문에 앞으로 공공기관의 공영개발 방식이 명분과 동력을 더 얻게 됐다. 공공개발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줄여 가면 될 일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다. 완전 공영개발방식이 정착된 곳으로 택지조성에서부터 주택건설과 분양까지 공공기관이 일괄 담당한다. 국민 대다수가 공공주택에 거주하고 공공기관은 땅을 꾸준히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투기가 사전에 차단된다. 싱가포르가 강소국이 된 비결이다.

지방자치, 공영방식의 택지-주택공급 확대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전경.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전경.

국가가 택지와 주택공급을 통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시장에 맡기는 것은 빈부격차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민간의 시장 기능과 국가 통제(시장 개입)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보수정권의 정책실패는 시장을 통한 욕망 자극에서, 진보정권의 정책 실패는 어설픈 시장 개입에서 비롯된다.

국가 공기업(LH공사)의 정상화와 신뢰회복이 시급한 이유다. 공영개발 방식이 토지,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상식이다. 여기에 지방분권에 걸맞게 지방자치단체의 공영개발 참여 확대도 중요시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공영개발은 토지의 공공비축과 철저한 개발이익의 환수, 지역적 투기방지, 임대주택 공급 확대, 그리고 민간개발과의 협력체제 도입을 골자로 추진돼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정책은 주민들의 주택복지 실현으로 확장돼야 한다.

고려 왕조의 수명이 다한 것은 땅 문제에서 비롯됐고 역성혁명가 정도전은 땅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조선왕조를 열었다. 부동산 정책은 국민통합과 조세기반을 통한 국가성장의 원동력이다. 21세기 혁명적 토지제도는 탄탄한 공영개발 확대와 정착에 그 해답이 있다. 대장지구 공방전은 공영개발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의 시작이다. 

/김명성 논설위원(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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