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지금 세계는 국가와 민족, 사상과 종교 그리고 다양한 권력 간 분쟁 등으로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종교와 관련된 분쟁이 많은 거 같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툼을 사랑으로 극복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역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이슬람교의 파벌 싸움은 인간의 탐욕스런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성경 해석을 달리하여 분파가 생기는 것처럼 이슬람교 역시 그들의 경전인 꾸란의 해석을 달리하면서 분파가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 수니파와 시아파의 투쟁에 이어 요즘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인 IS, 탈레반, 알카에다 등으로 분열되어 같은 이슬람 형제들 간에도 테러나 전쟁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30년 이상 평생 이슬람세계를 여행한 모로코 출신 이븐 바투타라는 분의 여행기를 통하여 이슬람 세계의 형제애를 배울 수 있었고 또한 영문판 꾸란을 좀 읽으면서 이슬람의 세계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마호메트가 쓴 이슬람 경전 꾸란은 방대한 양의 기록이다 보니 경전의 말씀이 종종 엇갈릴 때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꾸란은 고대 아랍어가 변형되지 않은 채 유지되었는지라 엇갈리는 부분들에 대한 해석부터가 분분하기 그지 없다고 합니다.

이는 마치 수천 년 전 중국에서 쓰여진 고문을 현대에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관해 여러 설이 난무하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지하드라든가 종교전쟁, 이교도에 대한 탄압, 순교의 문제 등에 관해 아직도 여러 얘기들이 무슬림 내부에서도 오고 갑니다. 불교 경전인 불경도 초창기에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설령 다른 견해가 있더라도 부처님께 여쭤보면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질 않았는데 문제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그 참 뜻을 아는 자가 드물어 서로 다른 견해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니 온갖 이견들이 난무하며 서로 자기 말이 옳다고 하며, 상대방의 말은 옳지 않다고 하는 시비가 차츰 늘어난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1,300년 전 한반도 한 귀퉁이 신라에서 태어나신 원효 스님의 덕분에 일찍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효 스님은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수많은 경론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다가 같은 주제에 대하여 언뜻 보면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주장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만약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어느 한편의 경론만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다른 편의 경론을 공부한 사람들과 틀림없이 서로 다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화쟁의 횃불을 높이 들어던 것입니다. 원효 스님은 좁은 소견을 가진 이치에 어두운 사람들을 타일렀으며 그들이 증거로 제시하는 경론에서는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고 합니다.

올바른 이치를 알지 못해서 자신만의 좁은 견해에 얽매어 갈등과 분열로 멍든 지구촌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전체와 부분이 진정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을 생각해 봅니다.

당시 원효 스님은 원융무애한 부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수많은 이견들을 회통하고 융합하여 '십문화쟁론'이란 책자까지 서술하셨습니다. 원효 스님은 온갖 이견들이 횡행하여 부처님의 참 뜻을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세태를 바라보면서 더 이상 이러한 사태를 방관할 수 없어 그러한 일을 바로 잡기 위해서 화쟁(和諍)이란 횃불을 높이 들고 '십문화쟁론'을 서술하여 중국 및 일본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만일 원효 같은 훌륭한 인물이 이슬람 세계에 환생하시어 분쟁으로 얼굴진 이슬람 세계에 화쟁사상을 일으켜 평화라는 축복을 선사할 수 있으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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