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호수 그리고 생명

길고 길었던 8월도 이제 겨우 이틀 남았다. 폭우와 폭염으로 맹위를 떨치던 한여름 기력도 쇠약해져 보인다. 이제 8월이 물러가면 선선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는 9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세상이 바뀌고 삶의 방식이 변하고 있지만 자연의 순리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무기력한 인간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근본적으로 불안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전주시 덕진구 건지산 둘레길 코스를 걷다 보면 한국소리문화전당 뒤로 너른 호수, 오송제가 산책로를 따라 시원하게 반겨준다. 오송제 주변엔 늦게 핀 수려한 연꽃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다. 청량한 호숫가 버들나무 꼭대기에 회색 왜가리가 멀리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여름 내내 호수를 외로이 지키며 긴 더위를 나던 왜가리가 이제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려나 보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다른 백로류들과 함께 무리지어 번식하며 높은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둥지를 짓고 여름을 사는 왜가리. 다른 백로류처럼 목을 'Z'자 형태로 움츠리고 나는 게 특이하다.

백로속 조류는 지구상에 12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다섯 종이 있다고 한다. 제일 흔한 게 중대백로, 다음으로는 중백로가 흔하다는 이 새는 희귀한 나그네새로 알려졌다.

여름 철새이지만 최근에는 월동하는 개체군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황소개구리 성체를 잡아먹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번식하는 백로류 중에서 가장 큰 왜가리는 이곳 오송제의 단골 손님이다. 최근 3년 동안 해마다 어김 없이 나타나고 있다.

여름 번식기에는 부리가 주황색으로 바뀌고, 다리도 붉어진다. 호수 바깥쪽에 가만히 서서 물고기를 기다렸다가 잡는 인내심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배에 낳는 알의 수는 3~5개로 알을 품는 기간은 25~28일이 걸린다고 한다. 새끼는 부화 후 약 50~55일 동안 어미가 먹이를 공급하여 키우는데, 둥지를 떠날 정도로 자라면 다른 나뭇가지로 이동하기도 하고 날개 짓을 하며 호수 위를 날기도 한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이제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다. '왜갈 왜갈'...
어느덧 친해졌다는 뜻일까? 오늘은 특별한 소식을 알리려는 듯 혼자 노래를 부르며 친숙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오송제 주변의 자연들이 서서히 가을 옷으로 갈아 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자연의 순리, 조화, 질서는 불안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위안과 내적인 힘을 솟게 해준다.

또한 자연은 전환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교훈도 일러준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며, 행동이 습관을 만들며, 습관이 운명을 만드는 것임을 자연 앞에서 다시 깨닫게 된다. 8월 마지막 휴일 오송제에서.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