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달은 예쁘고 고마운 존재다. 우리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동시로써 이렇게 표현한다.

달은 무얼 먹고/저리 예쁜 달로 자랄까//아가의 눈썹같은/ 초승달이//어느덧/ 동그란 보름달로ᆢᆞ…//매일 매일/ 달을 보며 기도하는// 우리들의 소원을/차곡차곡 쌓고 쌓아//저렇게/예쁜 달이 되었나봐요.(보름달, 강상구)

달에게 소망을 기원하는 습속은 우리의 민속 신앙과도 관련된다. 그 소망과 기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백제 가사 정읍사(井邑詞)에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듯 기원했을까. 그 뜻이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아, 멀리 멀리 비추어 주십시오.” 아닌가. 행여 진 곳을 디딜까 두려울세라, 내 님 가는 그 길 저물까 두려울세라 걱정하고 마음 졸였다.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으면 어떡하나 염려했다.

행상 나간 남편이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다리는 아낙의 기다림은 이처럼 간절했다. 그런데 남편이 떠난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산 위 바위에 올라가 달에 남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의 아내는 그만 망부석(望夫石)이 되고 말았다.

뭐니 뭐니 해도 한가위의 주인공은 보름달이다. 요즘에야 말이나 글에서 ‘달님’이라는 정겨운 말은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했다. 그렇지만 지난날 보름밤이면 동네 사람들은 동산에 올라 ‘달님’에게 소원을 빌곤 했다.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그런가 하면 달은 우리네 삶에 있어 일깨움을 주는 존재였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소월의 말마따나 밤마다 돋는 달처럼 임이 늘 내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다. 그런데 임과 ‘나’ 사이 거리가 저 달처럼 멀어지자 그때야 임이 사무치게 그리운 대상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임과 함께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온다.

하기는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후회를 되풀이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듯하다. 그러나 가끔씩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그들이 가까이 있을 때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다면, 그런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섬기길 다하라고 하지 않든가.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상다리가 휘도록 차례상을 차린들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부모님은 여기 안 계시고 저 달처럼 멀리 계시는 것을. 그러니 부모님 살아계실 때에 어깨 한 번 더 주물러드리고, 추석날 정성껏 차린 음식을 부모님과 함께 맛있게 먹는 것이 손쉽게 실천하는 효도 아니겠는가.

이번 추석날도 풍요로운 보름달이 환하게 세상을 밝힐 것이다. 모두가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부모님의 은혜를 새삼 떠올려 새길 일이다. 그리고 늙으신 부모의 무릎도 시원하게 주물러드리면서 세상 모든 이들의 평안을 달님에게 두 손 모아 기원드리는 것은 어떤가.

우리의 삶에서는 소월의 시처럼 뒤늦게 깨닫고 그렇게 더 자주, 더 오래 달을 보게 되는 시간이 오게 되는 모양이다. 만일 달을 즐길라치면 완월장취(玩月長醉)를 피하기 어렵다. 달빛과 더불어 술을 마신다는 말이겠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하려뇨’

조선 후기 문신 이정보의 시조다. 여기서 꽃과 달과 술이 묶인다. 강릉 경포대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한다. 첫째는 하늘에 뜬 달이고, 둘째는 동해 바다에 비친 달, 세 번째는 경포호에 비친 달, 네 번째 달은 술잔 위에 뜬 달, 마지막 다섯 번째는 님의 눈동자에 뜬 달이다. 참으로 풍류과 운치가 넘치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에도 이미 달이 등장한다.

“꽃 사이에 놓인 술 한 단지,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마신다./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이 되네./ 달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르는구나./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니 즐겁기가 모름지기 봄이 된 듯한데./ 내가 노래하니 달이 배회하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가 어지럽게 오가는구나. (하략)”

교교한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다 흥에 겨워 어울렁더울렁 춤추는 이백의 모습이 선하다. 이 시를 접하자니 이백의 다른 시 ‘대주문월(對酒問月)’도 떠오른다.

“맑은 하늘 저 달은 언제부터 있었나/ 내 지금 잔 멈추고 물어보노라/ 사람이 달을 잡아둘 순 없어도/ 달은 항상 사람을 따라 다니네/ (중략) / 내가 노래하며 잔을 들 때에/ 달빛이여 오래도록 잔을 비춰라.”

이 두 시의 공통점은 ‘달(月)과 술(酒)’이다. 달이 뜨고 달그림자가 져야 술맛도 난다. 뿐인가. 저 북송(北宋)의 시인 소동파는 노래했다. ‘그대여 잔에 뜬 달까지 마시라(勸君且吸盃中月)’고. ‘오로지 안타까운 일은 달 지고 술잔 비는 것일 뿐(惟憂月落酒盃空)’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잇딴 목숨 포기, 너무도 처참·가혹한 현실

올 추석에는 술잔에 떠오르는 달까지 다 마셔버리고 내내 기쁘고 좋은 말만 오갔으면 좋겠다. 허구한 날 대놓고 편을 갈라 피터지게 싸워대는 그놈의 지겨운 정치 얘기 말고, 그놈의 몸서리치는 코로나 얘기 말고, 보름달같이 환하고 밝은 이야기만 나눴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너무도 처참하고 가혹하다.

바이러스의 기승이 날로 더해가고 정체를 변형시켜가면서 무시무시한 공포를 확산시키는 통에 움츠러들고 위축된 일상이 끝을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명절을 맞아도 축제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랜만에 고향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도 망설이고 애써 참아야 하는 얄궂은 시절이 돼버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역병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지만 그렇잖아도 멀기만 한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훨씬 멀게 만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상황 때문이라 하더라도 멀어진 사람 사이의 서먹함이 외떨어진 섬처럼 서로를 서글프게 만든다. 우리 가족·친지, 공동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널리 이해한다 해도 역병이 이렇게까지 인간의 삶을 핍박할 줄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멀리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망운지정(望雲之情)'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의 얼굴을 맞대지 못하고 영상통화로 대화를 나눠야 할 수도 있다. 다음 명절에는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참아야 하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아쉽지만 모두 코로나 탓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억지로라도 여유로움을 만들어 미래를 낙관해야 하지 않을까? 삶이 지속되는 한 희망이 온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으므로. 요즈음, 너나없이 심리적·경제적으로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 20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엄중하다.

최근의 어두운 소식은 참으로 우울하게 만든다. 23년간 맥줏집을 운영해왔던 한 자영업자의 삶을 포기한 선택, 어느 치킨집 사장이 “경제적으로 힘들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하직하고, 노래방을 운영하던 자영업자 또한 가게 인근 자가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밖에도 잇따른 생의 포기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메게 한다.

특히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상공인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직격탄을 피해 가지 못했다. 시내 건물 곳곳에 나붙은 ‘임대’ 현수막, 폐업 안내벽보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문전성시였던 옛날의 영광을 뒤로 하고 폐업을 한 곳도 있고, 문을 닫은 곳도 부지기수다. 쇼윈도에 붙은 ‘임대문의’ 태그가 곳곳에서 눈길을 붙잡고 안타깝게 한다. 브랜드매장에서부터 식당, 금은방, 옷가게, 등등… ‘임대’는 ‘폐업’이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니, 그들과의 연이 없었어도 마음이 아픈 건 인지상정 아닌가. 

우리 모두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환하게 웃는 날이 올 수 있도록 해주소서 

달은 한 가지 모습만 고집하지 않는 원만하고 밝은 기운도 가지고 있다. 월인천강(月印千江), 달은 하나지만 천 개의 강을 두루 비춘다. 이번 보름밤에는 그 달의 기운을 받으러 동산에 오르자. 가슴이 아릴 때, 답답할 때는 자연에서 치유효과를 얻는다 했다. 산이라도 찾아보자.

오늘, 김승희 시인의 시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박힌다.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島),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예전 우리네들이 추석이 되면 다 같이 모여서 둥근 달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던 것처럼 이번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망해보련다.

“달님~ 달님~, 우리 모두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환하게 웃는 날이 올 수 있도록 해주소서”

코로나19와의 전쟁 속에 자신도 모르게 각박해진 마음이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니 한편의 시가 떠오른다.

“둥근 달을 보니/ 내 마음도 둥글어지고/ 마음이 둥글어지니/ 나의 삶도 금방 둥글어지네/ 몸속까지 스며든 달빛에 취해/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온 우주가 밝아지니/ 나의 기도 또한 밝아져서/ 웃음이 출렁이고/ 또 출렁이고”

밝은 보름달이 뜬 한가위날 밤, 이해인 수녀의 시(詩) ‘보름달 기도’를 읊어보며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나름대로 행복의 주문을 걸어보자.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코로나로 갈가리 찢긴 마음, 황폐화된 심성을 추슬러서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코로나상황에 깊이 휘말리니 질병에 의한 혼돈이 없는 ‘건강한 위생도시 하이게이아’(Hygeia, 그리스신화 속 건강의 여신)가 간절해진다. 이번 추석에는 대한민국을 하이게이아 도시로 만들어달라는 사회적 소망과 함께 코로나19 종식과 빠른 경기회복이 이루어져서 마스크 없는 세상이 오길 두 손을 모아 간곡히 빌어봐야겠다.

/이강록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