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그렁개, 몇 십년 전 일이던가.
고창읍에서 아산으로 가던 길목 도산마을에서 내려 골목을 휘돌아 가면 낮은 산 등성이 아래 아무개네 집이 보이고, 문 열고 들어선 집 뒤편에 올망졸망 늘어선 장독대 너머 보였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무우말랭이도 말리고 애호박 썰어 말리다가 정월 초하루에는 맑은 물 한 그릇 떠놓고 기도하던 물건이라나. 어디 그뿐인가. 코 흘리개 아이들 술래잡기 놀이터로 대 여섯 명이 숨어 있었던 곳이며, 가끔씩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던 천문대가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날부터 고인돌이라고 이름 짓고서 장독대 들어내고 집도 헐어내더니 세계문화유산이랑가 뭐랑가가 되더니 한껏 귀한 몸이 되고부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눈치만 보고 있지.
노랫말이 되고 말았네. 어디 그런데가 도산마을의 고인돌 뿐인가. 서산 운산의 보원사지의 석조나 석탑에서 손만 뻗으면 따 먹을 수 있던 그 늙은 감나무도, 개울가를 휘덮고 있던 다래덩쿨도 다 베어내고 걷어내는 것이 문화재 보존이고 사랑이라는데.
그대로 두고 보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내 생각이 무망한 것인가?
알 수 없어서 고개만 갸웃거리며 '그렁개'라는 말만 궁시렁거리듯 되뇌네.
그렁개!
/사진·글=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신정일 객원기자
jbsori@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