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휜 건 휜 대로, 돌을 품은 건 품은 대로

지난 봄 4월 초의 일이다. 홍매를 살피러 지리산 화엄사를 찾았다. 내친김에 대웅전 뒤로 난 조릿대 터널 오솔길을 지나서 구층암(九層庵)에 들렀다. 첫인상이 소박했고 고요했으며 맑고 정갈했다. 오죽했으면 이름에 연과 난을 집어넣었을까.〔‘구층연사(九層蓮社)’라고도 ‘구층난야(九層蘭若)라고도 불렀으니 말이다. 결사도량, 수행선원이었던 만큼 도량의 청정한 기풍과 담박한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했을 일이다.〕
그런데 단연 눈길을 끈 게 있었다. 좌우 두 요사채에 각각 지붕을 받치고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다. 이 기둥들은 구층암의 상징이 될 만큼 유명했던 모양이다. 기자만 모르고 있었다. 모과나무는 건축자재로 쓰이기 어렵다. 그러나 사용했다면 희한한 경우다. 구례 화엄사 구층암에 그 진귀한 장면이 있다.
돌덩어리를 품은 나무 기둥…아연실색

백년은 족히 넘었음직한 굵은 기둥들이었다. 그것도 전혀 다듬지 않고 살아있을 때 생긴 모습 그대로 사용했다.※ 나뭇가지의 흔적뿐 아니라, 움푹 팬 나뭇결, 옹이까지도 생생했다. 세월의 흔적으로 갈라지고 튼 모습이었다.
어떤 것은 밑둥은 하나인데 위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Y자형 기둥이 지붕틀을 받치고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돌을 품은 채 자란 모습조차도 고스란히 살려놓은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경이로웠다. 이럴 수가…. 이럴 수도 있구나.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기둥에 대한 고정관념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감히 기둥재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기 어려운 나무들을 이렇게 쓰다니. 기둥의 위치나 형태로 보면 분명히 의도적으로 사용한 게 분명하다. 무엇인가 뜻을 전하려 했음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이 요사채를 지은 목수는 어떤 뜻에서 이 기둥을 썼을까. 이런 궁금함이 하루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요사채 바로 옆에는 모과나무가 심어져 있다. 때문에 살아 있는 모과나무와 죽어 기둥이 된 모과나무를 한자리에 둠으로써 윤회 사상을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전국 이곳저곳을 다녀보면 휘어진 기둥이나 부분적으로 다듬지 않은 기둥은 드물지 않게 눈에 띈다. 하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인공의 손을 대지 않은 기둥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사용한 예는 구층암 요사채뿐이란다.
(※ 건축 전문가들은 이른바 자연주의 건축이라고 한다. 우리가 자연에 얹혀산다는 생각이 바탕이 된 건축이다. 자연주의 건축에서는 원래 나무의 모양 그대로 원래 자라던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 원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모과나무를 원래 모양 그대로 사용했다.)
구층암은 화엄사 부속 암자 가운데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구층암에는 천불보전과 수세전, 그리고 두 채의 요사채만 있을 뿐이다. 천불보전 안에는 작은 불상 1,000구가 봉안돼 장관을 이루며, 지붕 밑에는 거북이와 토끼의 설화를 묘사한 민화풍의 조각상들도 장식돼 있다.
그 앞 대방채(요사채)에도 처마 곳곳에 사자상이나 코끼리상들이 조각돼 서민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특한, 그래서 소중한 것은 요사채 전면 기둥이다.
절에서 표시한 안내표지판에 적힌 글은 이렇다.
“구층암의 매력은 자연을 닮은 데 있다. 무엇 하나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없다.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은 단연 자연스러움의 으뜸이다.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져다 썼다. 천불의 부처가 모셔진 천불보전 앞에 단아한 석등과 배례석, 모과나무가 있다. 복원하지 못하고 듬성듬성 쌓아놓은, 신라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마저 자연스럽게 보인다.”
천불전 뜨락엔 다섯 그루의 모과나무가 있다. 우선 천불보전 계단 양 옆으로 살아있는 두 그루가 있고, 좌우 요사채에 기둥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세 그루다.
모과나무 기둥은 생김 그대로다. 모과나무 원형을 그대로 살려 전혀 인공적인 모습이 없어서 경이롭다. 잔가지만 툭툭 쳐낸 채 골격을 그대로 기둥으로 활용했다. 마루와 방과 기능적 맞춤을 위해 최소한의 홈을 파냈을 뿐이다. 그래서 마치 서 있는 나무 그대로를 그냥 처마 밑에 옮겨 심어 둔 모습이다.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은 그래서 드러내는 것이 직접적이며 대범하다. 그리고 자연의 상징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로 표현했다. 인공을 벗어난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의미를 재탄생시켰다.
힘줄 같은 나뭇골과 옹이까지 자연주의로 수용했다. 심지어는 나무와 한몸이 된 돌덩어리도 그대로 내버려(살려) 뒀다. 자연 스스로가 키우고 길러낸 모습 그대로를 건축 틀로 담았다. 그것도 나무 형태나 굴곡에 대한 차별이나 분별을 아예 여읜 차원이다. 자연에 대한 강한 믿음이 그 바탕임에 분명하다. 때문에 군더더기 없는 뼈대가 가지는 구조적 아름다움과 신념이 빛난다.
그래서 모과나무 세 그루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요사채 처마 밑에 기둥으로 심어져 있다’고. 휜 것은 휜 그대로, 굽고 파인 결은 파인대로, 옹이는 옹이대로, 나무 스스로가 자라나온 모양 그대로 간직한 채 집 짓는 데 쓰였다. 모과나무 삶으로 본다면 드라마틱한 반전이고 성스러운 회향(回向)이었다.
모과나무로 나타낸 가르침과 미학

구층암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은 자연이 곧 건축의 뼈대가 된다는 근원적인 생각을 잘 나타내준다. 모과나무는 소나무와 달라서 쉽게 굵어지지 않는다. 오래된 모과나무라 해도 그 굵기가 가늘기 때문에, 다른 목재처럼 다듬어 사용하면 너무 가늘어져 건축자재로는 적합치 않다. 그럼에도 굳이 모과나무를 생긴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한 데는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짐짓 해석을 한다면 나무의 밑둥은 기둥이, 줄기는 보가 되며, 잔가지는 서까래와 지붕이 된다는 신념일 것이다. 여기서 인공적인 건축물은 곧 자연의 일부요 확장이라는, 자연주의적 태도의 가장 높은 경지를 확인하게 된다.
구층암은 천불전의 흙으로 만든 1,000 구나 되는 작은 불상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각별한 것은 아무래도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이다. 움푹 팬 나뭇결과 옹이도 생생하다. 게다가 자랄 때 크나큰 멍에였을 커다란 돌덩어리마저 나무 품에 안긴 채 그대로 놔뒀다. 이른바 자연주의적 건축관의 가장 높은 경지를 그 기둥에서 본다.
그런데 모과나무는 의외다. 모과나무는 소나무, 전나무처럼 외줄기로 자라서 통나무 목재로 쓰일 수 있는 재목이 아니다. 중간 키의 관목에다 가지 뻗기가 활발해서 통나무를 얻기 어렵고 등걸 표면이 혹처럼 울퉁불퉁하고 옹이가 많아 목재로서의 기본 쓸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구층암 좌우 요사 두 채는 그것을 뛰어넘었다. 일부러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삼아서 일찍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중생의 교화보다는 개인적 수행을 중시했던 암자의 건축적 특징은 단순 소박함에 있다고 한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행하는 스님들의 개성을 따라 지어지므로, 일반 가람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형태도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세속적 평가나 아름다움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구층암이 그런 경우 아닌가 싶다.
구층암이 제아무리 큰 규모의 암자라 하더라도,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 있기 때문에 본 절에 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래서 건축적 특성 역시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주목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구층암은 본 절에서 불과 5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건축적 내용도 대단하지만, 그 참다운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아직은 덜 알려진 보배라고나 해야 할까.
가람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 불어넣어
구층암은 모과나무 기둥이 없었다면 평범한 요사채에 지나지 않았을 터다. 그 가람에 활기 넘치는 모과나무 기둥이 자리잡자 아연 팽팽한 긴장이 가득하다.건축공간이 엮어내는 정신적인 장(場)이 마치 아라한과를 얻은 듯 살아있다. 여타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한 긴장감이다. 강한 중력으로 공간이 휘는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라고나 할까. 그 결과 요사채 건축미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움의 경지를 높이 휘날리고 있다.

분위기는 지난날 고승대덕들이 남기고 간 지팡이처럼 삼엄함을 자아낸다. 무소유, 무애자재, 용맹전진, 해탈 등 깊은 수행력의 정서가 공간에 흐르고 청정 도량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나무가 아니라 나무 형상을 빌린 일깨움의 선문답 같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건물을 누구나 돌아보는 건물로 전환시킨 경이로운 안목이다. 모두 모과나무 기둥이 가져온 새로운 변화들이다. 아울러 존재에 대한 존엄성의 통찰이 깊고도 숭고하다.
여기서 모과나무를 생각해본다. 이 나무는 곧고 예쁘지 않다. 늠름한 자태도 아니다.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가지도 많아 재목으로 쓸만하지도 않다. 따라서 큰 기와집 기둥감은 더더욱 못된다. 그저 군불에 땔감으로 던져질 만한 못생긴 허드레 토막이리라. 신기하게도 이 나무는 ‘선산의 굽은 나무’처럼 보인다.
선산을 지키는 나무는 곧게 잘 생긴 나무라야 한다. 조상님 묘소를 지키는 나무는 당연히 그런 나무여야 한다. 하지만 못난 후손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선산 나무를 목수에게 팔아넘긴다. 하나 둘 그렇게 베어진 나무는 남의 집 들보나 서까래가 되기도 하고 기둥이 되어간다. 왜 우리 고향 선산의 나무들이 남의 집, 그것도 원수의 집 목재로 팔려가야 하는가. 잘난 놈들은 제 잘난 맛에 다 떠나고 못난 놈들만 남은 형국이다. 잘난 놈들은 외세에 아부하고 야합하고 육신의 안일을 얻어 희희낙락 한다. 결국 선산을 지키는 나무는 못생긴 녀석들이다. 바보같은 존재들이다. 민초가 그렇다. 재목으로 쓸 수 없게 생긴 구부정한 나무들이 조상님 유산과 역사를 지킨다는 말이다. 바보가 선산을 지킨다. 모과나무가 그렇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는 이 나무가 실은 향기로운 과실을 맺는 나무였다. 그게 역설적 반전이다
장자(莊子)가 그랬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고. ‘쓸모 없는 것의 쓸모’라. “쓸모 없어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다 쓸모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쓸모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쓸모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시공에 따라 쓰일 곳이 달라진다. 쓸모가 있던 것이 쓸모가 없어지고, 쓸모가 없는 것에 쓸모가 생긴다. 누구나 그때그때 환경에 맞는 쓸모를 스스로 만들어 가면 될 일이다.” 라는 이야기다.
쓸모가 있다 없다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깎고 다듬고 나의 쓸모에 자연을 변형시키기 보다 자연 그대로에 나의 쓸모를 맞추는 방식, 나의 쓸모가 다 끝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어 자연에서 쓸모를 다하라는 마음.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쓸모없는 돌도, 쓸모없는 나무도 없다. 하물며 사람이랴?
이름 없는 조선조의 목수는 어쩌자고 살아있는 나무를 그대로 불끈 뽑아 기둥 삼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자연을 인간의 모범으로 삼은 노자(老子)는 “크게 완성된 것은 마치 찌그러진 듯하며, 크게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이 보이며, 크게 정교한 것은 마치 서투른 듯이 보인다”고 했는데 바로 자연의 모습이 그 모습이다. 우리의 전통 건축이 추구하던 이런 자연주의 정신이 가장 완벽하고 충실하게 이뤄지고 드러난 현장이 바로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 아닐까 짐작한다.
/이강록 기자
