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의 '이슈 체크'
거래량과 주가는 비례한다. 팬오션에 외국인들까지 몰려들면서 주가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가장 핫한 종목으로 해운업계가 꼽힌다. 그중 팬오션도 한 해 전보다 세 배 가까이 올랐다.
성장성에 주목한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다. 이에 팬오션이 올해 선박 수를 300여 척까지 늘린다. 남의 배를 빌려 사용하는 191척의 용선(傭船)도 계약 기간을 장기로 늘려 운영상의 안정을 도모한다.
이는 앞으로 벌크선 이용이 늘어날 것에 대비한 전략이다. 벌크선은 곡물이나 광석, 석탄, 펄프를 수송하는 화물선이다. 벌크선 시황은 파란불이 켜졌다. 화물의 운임지수가 계속 오름세다. 해상물동량 운송은 활기를 띠는 반면에 벌크선 신규 발주가 더디기 때문이다.
전체 해운업계의 실적은 고공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그 선두그룹에 팬오션이 있다. 벌크전문 해운선사인 팬오션은 하림그룹의 자회사다. 팬오션은 컨테이너선, LNG선 등으로 고부가가치 화물운송 서비스도 늘려가고 있다. 국내 산업에 필수적인 원자재 조달을 위해 세계 굴지의 회사들과 끈끈한 협력관계를 다지고 있다. 이 같은 경영으로 액체나 냉동화물이 아닌, 건화물(dry bulk) 기준으로 국내 물동량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동량 1위 팬오션, 물류의 첨단 청해진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인 828년에 청해진이 설치된다. 청해(淸海)는 바다를 맑게 한다는 뜻으로 ‘해적 소탕’을 의미한다. 만여 명의 군사와 그 수에 걸맞는 함대를 구축하고 당시 당나라, 일본뿐만 아니라 일본열도에 이르기까지 무역망을 구축한다.
신라인들이 일본으로 수출한 품목을 보면 페르시아산 약재부터 동남아시아산 향료인 후추, 정향, 육두구가 보인다. 인도와 동남아, 아프리카에서 서식한 공작 꼬리, 캄보디아에서 살았던 조류의 털, 신라의 종이와먹, 칼이 보인다. 물류망이 동남아시아를 거쳐 아랍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해진은 군사시설(鎭)로 시작됐지만 물류기지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중국 해변의 신라인 집단 거주시설인 신라방은 지금의 영파, 항주, 청도, 석도, 위해, 등주 등으로 형성돼 거대한 타운을 이뤘다. 지금 중국의 번영을 이끌고 있는 중국의 동부연안 개방도시들이다. 전문가들은 등소평의 경제특구정책이 신라방이나 청해진을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윤명철).
장보고가 거느린 선단은 신라, 당나라, 동남아시아, 아랍산 물품을 수입해서 일본에 팔았다. 거꾸로 일본산 물품을 이들 나라에 되팔았다. 중계무역이다. 아울러 원료를 사다가 가공해서 되판 보세가공무역도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대표적인 물품이 청자다. 물류에 동원된 신라 선박을 어떠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신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신단 규모가 7척에 700명이었으며 주력함선은 100명을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을 오간 상선들은 연안을 타고 이동하거나 서해를 가로질러 갔다. 그 정도의 항해술과 함선 크기를 고려할 때 당시의 물류 스케일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선다.
하림은 산업 간 가치사슬, 청해진은 항구 간 네트워크
오늘날 하림의 신화는 외할머니가 선물로 준 열 마리 병아리에서 시작됐다. 병아리 키우기는 양계농장(1978년)으로, 다시 육계 계열화사업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또한 사료 전문기업과 가축 약품 전문기업으로 확장을 이어가더니 농수산식품 전문 홈쇼핑 채널 사업자로, 종합식품사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2015년)하며 해운 물류사업에도 뛰어들면서 재계순위 30위 이내로 진입했다.
하림의 성장 비결은 식품분야를 주력으로 가치사슬(value chain)을 이어간데 있었다. 기업 활동을 통해 얻는 부가가치가 물 흐르듯 생성돼가는 것처럼 사료-축산-도축 가공-식품제조-유통판매-해운-곡물로 사업 영역이 넓혀졌다. 닭고기 가공과 브랜드 돈육, 사료 제조 판매, 건화물 물동량 부문은 국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해운물류 부문은 주력인 축산업의 토대로서 곡물과 사료 운송 원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는 세계적인 곡물 유통기업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식량이 무기가 되는 시대다. 카길(Cargil)과 같은 메이저 곡물기업이 세계의 정치 경제를 주무르는 게 현실이다. 북한 시장개방도 카길의 이권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하림의 항공물류 분야 진출도 주목된다. 최근 이스타항공 인수에도 관심을 보인바 있다. 웹 기반의 디지털 물류시대를 맞이해 항공물류의 부가가치가 급속히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이 대표적인 사례다.
장보고는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역사에 등장한다. 지금의 한중일이 둘러싼 동아시아 바다에는 당나라 해적, 신라 해적, 일본 해적의 노략질이 심했다. 신라인을 붙잡아 당나라에 노비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당나라에서 ‘신라 노비 매매 금지령’을 발령할 정도였다. 해적이 득실댄다는 것은 무역망이 무너진 상황을 반증한다.
그러나 장보고가 청해진(해적을 깨끗이 소탕하는 수군)을 설치하면서 동아시아 바다에는 해적들이 모두 사라지고 국제 무역망이 복원된다. 장보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강화도에 혈구진을, 평택 아래쪽 남양만에 당성진도 설치한다. 세 곳을 중심으로 서해와 남해안의 해상 무역망을 가동하고 재당신라인, 재일신라인까지 하나로 묶는다. 해양 인적 네트워크가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해양 활동을 복원하고 국제무역에 불을 당겼다.
당나라에는 신라인 거주지인 신라방 외에도 페르시아인들이 자치권을 갖고 집단 거주하는 ‘파사방’까지 있었다. 일종의 특별자치구거나 조계지의 성격을 갖는다. 이에 따라 북쪽으로는 두만강 하류와 블라디보스토크 해역, 동쪽의 일본 열도 전체, 서쪽의 중국 동해안, 남쪽으로는 지금의 대만해역에 이르는 동아지중해(East Asian-Mediterranean Sea, 윤명철) 안에서 이뤄지는 국제무역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나라 글로벌 물류의 시작이다.
통일 이끄는 물류, 북극 항로-대륙철도 시대 개막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북극 항로가 있다. 북극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물류 운송로다. 쇄빙선(碎氷船)이 동원된다. 2013년 현대글로비스가 실험운항에 나선 이후에 팬오션도 2015년 북극 항로로 화물을 실어 날랐다. 운항거리를 30% 단축할 수 있고 운항기간도 그 정도 앞당길 수 있다. 부산에서 러시아 해역을 따라 북극을 통과해 북유럽에 도착하는 경로다.
남북의 철도가 이어져 만주횡단철도(TMR), 몽골횡단철도(TMGR),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되면 세계 인구의 75%가 사는 유라시아는 하나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동북아시아의 에너지 공동체, 경제 공동체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한 바 있다(2019년).
물류의 시작점이자 끝점에 있는 우리나라는 남북이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경제 때문이다. 물류는 상품과 서비스, 정보, 지식의 흐름까지 포함하며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물류는 남북 화해를 이끌어내는 실질적인 힘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독립군들은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부산에서 서울, 신의주, 만주를 지나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까지 철도로 이동했다. 그러나 물류가 막힌 건 건 역설적이게도 이 땅에 해방이 오면서부터다.
21세기판 청해진이 용트림을 하고 있다. 해상물류, 항공물류에 이어 육상물류로 한발 더 나아갈 것이다. 세계적 규모의 벌크선단은 쌀과 사료용 곡물을 가득 싣고 북한으로 판매망을 확대할 것이다. 입항할 때면 광석을 꽉 채우고 새만금신항만으로 들어올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 정보, 지식으로 무장한 인적 교류가 갈수록 물밀 듯 할 것이다. 그게 통일이 다가오는 소리이며 민족이 하나 돼가는 여명(黎明)이다.
/김명성 논설위원(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